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넷플릭스 닉네임은 왜 '마농'일까

꾸벅꾸벅 졸던 소년이 깨닫게 된 것

by 이땃쥐

모든 것의 시작은 어머니께 내 넷플릭스 계정을 공유해 드리면서부터였다.

프로필을 만들고 닉네임을 여쭤보니, 어머니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마농'이라고 하셨다.

순간, 아주 오래된 기억의 조각이 떠올랐다.

내 유년 시절, 어머니가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우리 형제를 앉혀놓고 보여주시던 영화, '마농의 샘'.


그 시절 우리 집에는 아주 작은 LCD 모니터가 있었다.

어머니는 그 작은 화면으로 넘실거리는 프랑스 프로방스의 광활한 언덕을 보며 소녀처럼 행복해하셨다.

하지만 당시 내 세상은 온통 다른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외계인이 출몰하고(맨 인 블랙),

가상현실 속에서 총알이 날아다니며(매트릭스),

총알보다 빠른 자동차가 파리의 골목을 질주하는(택시) 시각적인 쾌감.

그런 자극적인 맛에 완벽하게 중독된 어린 소년에게

'마농의 샘'의 긴 러닝타임과 잔잔한 서사는 견디기 힘든 고역이었다.

결국 나는 어머니의 행복한 얼굴 옆에서, 그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고 꾸벅꾸벅 잠이 들곤 했다.


그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 눈에는 한없이 느리고 무난하게만 흘러가는 저 이야기를 보며 어머니는 왜 그토록 행복해하셨을까.

그 깊은 미소의 의미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게 되기까지는,

소년이 어른이 되는 것만큼이나 긴 시간이 필요했다.


어머니는 1970년생이시다.

1986년, 영화 '마농의 샘'이 세상에 나왔을 때,

어머니는 가장 예민하고 감수성 풍부한 10대 소녀였다.

훗날 어머니는 '삐삐 롱스타킹' 같은 작품도 참 좋아하셨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생각해 보면 두 작품 속 주인공은 닮은 구석이 있다.

어른들의 세계에 굴하지 않는 당돌함,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는 독립심,

그리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자유로운 영혼.


특히 '마농'은 어머니 세대의 소녀에게 더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을 것이다.

배우 엠마뉴엘 베아르가 연기한 마농은 단순한 미모를 넘어,

꾸미지 않은 야생의 아름다움과 누구에게도 길들여지지 않는 강인한 생명력 그 자체였다.

그녀는 슬픔에 주저앉는 비련의 여주인공이 아니라,

자신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마을 사람들의 탐욕에 맞서

그들의 생명줄인 '샘'을 막아버리는 지혜롭고 대담한 복수의 화신이었다.

어머니가 마농에게 그토록 깊이 빠져들었던 이유는,

어쩌면 그녀의 모습에서 자신의 또 다른 자아를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의 마음속에도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정의감과,

세상의 잣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나가고픈 뜨거운 열망이 늘 존재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 소녀가 여자가 되고, 아내가 되고, 그리고 '어머니'가 되는 과정은

내면의 '마농'을 잠시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두어야 하는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

세상의 모든 부당함에 일일이 맞서 싸우기엔,

당신의 품 안에서 새근새근 잠든 자식들의 평온을 지켜내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고 절박한 현실이었을 것이다.

불의를 보고 끓어오르는 마음을 드러내기보다,

내 아이의 밥상을 차리고 찢어진 옷을 꿰매는 방식으로

가족의 세계를 지켜내는 더 큰 책임을 선택하셨을 테다.

그것은 결코 포기가 아니었다.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가장 위대한 형태의 강인함이었다.


그렇게 어머니는 현실에 두 발을 굳게 딛고,

우리 자식들을 위해 기꺼이 수많은 밤을 눈감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마농'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십수 년이 흘러 넷플릭스 프로필에 새겨진 그 이름은, 바로 그 증거다.

그 이름은 세월의 먼지 속에 희미해질 뻔했던,

가장 순수하고 강인했던 소녀 시절의 자기 자신과의 약속이자 연결고리였을 것이다.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잠시 잊고 지냈던 내면의 목소리를 확인하는 주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어머니의 닉네임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비록 지금은 거친 세상 속에서 우리를 지키느라 닳아버린 어머니의 손을 보지만,

그 마음속 언덕 어딘가에는 여전히 맨발의 소녀 '마농'이 양 떼를 몰며 자유롭게 피리를 불고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강인함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을 수 있었다고.


이 글은 나의 어머니, 그리고 한때는 모두 '마농'이었을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바치는 헌사다.

당신의 마음속 소녀는 결코 늙거나 사라지지 않았다고,

우리는 그 강인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기억하고 사랑한다고.

오늘, 나는 어머니의 닉네임을 조용히 불러본다. 나의 영원한 샘, 나의 마농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