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
요즘 쇼핑으로 바쁘다. 소비를 질색하는 남편은 돈 안 쓰는 쇼핑을 환영한다.
인천 도서관 ‘읽 걷 쓰’ 수업을 과하게 신청했다. 누가 알면 엄청난 부지런 쟁이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그건 아니다. 글쓰기에 욕심이 생기는 것은 자꾸 날아오는 도서관 수강 신청 문자 탓이다. 아니, 덕이다. 전업 작가가 아닌 아마추어는 글 한 편 쓰기 힘든 사람이다. 그래서 강의를 신청하게 된다. 수업 중 과제를 도출해 내기 위해 쥐어짜 내는 글이라도 얻기 위해서다. 수고로움을 감내할 각오는 필수다. 퇴고의 늪에 허우적거릴 줄 알면서도 덤비는 모양이 아마도 팔자인가 싶기도 하다. 개미지옥에 빠질 게 뻔하다.
모든 수업에는 숙제가 부록처럼 따라온다. 그래도 신기한 것은 낑낑거리면서도 글이 나온다는 것이다. 농촌 모내기 철에는 ‘부지깽이 손이라도 빌려 쓴다.’ 했다. 어떻게 해서라도 드러난 바닥을 채울 낱말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쓴다. 마감이 임박하면 압박도 있지만 그로 인해 오는 순기능도 있다. 사용할 단어가 고갈된 상태에서도 어휘들이 갑자기 생각나는 기적을 맛보는 것이다. 공저이긴 하지만 책이 나온다는 감동에 중독되어 손가락이 움직인다. 수강 신청 완료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2025년에 쇼핑한 상품 중에서 인상적인 것을 꼽으라면 ‘포토에세이’다. 첫 시간, 강사님은 휴대전화에 저장된 사진 하나를 선택해 자기소개 글을 써 보라고 주문했다. 다들 분주해졌다. ‘나를 설명할 사진이라….’ 고민하다가 나무의 표정을 찍은 사진을 골랐다. 그렇게 해서 얻은 글이 “안부가 궁금해서”다. 참신한 작업이었다.
『걸음을 멈추고 웃는다. 눈, 코, 입이 선명한 벚나무의 얼굴을 마주해서다.
‘나무는 한결같은 자리에 묵묵히 서 있었는데 왜 이제야 그 모습이 눈에 들어온 걸까?’
지나가는 사람들도 나무의 표정을 읽는지 궁금해 두리번거렸지만, 그런 기색은 없었다. 나무가 내 마음에 들어왔다. 나무에 좋아하는 가수 이름을 오마주한 ‘나무스쿠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며칠 후, 그곳을 다시 찾았다. 재미있는 변화가 일어났다. 나무스쿠리 입 주변에 초록 이파리 하나가 돋아나 있었다. 마치 그녀가 새순을 씹는 모습처럼 보여 까르르 웃음이 터졌다. 그녀의 안부가 궁금해지면 나는 산책을 나선다.
‘너에게로 가는 내 마음이 즐거우니 너도 내가 반갑겠지?’
사소한 것에 애정이 없었다면 나무의 얼굴을 살필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일상에서 줍는 작은 웃음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사람이다.』
‘재미있는 표정을 보는 것에 그칠 수도 있었는데 사진으로 남길 생각은 어떻게 했을까?’
‘나무 표정을 담은 사진 한 장이 나를 설명하는 글로 반짝 태어나다니!’ ‘아, 이런 발상도 있구나!’
앨범 속 사진이 글로 부활한 느낌이었다.
쇼핑이 선물한 글들은 착즙하듯 애써 얻어낸 나의 이야기다. 그래서 사랑스럽다. 당분간 나의 쇼핑은 계속될 것 같다. 가성비 좋은 중독이다. 지인들에게 가끔 쇼핑 채널을 소개하기도 한다. 쉽게 그물에 걸리지 않지만 ‘언젠가는 낚아 쇼핑 동지로 만들어야지!’ 예감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