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네가 왔다
2024년 여름, 더위는 잔인했다. 매미 소리는 우렁찼고 능소화랑 배롱나무꽃만 제철을 즐겼다. 입추가 지나고 처서가 지나도 무더위는 꿋꿋했다. 가을이 쉽게 올 것 같지 않다. 이 와중에 나는 용감하게 글쓰기 수업을 여러 개 신청했다. 어색한 Zoom 수업까지. 글쓰기는 숙명처럼 내 주변을 서성였고 도서관은 글을 낳는 모태가 되었다.
누구에게나 좋아하는 일이 있다. 어떤 이는 빈둥빈둥 멍때리기를 좋아하고 다른 이는 땀 흘리며 노동하는 것을 즐긴다. 또는 정리 정돈을 즐기거나 창의성을 핑계 삼아 어질러놓는 것을 좋아하기도 한다. 때에 따라서 중독이나 강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기도 하지만 지문만큼이나 ‘나’를 대표하기도 한다,
인천 도서관의 ‘읽걷쓰’ 사업은 번창하고 있다. 제목이 암시하듯 쓰기에 방점을 찍는다. 시민 작가 칭호를 얻기 위한 수강생들의 노력은 기특하다. 나 역시 포토 에세이와 여행 에세이 수업에서 도출한 원고로 공저 자격을 얻은 경험이 있다. 이번 여름에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했다. 그림책을 보며 떠오르는 소재로 에세이 쓰는 강의와 창작동화 쓰기 수업을 병행했다. 나의 성실함은 ‘브레인스토밍’ 경험을 안겼다. 글쓰기 과제는 버거운 작업이며 부담이지만 긴장과 재미도 따라온다. 퇴고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며 다듬어지는 글은 매번 반짝였고 글력이 붙었다는 느낌이 확실히 든 것은 큰 소득이다.
‘문자에 중독되어 가나?’
우습지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등 떠밀려 했다면 중도에 포기했을지 모른다.
약속된 시간 내에 쓴 글은 아이를 출산한 듯한 감동을 주었다. 초보자의 글은 선생님의 질문과 격려, 문우들의 아찔한 합평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창작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글벗들은 몇 편의 에세이와 동화를 낳을 힘을 주었다. 나 혼자 쓴 것은 분명 아니지만 나의 분신인 것도 맞다. 개인의 지향점이 다른 만큼 글은 다양했고 각자의 알록달록한 생각들을 드러내 아름다웠다.
더위와 씨름하며 착즙하듯 최선을 다했다. 성실함에 스스로 놀랐다. 이 여름에 찾아온 나의 아이들은 그래서 더 향기로울 수 있다. 모처럼, 완성된 글맛을 본 나는 ‘읽걷쓰’ 최대 수혜자다.
나이 들면서 글쓰기만 한 취미는 없는 것 같다. 사소한 것에도 눈길을 주어야 글감을 가져온다는 것을 안다. 무더위를 살아내며 만난 너희들이 자랑스럽다. 나에게는 최상의 선물이다. 문집을 기다리는 마음이 설레고 떨린다. 나의 두 손이 어깨를 따뜻하게 토닥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