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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겔 Jun 30. 2020

새내기

스물, 대학교 캠퍼스의 어느 곳도 타인의 공간이었다.


많은 이들에게 가장 좋았던 때로 기억에 남는 대학교 새내기 시절, 나에게 캠퍼스는 숨 막히는 곳이었다. 동기들끼리 어디든 삼삼오오 몰려다녔고, 선배들은 점심, 저녁을 가리지 않고 술을 권했다. 사람들은 동방이나 과방에 모여 권태롭게 늘어져있었고, 때론 PC방이나 당구장에서 시간을 보냈다. 나는 그 자리 어디에도 없었다. 내가 생각한 대학생활이 아니었고 흥미롭지도 않았다.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애쓰다가 얕은 관계의 사람들은 부지기수로 늘어났고, 마음 편히 밥 먹고 걸을 공간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과 어울리지 못했다는 압박이 지나쳤던 것일까, 혹은 그런 놀이 문화에 익숙하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이었을까. 언젠가부터 캠퍼스에 들어서는 순간 너무 숨이 막혔다. 관계의 실패가 가져온 질식감을 이기지 못한 채 여름방학이 찾아왔다.


무언가 특별히 하고 싶은 것은 없었고, 목적도 없이 갑자기 토익공부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구립도서관을 찾은 나는 재수를 준비하던 친구와 만났다.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에 별 내용 없이도 한 마디 나누는 것이 소중했다. 그 친구는 나의 실력이 아까우니 수능을 한 번 더 준비해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물었다. 갈 곳 잃은 나에게 친구가 제시한 길은 꽤나 괜찮았다. 입시 결과에 아주 만족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충분히 명분도 있었다. 하지만 다른 대학에 가고 싶은 것 보다도, 그때의 나는 어찌 되었든 도망쳐 숨고 싶었다. 기나긴 여름방학이 지나고, 다시 숨 막히는 캠퍼스로 향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현실에서 도망치기로 결심했다. 불편하고 불만족스러운 캠퍼스를 떠나 안락한 수험생의 시간을 택했다. 나름의 명분이 있으니 내가 보내는 시간에 효능감도 있었고, 무엇보다 오랜 시간 어울려왔던 친구들과 한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니 마음이 편했다. 나는 휴학 신청을 하고 캠퍼스를 떠났다.


하지만 나는 떠나온 곳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성적이 꽤 괜찮아 기대를 했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2월 말이 다 되기를 기다려도 합격 연락이 오지 않자 우선 복학 신청을 했는데, 그날도 나는 캠퍼스에 가지 않았다.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했고 그 공간에 발을 딛기가 두려웠다. 강의실 문이 열리면 모두가 나를 돌아보고, 내 이마에는 실패자라는 낙인이 찍혀있어 비웃음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실패한 관계의 흔적이 오래된 거미줄처럼 캠퍼스 곳곳에 너덜너덜하게 널려있었다. 사실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았을테고, 실패한 관계의 흔적들은 형체 없는 유령 따위에 불과했지만, 나는 그게 너무 무서웠다.


대학교 캠퍼스에 있는 시간 동안 나에게는 질식의 형벌이 가해졌다. 숨 막히는 관계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탈출을 시도했지만, 그마저도 실패했다는 후유증 때문에 한동안 학교 근처에서 밥을 먹지 못했다. 누군가 내 얼굴을 아는 사람과 마주칠까 두려워 왕복 30분 거리의 패스트푸드점으로 도망 아닌 도망을 다녔다. 그곳은 우리 학교 학생들이 잘 찾지 않는 한산한 곳이라서 숨 막히는 캠퍼스에서 달아나 숨기에 좋은 은신처였다. 식사 시간의 도망을 비롯하여 캠퍼스에서 벗어나 숨어 살다 보니 수능이나 한 번 다시 준비하면 좋겠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간절히 입시의 성취를 바란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저 이미 익숙한, 편하면서도 무언가 하고 있다는 느낌을 충분히 주는 은신처가 필요했을 뿐이다.


어느샌가 나는 도망치고 숨을 생각을 먼저 하는 의사결정에 익숙해졌다. 새내기 시절 기대했던 관계 형성에 실패한 이후, 인생의 모든 국면에서 도망치는 결정밖에 내리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처음엔 숨 막히는 현실이 너무 어려워 스스로를 위로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변명할 수 있었지만, 어느샌가 매사 책임감이 희미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강의를 들으며 지각하거나 결석하는 것은 보통 일이었고, 수강을 포기하고 싶다는 이유로 시험을 보지 않은 적도 있었다. 봉사활동도 자발적으로 선택하고 모임장까지 맡았지만, 책임을 놓아버리고 도망치는 행동을 그만두지는 못했다. 도망쳐버리면 편하다는 이유로 내 삶의 많은 부분에서 무책임하게 굴며 사람도, 학업도, 일도 쉽게 놓아버렸다. 




시간이 흘러 이젠 서른, 나는 한 회사의 새내기가 되었다. 그리고 회사 어느 곳도 역시나 타인의 공간이다.


하지만 이제 회사가 타인의 공간임을 인정하고 공존할 수 있다. 사실 회사와 캠퍼스뿐만 아니라 세상 어느 곳도 타인의 공간이다. 다만, 이제는 동시에 그 공간이 나의 공간이 될 수도 있음을 안다. 비단 어떤 공간이나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인생의 모든 상황과 경우에는 답답하고 어려운 순간이 많은데, 결국 도망치고 숨는 것은 해답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 알기 때문이다. 여전히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 있고 숨고 싶을 때가 있다. 잘 해결되지 않아 답답한 문제들이 있고, 그저 나는 어딘가에 숨어있기를 바랄 때도 있다. 하지만 영원한 도피를 위해서는 삶의 많은 부분에서 책임을 지지 못하게 되고,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도피할 수가 없다. 물론 숨어있으면 책임을 질 필요도 없다. 하지만 평생 숨어 사는 것은 내가 바라는 삶이 아니었다. 과거에 도망치고 숨는 삶 끝에 보게 된 것은, 누구에게도 떳떳하지 못한 나 자신밖에 없었고, 나에게 한 줌 자기애라도 남아있었는지 그 모습에 너무 놀라 울컥하고 말았다.


스물의 새내기는 마음에 눈물 자국이 남았고, 그렇게 서른의 새내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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