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치 않았던 명작들, 아버지가 남긴 유산

비디오 가게에서 벌어진 작은 취향 전쟁

by 이땃쥐

돌이켜보면 아버지는 유독 전쟁 영화를 좋아하셨다.

평생 이렇다 할 직업 대신 한량의 풍류를 택했던 아버지에게,

네모난 브라운관 속 세상은 그가 유일하게 몰두할 수 있었던 왕국이었다.

VCR 헤드가 늘어지도록 본 테이프들은 언제나 피와 먼지로 자욱했다.

'킹덤 오브 헤븐'의 십자군이 예루살렘 성벽을 넘을 때,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병사들이 노르망디 해변에 쓰러져 갈 때,

아버지는 낡은 방석에 비스듬히 기댄 채, 혹은 방바닥에 배를 깔고 턱을 괸 채 스크린을 응시했다.

'글래디에이터'의 검투사가 포효하고 '300'의 전사들이 창을 맞부딪치는 그 모든 순간을 사랑했다.

심지어 '스타워즈'나 '반지의 제왕' 같은 판타지 영화를 보면서도

당신이 집중했던 것은 광선검이 부딪치고 오크와 인간이 뒤엉켜 싸우는 거대한 전쟁의 풍경이었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싫었다.

정확히는, 아버지가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오는 그 묵직하고 어두운 영화들이 싫었다.

어린아이의 눈에 비친 스크린 속 세상은 이해하기엔 너무 복잡했고, 받아들이기엔 너무 잔인했다.

검붉은 피가 튀고, 무거운 신념을 위해 누군가 죽어나가는 이야기는 나에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했다.

그저 무섭고, 지루하고, 빨리 끝났으면 하는 고역일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가 비디오를 빌리러 갈 때면 늘 껌딱지처럼 따라나섰다.

아버지의 취향에 내 저녁 시간을 송두리째 빼앗길 수 없다는 나름의 필사적인 저항이었다.

당시 아이들에게 비디오 가게는 별천지였다.

빽빽하게 꽂힌 플라스틱 케이스들 속에서, 나는 아버지의 시선이 닿지 않는 가장 구석진 곳으로 달려갔다.

내 목표는 명확했다.

'택시'의 유쾌한 질주, '마스크'의 정신 나간 변신, '맨인블랙'의 시크한 유머, '스파이더맨'의 짜릿한 활강.

복잡한 정치나 역사, 신념 따위는 몰라도 괜찮았다.

개성 넘치는 주인공이 등장해 시원하게 이야기를 끌고 가는, 머리 아플 것 없는 직관적인 즐거움.

그것이 내가 영화에 기대하는 전부였다.


그렇게 아버지의 장바구니에 담긴 전쟁 영화와

내 손에 들린 어린이 영화 사이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시작되곤 했다.

중세 시대의 권력 다툼이나 사극의 복잡한 인물 관계도는 어린 나에게는 풀어야 할 숙제처럼 느껴졌다.

나는 여전히 그런 장르들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를 보면서까지 무언가를 공부하고 싶지는 않았던,

그때의 어린 마음이 아직 내 안에 남아있는 지도 모른다.


그 시절엔 유튜브도, 넷플릭스도 없었다.

한량이었던 아버지가 빌려온 비디오가 재생되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꾸벅꾸벅 졸면서 화면을 응시하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수많은 전쟁과 전투, 영웅들의 고뇌를 '어쩔 수 없이' 통과해야 했다.

재미없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그 이야기들을 온몸으로 흡수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꾸벅꾸벅 졸며 봤던 그 원치 않았던 명작들이,

지금의 내가 영화를 선택하고 이해하는 데 가장 큰 자산이 되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영화를 비교하며 나만의 취향을 확고히 다질 수 있는 기준점이 되어주었고,

왜 어떤 이야기는 재미있고 다른 이야기는 재미없는지 분석할 수 있는 나름의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주었다.

덕분에 나는 이제 웬만한 고전 명작 속 '밈(Meme)'들은 막힘없이 이해하고,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자연스럽게 그 맥락을 공유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그것은 한량 아버지가 의도하지 않았던, 나에게 남겨준 값진 문화적 유산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비디오 취향 전쟁'은 결국 나의 승리로 끝나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돌이켜보니, 그 전쟁의 진정한 승자는 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한량이었던 아버지는 현실에서는 가질 수 없었던 자신만의 왕국과 명예를,

그 거대한 서사 속에서나마 소유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서툰 방식으로나마, 그 찬란한 세상을 아들과 공유하고 싶었을 테다.


나는 지금도 종종 영화를 되감는다.

단순히 놓친 장면을 다시 보기 위함이 아니다.

그 시절 아버지가 왜 저 장면에서 눈을 빛냈을까,

왜 저 대사에 잠시 침묵했을까, 그 마음을 되감아보기 위함이다.

그것이 내가 영화를 되감기 시작한 아주 오래된 이유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