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삶은여행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르겔 Jan 14. 2021

자기만의 탑

[사진과 단상] 경상북도 경주 남산

신혼여행 때 경주에서 이틀을 머물렀는데, 그중 하루는 남산을 걸었다. 이 대목에서 혹자는 신혼여행 때 등산을 하게 된 신부에게 안타까움을 표하면서도 나의 산 사랑을 묘하게 여겼다. 이 소재로도 이야기를 해볼 수 있겠으나 남산에서의 단상은 산에 대한 것은 아니고, 남산에서 본 탑들에 관한 것이다.



[사진과 단상] 경주 남산의 탑들


남산은 탑과 관련이 많은 산인데, 정확히는 불교 유적과 관련이 크다. 남산을 신라시대 불교유적의 노천 박물관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여러 유물들이 옮겨지긴 했으나 아직도 등산로 곳곳에서 탑이나 불상을 발견할 수 있다. 남산은 먼 옛날 사람들이 자신들의 예토(穢土)에 꾸려놓은 정토(淨土)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속세에서 겪어야만 하는 온갖 고뇌와 번민, 고통을 뒤로 한채 산에 오른다. 그러고는 숲 속에 자리한 탑 아래 무릎 꿇고 부처를 올려다보며, 우리 부모 좀 살게 해달라고, 우리 아이 내일은 배 고프지 않게 해달라고, 나 힘들다고 신세한탄을 늘어놨을 것이다. 울고 불고 흐느끼지 않았다면, 이미 여러 차례 짓눌려 굳은살이 박인 마음을 안고 담담하게 합장하고 고개 숙였을 것이다. 무엇 하나라도 부탁하며 읍소하는 마음으로.


재미있게도 산 아래 계곡을 내려오다보면 무수한 돌탑이 올라와 다. 분명 저 산 위의 불탑까지 올라 없는 마음까지 끌어모아 빌고 또 빌었을 텐데 이 뜬금없는 곳에다가 돌을 쌓았단 말인가. 이 탑들은 누가 쌓았을까. 탑에 매달려서 전달한 간절한 기도가 부족했던 걸까. 내 손으로 작은 탑이라도 쌓아 올려야 치성이겠거니 생각했던 것일까. 산에서 어느 정도 내려와 정토보다는 속세에 가까워지려는 찰나에 잊지 말아 달라는 마음으로 작은 정성이나마 올려보겠다는 마음이었던 것일까. 마음 한편에 쌓아 올린 자기만의 탑에 담긴 그 의미를 지나가는 산객은 차마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사진과 단상] 자기만의 탑


그래서인지 나는 저 탑들을 쌓아 올린 그 작은 행위 하나하나가 애달프다. 이 드넓은 우주와 거대한 지구에서 뿐만 아니라, 남산 자락에서만 찾더라도 각자가 쌓아 올린 작은 탑이 큰 의미를 지닌다고 보기도 어려울테고 크게 눈에 띄지도 않을 것이다. 탑을 쌓은 이들도 생각할 것이다. 미미함에 대한 의심조차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탑이 보인다. 마음의 무게를 이기고 저 큰 돌을 옮겨낸 작은 행위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각자의 간절한 소망이 보이고, 꿈도 보인다. 저 작은 돌 하나 쌓아서라도 자기 마음을 비추고 싶어 했을 애달픔이 보인다. 그래서인지 나는 자기 마음속에 세웠을 저 탑이 애달프다. 설령 당장 쓰러지더라도 일어서 보겠다는 마음이 만든 저 탑이 애달프다.

매거진의 이전글 걸을 때 보이는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