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무게와 소년의 감수성 사이
내게는 두 살 터울의 형이 있다.
두 살이라는 나이 차이가 무색하게, 우리 사이에는 늘 옅은 거리감이 존재했다.
어릴 적 "형아, 형아"하며 그의 뒤를 쫓던 기억이 생생하지만,
내가 중학생이 되던 해 형이 기숙사가 있는 학교로 떠나면서 우리는 '부대끼며' 자랄 기회를 놓쳤다.
어쩌면 그게 전부가 아닐지도 모른다.
넉넉지 않았던 가정형편 속에서 형은 어린 나이부터 어른이 되어야만 했다.
맏이로서의 무게를 짊어진 형은 내게 형제라기보다는 '작은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나는 그런 형을 존경했지만, 동시에 어려워했다.
그렇게 내 기억 속 형은 늘 단단하고, 책임감 강하고, 자신의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어른의 모습으로 박제되어 있었다.
적어도 그날 밤, 텐트 안에서 함께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때는 저작권 개념이 희미하던 시절이었다.
온 가족이 함께 떠난 캠핑,
나는 당시 큰 충격을 안겨주었던 제임스 완 감독의 영화 <쏘우 1>을 형에게 보여주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이미 영화를 본 나는 그 잔인함 너머에 있는 천재적인 반전과 서사의 위대함을 형에게 '전도'하고 싶었다.
나는 형의 작은 PMP에 몰래 영화를 담았고, 어른들이 잠든 늦은 밤, 텐트 안에서 그에게 속삭였다.
"형, 진짜 대박인 영화 있는데... 같이 보자~"
지금 생각하면 미성년자였던 우리가 그런 잔인한 영화를 본다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지만,
그때의 나는 사뭇 진지했다.
어른 같기만 한 형과 나란히 누워, 세상에서 가장 자극적인 비밀을 공유한다는 사실에 잔뜩 들떠 있었다.
나는 형이 곧 마주할 반전에 어떤 표정을 지을지 기대하며 스크린과 형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하지만 정작 그날 나를 사로잡은 것은 영화의 충격적인 반전이 아니었다.
스크린 빛에 희미하게 비친 형의 얼굴이었다.
영화 속 인물들이 끔찍한 고통을 겪을 때마다,
형은 마치 자신이 그 고통을 겪는 듯 미간을 찌푸리고 입술을 깨물었다.
탄식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를 내뱉으며 괴로워했다.
그것은 공포에 질린 표정이라기보다는, 타인의 고통을 차마 지켜보지 못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나는 그 순간 처음으로 형의 '초월적 공감능력'을 목격했다.
늘 단단한 껍질에 둘러싸여 있던 형의 가장 여린 속살을 본 것만 같았다.
아, 형은 그저 어른의 역할을 해내고 있던 것이었구나.
이 사람의 내면에는 이렇게나 섬세하고 여린 감수성이 살아있었구나.
나는 영화의 내용보다 형의 표정을, 그의 반응을 더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날 나의 첫 공포영화는 스크린이 아닌, 형의 얼굴이었다.
'어른'이라는 역할 뒤에 숨겨진, 상처받을 줄 아는 '한 명의 인간'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그날의 기억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불쑥 떠올라 나를 웃게 한다.
몇 년 전, 손바닥만 한 작은 강아지를 집에 며칠 데려온 적이 있었다.
그 강아지를 본 형은 너무나 귀여워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끝내 손가락 하나 대지 못했다.
"너무 작아서... 부서질 것 같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텐트 속에서 <쏘우>를 보며 괴로워하던 소년의 얼굴을 떠올렸다.
MBTI로 사람을 정의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우리 형은 누가 뭐래도 '대문자 F'다.
타인의 고통에 깊이 아파하고, 작은 생명의 연약함에 차마 손대지 못하는 사람.
맏이라는 무게에 짓눌려 표현하지 못했을 뿐, 그의 본질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어색했던 형과의 관계를 되감을 때, 텐트 속에서 함께 본 <쏘우>는 내게 가장 중요한 필름 조각이다.
그날의 경험은 우리의 거리감을 단숨에 좁혀주진 못했지만,
나는 적어도 형이라는 영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때로는 한 편의 영화가, 스크린 너머 가장 가까운 사람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