뚫고 나온 ‘송곳’, 마침내 법이 되다

드라마 ‘송곳’으로 본 노란 봉투법의 의미

by 이땃쥐

서는 곳이 바뀌어도, 풍경은 그대로였다

rg2v2W9mnpg3Dbolo-6wwSWeQA909KI3qwDilao2besAQTs3vVS4nNzxCK51J6TMxUVqWHfdDY3eaoL-o7DhKA.webp 웹툰 원작 드라마 '송곳'

2015년, 드라마 ‘송곳’은 시청자들의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질문을 남겼다.

극 중 노동상담소장 구고신(안내상 분)“서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라는 촌철살인의 대사로 인간과 조직의 속성을 꿰뚫었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2025년, 많은 이들의 ‘서는 곳’은 바뀌었지만, 노동 현장의 ‘풍경’은 여전히 혹독했다.

비정규직, 하청, 플랫폼 노동이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노동자들이 법의 보호 바깥에서 신음했고,

드라마 ‘송곳’은 단순한 추억이 아닌 현재 진행형의 고발로 남아 있었다.

바로 이러한 배경 속에서, 2025년 마침내 ‘노란 봉투법’이라는 이름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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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송곳’이 다시 소환되는 이유는 명확하다.

2013년 연재를 시작한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헬조선’ 사회의 부조리를 가감 없이 드러낸 수작으로 평가받으며, 당시 사회에 만연했던 노동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었다.

외국계 대형마트 ‘푸르미’에서 벌어지는 부당해고와 그에 맞서는 평범한 사람들의 투쟁은 단순한 드라마를 넘어, 한국 사회 노동 현실의 축소판이었다.

2025년 현재, 이 드라마가 갖는 의미는 더욱 각별하다.

‘송곳’의 이야기는 10년 후 통과된 노란 봉투법이 왜 필요했는지를 설명하는 가장 생생하고 강력한 ‘입법영향평가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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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봉투법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정치적 산물이 아니다.

그 뿌리는 2014년 쌍용자동차 파업 노동자들에게 내려진 47억 원의 손해배상 판결에 맞서,

시민들노란 월급봉투에 4만 7천 원씩을 담아 연대의 마음을 전했던 캠페인에 닿아있다.

이처럼 법안은 실제 노동 현장의 고통과 시민 사회의 연대 속에서 잉태되었다.

‘송곳’이 방영되던 2015년, 19대 국회에서 처음 법안이 발의되었으나 번번이 좌절되었고,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수많은 논쟁과 정치적 부침을 겪어야 했다.

이 기나긴 시간은 우리 사회의 의식과 문화가 문제의 심각성을 진단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더라도,

그것이 실질적인 법과 제도로 이어지기까지 얼마나 거대한 정치적, 구조적 저항에 부딪히는지를 명백히 보여준다.

‘송곳’이 던진 문화적 파장과 노란 봉투법의 입법 지연 사이의 10년은, 법이 현실을 따라잡지 못하는 ‘문화 지체’ 현상의 씁쓸한 증거다.


따라서 이 글은 드라마 ‘송곳’의 서사를 렌즈 삼아 2025년 통과된 노란 봉투법의 핵심 조항들을 해부하고자 한다.

푸르미 마트의 이수인 과장과 노동자들이 겪었던 절규가 어떻게 법의 언어로 번역되었는지,

구고신 소장의 투쟁이 어떤 제도적 해법으로 귀결되었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이 법이 단순한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을 지키기 위한 사회적 안전망임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송곳’의 투쟁과 ‘노란 봉투법’의 논쟁

3.jpg?type=w800 푸르미의 모델인 까르푸

1. 투쟁의 해부: ‘송곳’이 드러낸 현실

드라마 ‘송곳’의 갈등은 한 개인의 양심에서 시작된다.

육군사관학교 출신의 원칙주의자 이수인(지현우 분) 과장

프랑스계 대형마트 ‘푸르미’에서 직원들을 인격적으로 모독하고 괴롭혀 스스로 회사를 나가게 만들라는 상부의 명백한 불법 해고 지시를 받는다.

그의 낮은 목소리, “그거, 불법입니다. 전 못하겠습니다”라는 저항은 거대한 조직의 부조리에 균열을 내는 첫 번째 송곳질이었다.


IE001886582_STD.jpg 이수인 / 구고신

이 투쟁은 두 인물을 축으로 전개된다.

한 명은 이수인, 즉 구고신 소장이 말한 ‘송곳 같은 인간’이다.

그는 불의와 타협하지 못하는 성정 때문에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면서도 기어이 껍데기를 뚫고 나오는 존재다.

