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leh Mar 24. 2024

우리 동네 답사기 3: 산물

제주에 입도한 지 십 년. 한림에 산지도 십 년. 이제 조금씩 마을 구석구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누구나 가고 보는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우리 동네 이야기를 소소하게 적어 보려고 한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유홍준 교수님도 모르는 우리 동네 이야기,... 그 세 번째 이야기다.


용천수

용천수란 단어는 익히 다들 알고 있으리라. 알다시피 제주는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이어서 이 “화산”이란 단어로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산, 한라산이 그렇고 오름, 곶자왈, 밭담, 주상절리, 검은 돌,… 용천수까지. 이 중 세 번째 우리 동네 답사기의 주제는 용천수다. 재미없지만, 우선 용천수의 사전적 의미부터 알아보자. "피압면의 대수층에서 지하수가 누출되는 압력으로 인해 땅에서 솟아나는 물"이라고 적혀있다.(네이버 사전)

1950년대 용천수 이용 모습(이미지 출처: 계간지 “제주” Vol. 11)


쉽게 말해서 한라산에 내렸던 빗물이 땅 속으로 스며들면서 수십 년 후 해안가 쪽에서 물이 다시 뽀글뽀글 솟아나는데, 이 물을 용천수라 부르고 제주도는 용천수에서 식수 얻고, 목욕도 하고, 빨래도 했으며, 채소도 씻었다. 2003년 자료에 보면 한림읍만 해도 100여 개에 가까운 용천수가 있다고 나와 있다. 모든 사람들에게 이름이 있듯이, 모든 용천수에도 이름이 있다. 우리 집 반경 2Km 이내에 있는 것만 나열해 보면 개명물, 문수물, 고도물, 짐수네물, 엉기정물, 선수물, 엿그못....산물 등이 있다. 그러나 이 중에서 현재 사용하고 있는 용천수는 겨우 개명물, 고도물 정도다. 이번 글 제목이 산물인 이유는, 우리 동네 용천수로써, 그 역사를 이야기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네이버 검색에도 안 걸러지는 우리 동네 산물. 우리 옆집 브로콜리 할머니는 1950년 대 우리 마을로 시집오시면서 산물에서 물 허벅에 물 길러 생활했다고 하셨다. 첫째 딸과 둘째 딸까지 산물에서 물 길어 먹었고 그 이후 딸 들은 수돗물 세대라고 했다.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산물의 현재 모습


산물

사실 산물은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용천수다. 그런데 그 역사가 찬란하다. 산물은 '산에서 내려온 물'이라 해서 산물이라고 했는데, 웬만한 가뭄에도 잘 마르지 않아 월림이나 저지사람(5km미터 밖 마을)들도 가뭄 때면 산물까지 물 길러 왔다고 한다. 지금 산물이 있는 동네는 예전에 관에서 운영하던 논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 마을 지목을 보면 몇 군데가 아직도 "답(畓)"으로 되어 있다. 제주도에 귀한 "답"이 우리 마을에 존재하고 있는 거다. 물론 현재 벼농사를 짓고 있는 건 아니다. 그러니 산물길이 있는 명월하동 마을은 아주 아주 오래전부터 터를 잡고 살았던 선주민 마을이 아니라 답을 메우고 난 후 20여 가구의 이주민이 들어와 형성된 곳이다. 산물에서 300m 정도만 가면 한국농어촌공사에서 제주도 최초로 개발한 암반지하수 관정이 있다. 개발 연도 1970년 5월이라고 적혀 있다.

제주최초 한국농어촌공사 암반지하수 관정(1970. 5.)


산물에서 바닷가 쪽으로 1Km 내려가면 논처럼 물 댄 미나리 재배지가 여러 군데 있고, 거기서 또 바닷가 쪽으로 400m만 가면 그 유명한, 화산암반수로 소주를 만든다는 “한라산 소주” 공장이 있다. 그만큼 한림에서도 명월, 동명, 옹포 쪽엔 물이 풍부했었다. 물이 좋으면 사람이 모여드는 법. 적어도 수도가 생기고, 교통이 편리해지기까지는 한림이 제주시 다음으로 가장 큰 지역이었다고 한다.

한림읍 한림리에 위치한 "고도물"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2020년)


참 신기하게도 용천수는 여름엔 어름짱처럼 차갑고, 겨울엔 미지근할 정도로 물이 온화하다. 한림리에 위치한 고도물은 바닷가와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고, 아직도 동네 할머니들이 빨래도 하고 야채도 씻으신다. 아마도 한림에서 가장 크고 지금도 활발히 사용하고 있는 곳은 고도물뿐인 듯하다. 우리 아이 학교 바로 옆에 있어서 가끔 고도물에 들러 놀다갈 때도 있다. 이제는 편리한 수도가 있기에, 용천수의 필요성은 사라졌다. 그러나 편리성이라는 이름하에 우리의 문화가 사라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용천수 살리기 운동도 이루어지는 것 같은데, 더 이상 사용하는 사람들이 없으니 이 움직임도 뜨뜻미지근한 것 같다. 상당히 아쉬운 일이다. (산물 위치: 명월리 2076-1 / 한림읍 산물길 20 맞은편)



작가의 이전글 우리 동네 답사기 2: 한림수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