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적 번역과 무대의 기록, 그 결정적 차이
여기,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은 두 편의 뮤지컬이 있다.
프랑스혁명의 격랑 속 민중의 삶을 그린 '레미제라블'과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의사의 삶을 조명한 '영웅'.
두 작품 모두 압도적인 음악과 숭고한 서사를 무기로 스크린에 화려하게 부활했다.
관객은 거대한 스크린과 서라운드 사운드를 통해 무대와는 또 다른 차원의 감동을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는 종종 다른 감정으로 귀결되곤 한다.
어떤 영화는 심장을 울리는 거대한 에너지로 다가와 관객을 이야기의 한복판으로 끌어당기는 반면,
어떤 영화는 스크린과 관객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을 세워 어색한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레미제라블'이 전자였다면, '영웅'은 아쉽게도 후자에 가까웠다.
두 영화의 운명을 가른 결정적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었을까?
'레미제라블'의 톰 후퍼 감독은 뮤지컬을 영화로 '번역'하는 과감한 방법을 선택했다.
그는 배우의 얼굴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극단적인 클로즈업과
모든 노래를 촬영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녹음하는 방식을 택했다.
앤 해서웨이가 'I Dreamed a Dream'을 부를 때,
카메라는 완벽하게 다듬어진 목소리가 아닌, 눈물과 콧물에 뒤섞인 그녀의 거친 숨소리와 미세한 얼굴 근육의 떨림까지 남김없이 포착한다.
관객은 판틴의 절망을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고통스러운 내면을 직접 체험하게 된다.
이는 영화라는 매체만이 가능한, 지독하리만치 내밀한 몰입의 경지였다.
반면 '영웅'의 윤제균 감독은 뮤지컬을 영화로 '전시'하는 길을 택한 듯하다.
라이브 녹음 방식을 도입하며 현장감을 살리려 노력했지만,
많은 장면이 영화적 재해석보다는 무대 위 구성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인상을 준다.
특히 관객의 감정선을 깨뜨린 대표적인 장면이 "그럴 만두 하지~"라는 대사와 함께 등장하는 유머 시퀀스다.
무대에서는 분위기를 환기하는 유쾌한 약속으로 기능했을지 모르나,
안중근의 비장한 서사가 중심인 영화의 흐름 속에서는 너무나 뜬금없고 가벼워 몰입을 방해하는 '불청객'이 되고 말았다.
영화의 언어로 서사를 쌓아 올리기보다, 무대의 약속들을 안전하게 스크린 위에 나열하는 데 그친 것이다.
'영웅'이 남긴 어색함은 영화 곳곳에 배치된 작위적인 장치들에서 더욱 증폭된다.
첫째, 평면적인 캐릭터 서사다.
영화 속 안중근은 입체적인 인간으로서의 고뇌를 보여주기보다, 처음부터 끝까지 '독립'이라는 대의를 결의하고 또 결의하는 영웅의 모습으로만 그려진다.
그의 내면적 갈등과 성장이 생략된 채 결의만 반복하는 모습은 관객이 감정적으로 동화될 틈을 주지 못하고 '위인전'의 한 페이지를 넘기는 듯한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둘째, 기능적으로 소모된 관계들이다.
마진주(박진주 분)와 유동하(이현우 분)의 풋풋한 로맨스는
그들의 감정이 쌓이는 과정 없이, 오직 막내 단원의 죽음을 극적으로 만들기 위한 장치로 급조된 인상을 준다.
또한, 정보원 설희(김고은 분)가 눈보라 치는 달리는 기차 위에서 결의를 다지며 노래하는 장면은 비장함보다 기시감을 먼저 느끼게 한다.
"마치 디즈니의 엘사가 된 것 같다"는 감상이 나오는 이유는,
시대적 현실감을 담보해야 할 영화가 너무나 익숙한 현대 판타지 뮤지컬의 연출 공식을 무비판적으로 차용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장면들은 유기적으로 엮여 감정을 고조시키는 대신,
저마다 다른 장르의 영화를 보는 듯한 이질감과 어색함만을 남겼다.
결국 '레미제라블'과 '영웅'의 결정적 차이는 뮤지컬이라는 원작을 대하는 '존중의 방식'에 있었다.
'레미제라블'은 무대의 에너지를 영화의 언어,
즉 '클로즈업'이라는 내밀함으로 완벽하게 치환해 새로운 차원의 감동을 창조했다.
배우의 불안정한 호흡과 흔들리는 눈빛마저 이야기의 일부로 끌어안으며,
관객을 혁명의 한복판으로 소환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영웅'은 웃음, 눈물, 로맨스, 애국심이라는 흥행 공식을 기계적으로 조합하고, 무대의 감동을 스크린에 안전하게 '기록'하는 데 머물렀다.
그 결과 영화의 모든 요소는 서로 섞이지 못하고 겉돌았고,
관객은 벅찬 감동 대신 잦은 어색함과 마주해야 했다.
훌륭한 뮤지컬 영화는 단순히 노래를 스크린으로 옮기는 것을 넘어,
영화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다시 창조할 때 탄생한다.
'레미제라블'은 그 창조의 힘을 보여준 좋은 예이며,
'영웅'은 그 힘을 보여주지 못해 아쉬움을 남긴 예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