다른 한 명은 노동상담소장 구고신이다.

그는 투쟁의 전략가이자 정신적 지주다.

그의 캐릭터는 실존 인물인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대학장의 경험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특히 군부독재 시절 민주화 운동으로 인한 고문 후유증을 겪는 모습은 캐릭터에 엄청난 깊이를 더한다.

“인간에 대한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옵니다”라는 그의 대사는 단순한 냉소가 아니라, 절대 권력과 맞서 싸우며 체득한 처절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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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노동조합을 파괴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사용한다.

이는 노란 봉투법이 왜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교과서적 사례들의 연속이다.

심리적 고립과 분열 : 회사는 이수인을 사내 왕따로 만들고, 직원들 사이에 불신과 갈등을 조장하여 연대를 막으려 한다.

표적 탄압과 도발 : 노조 와해를 목적으로 악명 높은 고진희 과장 같은 인물을 투입해 조합원들을 의도적으로 자극하고, 폭력 사태를 유발하여 해고의 명분을 만든다.

법적 소송을 통한 압박 : 정민철 부장은 고의적인 자해로 노조에 폭행 누명을 씌워 소송을 걸고, 법적 다툼으로 노조의 재정과 에너지를 고갈시킨다.

경제적 생존권 위협 : 최후의 수단으로 임금 지급을 중단하며,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의 생계를 직접적으로 위협한다.

이 드라마의 진정한 힘은 영웅 서사가 아닌, 구고신의 말처럼 ‘시시한 약자’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 있다.

야채청과 주임 주강민, 수산 파트 주임 황준철 등 평범한 마트 직원들은

이념적 투사가 아니라, 그저 자신의 일터와 동료,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나선 사람들이다.

그들이 겪는 고통은 노동 문제가 개인의 삶을 얼마나 처절하게 파괴하는지를 생생하게 증언한다.


2. 해법의 설계: 노란 봉투법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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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봉투법은 ‘송곳’이 묘사한 바로 그 현실에 대한 입법적 응답이다.

법안의 출발점은 2014년 쌍용자동차 파업 노동자들에게 내려진 47억 원의 손해배상 판결이었다.

기업이 노조 활동을 위축시키기 위해 천문학적인 액수의 손해배상 소송,

이른바 ‘손배 폭탄’을 무기로 사용하는 현실에 대한 사회적 저항이 이 법의 도화선이 되었다.

법안은 크게 세 가지 핵심 기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기둥은 사용자 범위의 확대 (노조법 제2조)다.

현대 산업 구조는 원청-하청, 본사-가맹점, 플랫폼-노동자 등 복잡한 다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이 구조 속에서 노동자의 임금, 근로시간 등 핵심적인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주체는 계약서상의 사용자인 하청업체가 아닌, 원청 대기업인 경우가 많다.

이들을 ‘진짜 사장’이라 부른다.

그러나 기존 법체계 하에서는 하청 노동자들이 이 ‘진짜 사장’에게 단체교섭을 요구할 법적 권리가 없었다.

개정된 법은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 또한 사용자로 규정한다.

이는 하청, 파견 노동자들에게 ‘진짜 사장’과 대화할 수 있는 법적 통로를 열어준 것이다.


두 번째 기둥은 노동쟁의 범위의 확대 (노조법 제2조)다. 과거 법원은 노동쟁의의 대상을 임금 인상과 같은 ‘이익분쟁’에 한정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로 인해 부당해고나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파업 등 ‘권리분쟁’ 성격의 쟁의행위는 불법으로 규정되기 쉬웠다.

노란 봉투법은 합법적인 노동쟁의의 범위를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분쟁으로 넓혀,

정리해고나 사업부문 통폐합 등 노동자의 고용 안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영상 결정에 대해서도 노조가 합법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쟁의행위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세 번째 기둥은 손해배상 청구의 제한 (노조법 제3조)이다.

이는 노란 봉투법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기존에는 회사가 파업으로 인한 손실 전체에 대해 노조와 조합원들에게 연대 책임을 묻는 것이 가능했다.

이는 사실상 노조 활동 자체를 봉쇄하는 강력한 무기로 사용되었다.

개정법은 여러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우선, 노동조합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목적의 손해배상 청구를 금지한다.

또한, 법원이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더라도 각 조합원의 책임은 그가 노조에서 맡은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참여 경위 및 정도 등을 개별적으로 고려하여 정하도록 했다.

이는 모든 조합원에게 무한 책임을 지우는 ‘연대 책임’의 족쇄를 끊어낸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 세 가지 기둥은 개별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는 단순히 노동자에게 새로운 권리를 부여하는 차원을 넘어, 현대 경제 구조의 변화로 인해 발생한 심각한 ‘힘의 비대칭’을 교정하려는 시도다.

