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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eh Jul 25. 2023

로마의 휴일

영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그리고 요즘 이야기도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18년 전, 그러니까 2005년의 나와 로마 이야기다, 아니 내가 로마로 가게 된 이유의 이야기다.


2005년 여름, 나는 로마에 있었다. 끈적이지 않은 여름이 눈 부시고 좋았다. 두 달 동안 로마에서 있었으니 이 정도면 생활이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내가 이 주도 아니고 두 달씩이나 로마에 체류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TTL과 영란이 덕분이었다.


TTL을 아시나요?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TTL을 아무래도 소개는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TTL은 1999년 SK텔레콤에서 론칭한 휴대전화 서비스 브랜드다. 타깃층이 19세~24세였기 때문에 대부분 고객이 대학생인 것이다. SK텔레콤은 방학기간 동안 유럽을 배낭여행하는 젊은 20대 고객에게 4-5성급 호텔에서 2박씩 무료로 잠을 재워 보냈다.(역시 대기업 마케팅은 스케일이 달라도 다르다) 내가 간 2005년에는 런던, 파리, 인터라켄 그리고 로마, 이렇게 4개 도시에서 SK텔레콤과 협약을 맺은 호텔이 한국 대학생들을 맞이했고 나는 로마에 있는 호텔에서 미리 예약한 TTL고객을 확인하고 방문날짜에 맞춰 체크인과 체크아웃을 도와주고 이벤트도 만들어 함께 하는 현지 스태프였다. 한마디로, 2005년의 나의 로마 방문은 돈도 벌고 여행도 했던, 그야말로 꿩 먹고 알도 먹었던 경험이었다.


꿩도 먹고, 분명 알도 먹었지만 스트레스는 큰 사발에 시간 시간 막 비벼 먹었다. 돈 버는 일 중 스트레스받지 않는 일이 어디 있으랴. 스태프는 한 호텔에 2명씩 배치되었는데, 나와 로마로 함께 간 동료는 - 그때 나보다 한 참 어린 동생이었는데, - 서로 맘이 맞지 않은 상태로 두 달을 버텼다. 그리고 TTL 고객을 위해 거의 매일 이벤트를 준비해야 했다. 예를 들면 콜로세움 야경 보러 가기, 공원에서 수박파티 하기 등. 그리고 새벽 2-3시에 오는 고객도 꽤 많았다. 그러면 당연히 그 새벽에도 일어나서 체크인을 도와주어야 한다. 새벽에 체크인을 도와주어야 할 때는 번갈아 가면서 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 동료는 일어나기 힘들어 육두문자 남발하며 끝내 일어나지 않아, 아니 일어나지 못해 내가 대신해야 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 후로 나는 그 동료가 싫어졌고 우리는 사이가 급속히 나빠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보다 한참 어린 동생이었는데, 왜 언니답게 품을 줄 몰랐을까!

콜로세움 야경을 배경으로 TTL고객들과 함께


체크인과 체크아웃 사이에 점심을 해결하고 이벤트 준비물 챙기는 거 외엔 로마 시내를 마르고 닳도록 걸어 다녔다. 파트너와 싸웠기 때문에 개인시간은 늘 혼자였다. 그땐 그게 편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재미는 없었던 것 같다. 떼르미니 스테이션에서 쇼핑하고, “산티나 호텔” 이름을 보며 싼티난 웃음을 짓지도 했으며, 판테온의 신비함에 입을 다물지 못했고, 바티칸의 정교함과 웅장함 그리고 미켈란젤로의 천정화는 나를 감탄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또한 폴란드 출신 여류 화가, 타마라 드 렘피카(Tamara de Lempicka)를 처음 만나 그녀의 작품에 매료되기 시작한 곳도 로마였다. 한 번은 낮에 포폴로 광장에 있는 교회에 들어갔는데, 들어갔을 때 신부님으로 보이는 분이 한 분 계셨다. 무언가를 하신 후 나가셨는데, 나 혼자 그 큰 교회에 있으려니 무서운 생각이 들어 나도 뒤 따라 나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문이 열리지 않는 것이다. 점심에는 문을 닫는다는 이야기를 언뜻 들은 것 같은데, 그 신부님은 나를 보지 못한 게 분명하다. 다시 오후가 되어 교회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건가! 그러면 체크인 시간에 늦을 텐데... 가뜩이나 파트너와 사이도 안 좋은데. 열심히 손잡이를 잡고 밀어 봤다. 여러 번 여러 번. 아이고 큰일 났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해결을 했다. 그 문은 미는 문이 아니라 당기는 문이었다. 너무 허무한 해결이었지만,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상당한 진땀을 뺐던 기억이 난다.

마지막날 현지 호텔 직월들과 함께


어렵게 그리고 부끄럽게 두 달의 일정을 마치고 우리에겐 공식적인 일주일 휴가가 있었다. 역시 혼자 피렌체와 베네치아를 다녀왔다. 피렌체도 기차표 하나만 끊고 숙소며 관광지 방문 계획은 모두 현지에서 해결했다. 베네치아도 마찬가지였다. 베네치아에서는 마침 비엔날레가 열렸던 해라 운 좋게 '베니스 비엔날레'도 둘러보고 페기 구겐하임도 갔었던 기억이 난다.


고마움과 미안함

동료와 사이가 안 좋았을지언정 이건 분명한 핵꿀알바였다. 이 꿀맛을 소개해준 친구 영란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고,  KT 충성 고객인 나에게 이런 혜택을 누리게 해 준 SK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리고 그때 나의 파트너(이름 기억난다)가 이 글을 보게 될 확률은 오천만 분의 일이지만,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간다면,... 그때 미안했다고 꼭 외치리라. 그리고 2005년 TTL고객으로서 로마 호텔에(호텔 이름은 기억 안 난다) 머물렀던 분들에게 충분한 기쁨과 서비스를 못 해 준 것 같아 미안하다고 이 또한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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