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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겔 Jan 30. 2019

여행記

여행을 해본 적은 있지만 여행을 막연하게 동경하고 있었다.

내 기준에 여행이라고 불릴 만한 것을 간 것이 꽤 오래전이었어서 그랬던걸까.

혹은 내 기준에 여행이라고 불릴 만한 것을 가본 적이 없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수험생활의 끝에 나도 남들처럼 막연하게나마 여행을 그리고 있었다.


혹자는 친구들끼리 엠티가는 것도 여행이라고 부르곤 하지만 나에게 여행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여행 한 번 제대로 가본 적 없는 나였지만, 여행에 대한 기준은 명확했다.

(1) 자유로워야 한다.

(2) 고생해야 한다.

(3) 정말 가고 싶어서 가야한다.


스무살이 되기 전까지는 사실상 여행이라 불릴 만한 것을 가본 적이 없었다.

자유로웠던 적도 없었고, 딱히 고생한 기억도 없고, 정말 가고 싶어서 간 기억도 없다.

사실 학생 신분에서 주체적인 여행을 가고자 엄두를 내기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스무살이 된 후에는 여행을 몇 번 갔던 것 같다.

해외로까지 나가본 적은 없었지만, 이래저래 재밌는 경험도 많이 했다.

그러다가 수험생활을 시작하고 끝낸 뒤에는 어느새 이십대 후반.

생각보다 지치고 외로운 경험을 마치고 나니 다시 갈망하게 된 것은 오직 자유였다.

내가 오로지 나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해진 것이다.

익숙해진 것에서 멀어지면 오히려 내가 잘 보인다고 했던가?

그러기 위해서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수없이 많은 여행지를 경험한 사람은 못 된다.

엄청난 사진을 찍었다거나 훌륭한 맛집을 경험한 것도 딱히 아닌 것 같다.

로컬들과 관계를 맺고 오래도록 생활하며 친하게 지낸 것도 아니다.

그래도 누구보다 여행에 애착을 가졌다.

여행지의 모든 것 하나하나 뜯어보려 노력했고 나만의 기억들을 남겨왔다.

비록 그 공간에서 나는 타자였지만, 동시에 나는 나 자신이었다.

앞으로 남기게 될 여행에 대한 이야기들은 오롯이 나만을 위한 헌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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