이우진의 자살, 가장 완벽한 자기애의 절정

멈춰버린 시간, 상처 입은 나르시시스트의 탄생

by 이땃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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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스트 이우진, 그의 자살은 자기애의 절정이었다

영화 <올드보이>의 마지막, 이우진은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많은 이들이 그의 죽음을 복수의 허무함이나 누이에 대한 속죄로 해석하곤 한다.

하지만 그의 행동을 깊이 들여다보면, 이는 참회의 눈물이 아닌,

전형적인 B군 인격장애, 즉 나르시시스트가 연출한 가장 장엄하고 이기적인 마지막 퍼포먼스에 가깝다.

그의 15년은 누이를 위한 애도가 아닌, 자신의 상처를 전시하고 금지된 사랑을 정당화하기 위한 거대한 연극이었다.


복수의 서막, 나르시시스트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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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진의 모든 행동은 누이의 죽음이라는 트라우마에서 시작되지만,

그 기저에는 B군 인격장애, 특히 자기애성 인격장애(나르시시즘)의 특징이 깊게 자리하고 있다.

이 사건은 그의 시간을 1979년에 영원히 멈춰버렸고,

그의 나르시시즘적 성향을 극단적으로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40대 중반의 나이에도 20대 후반처럼 보이는 그의 동안(童顔)은,

세월의 풍파를 정통으로 맞은 오대수의 외모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그의 멈춰버린 성장을 상징한다.

그의 행동 기저에는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의 부재, 과도한 자기중심성, 그리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깔려 있다.

이는 자신의 경호원을 거리낌 없이 살해하는 모습 등에서 보이는 소시오패스적 성향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막대한 부와 권력을 손에 쥔 소년의 모습으로, 상처 입은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모든 것을 통제하는 세계를 구축한다.

세상과 단절된 64층 펜트하우스는 그의 심리를 보여주는 결정체다.

창밖 풍경마저 가짜 사진으로 만들어진 그곳에서,

그는 CCTV와 온갖 감시 장비로 오대수의 삶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신으로 군림한다.

이 모든 것은 누이의 죽음 앞에서 느꼈던 통제 불능의 무력감을 다시는 겪지 않으려는,

나르시시스트의 처절한 방어기제였다.


15년의 복수, 자아를 위한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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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진과 누이 이수아 / 오대수와 미도

나르시시스트인 이우진이 15년간 설계한 복수극은 누이를 위한 진혼곡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한 연주회였다.

자기애성 인격장애의 핵심 특징 중 하나는 자신의 감정을 타인에게 투사하여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근원적인 죄책감,

즉 누이와의 금지된 사랑과 그녀의 죽음을 방관했을지 모른다는 자기모멸감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오대수라는 희생양이 필요했다.

오대수의 '혀'가 모든 비극의 원인이라고 책임을 전가함으로써, 자신의 죄를 외부로 투사한 것이다.

그의 복수는 단순히 '당한 만큼 갚아주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오대수에게 자신과 똑같은 '근친상간'이라는 죄의 무게를 경험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일탈을 정당화하려 했다.

오대수를 자신과 똑같은 고통을 겪는 완벽한 '거울'로 만들어, 자신의 비극과 사랑이 결코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확인받고 싶었던 것이다.


마지막 질문, 뒤틀린 사랑의 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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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진실이 밝혀지고 오대수가 무너져 내린 순간, 나르시시스트 이우진은 자신의 진짜 목적을 드러낸다.

"누나하고 난 다 알면서도 사랑했어요. 너희도 그럴 수 있을까?".

이 질문은 공감을 구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특별함을 확인받고 우월감을 과시하려는, 나르시시즘의 전형적인 발현이다.

그는 '알면서도' 선택한 자신들의 사랑을, '모르고' 조종당한 오대수의 관계 위에 놓으며 위계를 설정한다.

이 한마디를 위해 15년의 세월과 천문학적인 돈, 수많은 사람의 인생이 동원된 것이다.

그의 복수극은 결국 자신의 금지된 사랑이 얼마나 위대하고 특별했는지를 증명하기 위해 기획된 거대한 자기 과시였다.

오대수의 비참한 파멸은 그의 신념을 뒷받침하는 가장 완벽한 증거가 된 셈이다.

스스로 내린 심판, 궁극의 자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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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스트에게 가장 큰 공포는 자신의 초라함과 마주하는 것이다.

이우진은 자신의 복수가 완벽하게 성공한 직후 자살을 실행한다.

오대수가 짐승처럼 굴복하는 순간, 그의 평생의 과업은 끝났다.

그의 죽음은 복수 이후 찾아올, 더 이상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존재로서의 공허함을 견디지 않기 위한, 미리 계획된 결말이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그는 다른 누구에게도 자신을 심판할 권리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서사가 타인의 평가라는 초라한 결말을 맞이하는 대신,

스스로 설계한 비극의 주인공으로서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퇴장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그의 마지막 순간, 머릿속을 채운 것은 오대수에 대한 미안함이 아닌, 누이와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결국 그의 자살은 누이를 위해 죽는 이타적 행위가 아니라, 수십 년간 숭배해 온 과거의 자신에게로 돌아가기 위해 죽는, 가장 완벽하고 이기적인 자기애의 완성이다.

이는 자신의 서사가 실패로 끝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나르시시스트의 마지막 선택지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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