‘송곳’의 푸르미 마트처럼, 실질적 권한을 가진 본사는 뒤에 숨고 현장 관리자만 내세우는 구조적 모순 속에서 기존의 노동법은 제대로 작동할 수 없었다.

노란 봉투법은 법의 정의를 현실의 권력 구조에 맞게 현대화하려는, 지극히 합리적인 ‘균형 맞추기’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드라마가 현실에게, 현실이 법에게 묻다

‘송곳’의 서사와 노란 봉투법의 조항들을 나란히 놓으면, 드라마의 모든 절규가 법의 응답으로 이어지는 놀라운 일치점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송곳’이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우리 노동 현장의 병폐를 정확히 포착한 진단서였음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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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표가 보여주듯, 노란 봉투법은 ‘송곳’이 제기한 문제의 악순환 고리를 모든 지점에서 끊어낸다.

‘진짜 사장’과 대화할 수 없다는 절망감은 노동자들을 극단적인 파업으로 내몰고,

그렇게 시작된 파업이 ‘경영권’ 문제라는 이유로 불법으로 규정되면,

회사는 이를 빌미로 개인을 파산시키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여 노조를 와해시킨다.

노란 봉투법은 이 모든 과정을 차단하고, 갈등을 파국이 아닌 대화와 협상으로 유도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노란 봉투법이 ‘파업 만능주의’를 부추겨 ‘파업 공화국’을 만들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송곳’의 전개 과정을 보면 이러한 주장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

푸르미 마트의 파업은 대화를 위한 모든 노력이 좌절된 후의 최후의 수단이었다.

법의 진정한 목적은 파업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파업에 이르기 전 단계에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합리적인 통로를 만드는 데 있다.

‘진짜 사장’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내고, 구조조정과 같은 중대 사안에 대해 노동자의 목소리를 반영하도록 함으로써, 오히려 불필요한 극단적 대립을 예방하는 ‘갈등 관리 메커니즘’으로 기능할 수 있다.

이 법은 파업권을 보호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협상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함으로써 파업의 필요성 자체를 줄이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법은 통과되었지만, ‘송곳’은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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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노란 봉투법의 통과는 노동계의 ‘20년 숙원’이 해결된 역사적인 진전이다.

이 법은 한국의 노동법 체계를 국제적인 기준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게 했으며,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인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완화할 중요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그러나 법의 통과가 곧바로 모든 문제의 해결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축배를 들기에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가장 큰 과제는 법의 해석과 현장 안착이다.

개정법의 효력은 ‘실질적 지배력’이라는 개념을 법원과 행정기관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판단하고 적용하는지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이다.

이 모호한 법적 개념을 둘러싼 해석 투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며,

정부가 마련할 시행령과 지침은 노사 양측의 치열한 힘겨루기 대상이 될 것이다.

또한, 경영계는 여전히 투자 위축과 기업 경쟁력 약화를 이유로 강한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어, 법의 안착 과정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무엇보다 법 하나로 뿌리 깊은 조직 문화가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는다.

‘송곳’에 등장했던 정민철 부장이나 허경식 과장처럼, 두려움과 야망, 그리고 노동에 대한 경멸이 뒤섞인 관리자들의 인식은 법 개정만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법은 하나의 틀을 제공할 뿐, 그 안을 채우는 것은 사람들의 인식과 실천이다.

이 법의 성공은 단순히 상징적인 투쟁의 승리를 넘어,

일상의 노사 관계에서 제도화된 관행으로 자리 잡는 지루하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만 완성될 수 있다.

투쟁의 무대가 광장에서 법정과 위원회 회의실로 옮겨간 셈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송곳’의 마지막 메시지를 떠올려야 한다.

노란 봉투법은 과거 수많은 ‘송곳’들이 불의의 벽을 뚫어낸 결과물이다.

이 법은 미래의 이수인과 구고신에게 더 나은 방패와 무기를 쥐여줄 것이다.

하지만 법은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다.

법에 명시된 권리가 현장에서 살아 숨 쉬게 하려면,

새로운 ‘송곳 같은 인간’들이 끊임없이 나타나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연대하고, 부당함에 맞서야 한다.


‘송곳’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가장 중요한 교훈은,

인간의 존엄을 위한 싸움은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되는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 싸움은 마트의 계산대에서, 공장의 조립 라인에서, 배달 오토바이 위에서 매일 새롭게 시작된다.

법은 통과되었지만, 우리 사회의 어둡고 부조리한 구석을 향한 ‘송곳’의 역할은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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