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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겔 Jan 06. 2020

유럽은 처음이라

해외에 첫 발 내딛기

에어프랑스 항공편을 이용해 파리를 경유하여 바르셀로나로 향했다. 샤를드골 공항을 경유했지만 사실상 처음 밟은 유럽 땅은 바르셀로나였다. 때는 2018년 1월 23일, 한국은 무지막지한 한파가 들이닥쳤지만 바르셀로나는 그보다 온난했다. 세계지리를 공부하며 배웠던 지중해성 기후란 이런 것인가 싶었다. 춥기는 했지만 해양의 영향으로 차가움이 덜했다. 나의 첫 유럽이었다. 


날씨에 대한 생각을 뒤로 한채 공항버스를 타고 에스파냐 광장까지 이동했다. 숙소가 에스파냐 광장에서 5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 곳이었음에도 광장에 내리자마자 발걸음을 옮기기 어려웠다. 처음보는 광경, 흔히 말하는 '유럽느낌'이 그곳에 있었다. 사실 별거 아니었음에도 나에겐 성인이 된 이후 첫 해외, 남들 한 번쯤은 가본 유럽이었다. 밤의 에스파냐 광장은 사실 향후 3일간은 매일 보게될 일상적인 장소였지만 첫키스의 추억이 강렬하듯 첫 유럽의 모습도 강렬했다. 동굴 밖 새로운 세상이 존재함을 목격한 처음이다.


하지만 이 설렘은 얼마 가지 않아 두려움으로 변했다. 듣기로는 유럽여행 중에 소매치기나 관광사기가 그렇게 빈번하다고 했다. 스페인에서 거의 모든 짐을 털린 사례도 들어본적이 있어 경계를 늦출 수 없었다. 에스파냐 광장을 다른 각도에서 찍으려고 핸드폰을 높게 든 찰나, 웬 스페인 사람 두명이 빠른 속도로 자세를 낮추고 내 앞으로 다가왔다. 순간 너무 놀라서 온몸을 웅크리며 무방비 상태로 내 앞에 있던 캐리어를 감쌌다. 그런데 스페인 사람들이 멋쩍게 웃으며 나와 눈을 마주치며 스윽 지나가버리는 것이었다. 순간 온몸의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고 식은땀이 맺혔는데 그들은 나에게 다가온게 아니라 낮은 자세로 그냥 지나간 것이다. 내가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려하니 앵글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낮춘 것이고, 같은 맥락에서 방해하지 않으려고 빠르게 지나간 것이었다.


지나고보니 조금 민망했다. 그 스페인 사람들은 나름 호의를 베푼다고 몸을 숙여주었는데, 나는 그 호의를 적의로 받았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말이다. 그래도 그 겸연쩍은 경험 덕분에 나는 여행에서 타인의 행동에서 적의를 먼저 읽기보다는 순수한 마음을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모든 행동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적의로 판단하면 그런 불행한 여행이 어디있겠는가.





바르셀로나의 새벽 거리는 우리네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행히도 다시 길을 걷다보니 마음은 어느 정도 누그러졌다. 짐을 풀고 동네 마트도 다녀왔고 마트 아저씨와 웃으면서 'buenas noches' 밤 인사를 나눴다.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나와 다른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에는 해보고 싶었던 '외국 거리 아침산책'도 용기내어 다녀왔다. 마치 바르셀로나 시민인양 새벽별이 내리기 전 몇 블럭 걸으며 코에 바람 좀 넣고 왔다. 막상 해보면 할만한 일들이다. 물론 낯설고 잘 모르는 지역인만큼 조심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마음을 닫을 필요는 없다. 마음을 꽁꽁 닫은채 여행을 다니면 마음 속에 아무것도 닿을 수 없다. 어느 정도 틈을 내어줘야 나의 여행이 마음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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