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톤 트럭과 운동장

마시멜로와 교과서

by 정종신

학교 운동장에 1톤 트럭 한 대가 들어왔다. 학기 말이 되면 으레 벌어지는 학교의 익숙한 풍경이다. 트럭 적재함으로 던져지는 것은 다름 아닌 ‘교과서’다. 시험이 끝나고 성적 처리가 마무리되면, 교과서는 이제 그 수명을 다하고 미련 없이 폐지로 돌아간다. 이것이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세상이 되었다.


트럭 위로 쌓이는 책 더미를 보며, 내 기억은 20여 년 전 어느 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한 학생이 당돌하게 교과서를 버리겠다고 나선 적이 있었다. 나는 속으로 '오, 그럴 수도 있겠네'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교무실의 공기는 달랐다. 나이 지긋한 선생님들은 마치 못 볼 꼴이라도 본 듯 혀를 끌끌 차며 세상을 한탄했다. "어떻게 배움의 도구인 책을 함부로 버릴 수 있단 말인가." 그 시절 그분들에게 교과서는 단순한 종이 뭉치가 아니었다. 그것은 함부로 훼손해서는 안 될, 일종의 신성하고 불경스러운 무언가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는 파도와 같았다. 8년 전쯤, 다른 학교에 근무할 때 겪었던 일은 그 변화의 과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학기 말이 되어 담당자는 관례대로 트럭을 부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 관리자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의 시계는 여전히 20년 전의 엄숙주의에 멈춰 있었던 것이다. 학교가 앞장서서 책 버리는 판을 깔아주면 안 된다는, 낡은 꼰대 마인드였다.


결국 트럭은 오지 못했고, 담임들은 난감한 표정으로 아이들에게 "집에 가져가서 알아서 처리하라"라고 지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억지로 막아선 둑이 터지듯, 아이들의 반발심은 엉뚱한 곳에서 폭발했다.


하굣길, 학교 정문에서부터 아이들이 사는 아파트 단지까지 이르는 길바닥 곳곳에 교과서가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심지어 학교 옆, 추수가 끝나고 거대한 마시멜로 같은 곤포 사일리지(Silage)가 뒹구는 휑한 논바닥에까지 책들이 처박혀 있었다. 아이들의 편의를 무시한 채 억지로 지키려 했던 그 고고한 ‘권위’가 겨울바람 부는 논두렁에 처박힌 꼴이라니. 그 우스꽝스럽고도 처참한 풍경은 지금도 뇌리에 선명하다.


그 휑한 논바닥의 교과서를 떠올리며, 그리고 오늘 운동장에 부지런히 책을 싣고 있는 1톤 트럭을 보며 생각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 발짝 떨어져 이 풍경을 바라보는 관찰자일 뿐이지만, 세상은 분명 변했다. 책을 신줏단지 모시듯 했던 엄숙함은 사라지고, 다 쓴 물건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실용만이 남았다.


이게 권위가 바닥을 친 건지, 아니면 그냥 세상이 쿨하게 변한 건지... 굳이 심각하게 따지고 싶지는 않다. 다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이제 교과서를 논두렁에 버리게 만드는 대신 1톤 트럭을 불러주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20년 전 누군가에게는 불경스러웠던 일이 이제는 상식이 되었다. 덤덤한 마음으로, 짐을 가득 싣고 떠나는 트럭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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