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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겔 Mar 05. 2022

민주주의엔 꼭, 선거

 제20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가 3월 4일 시작되었다. 역대 대선의 사전투표 첫날 기준, 최고 투표율을 보였다는 언론 보도가 이어졌다. 새로운 대통령이 이끄는 행정부에 내가 소망하는 바가 반영되었으면 하는 기대감, 기존의 대통령과 행정부에 느낀 실망감, 혹은 민주 시민이니까 뽑을 후보는 없지만 투표소는 향해야 한다는 의무감 등 각자 선거 과정에 참여하여 투표를 한 경위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경위는 두 번째 문제이다. 합리적 선택을 통해 '바람직한' 후보를 선택했는지도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선거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높은 투표율은 일반적으로 민주주의가 원활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가 된다.


 그런데 선거는 왜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불릴까. 헌법 제1조제2항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국민이 직접 권력을 행사하는 거의 유일한 수단은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의회 의원 및 지방자치단체장 등을 선출하는 일, 즉 선거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는 현대민주주의의 특성에서 비롯된다. 현대의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대의민주주의를 기본 틀로 한다. 국회, 행정부 등을 향한 국민청원 및 주민소환 등 일부 직접민주주의적인 제도가 도입이 되어 있으나 어디까지나 선출된 권력 행사자에 대해 보조적인 견제 수단으로써 그 의미가 있지 현대민주주의를 이끌어 가는 주된 제도는 아니다.


 대의민주주의에서 선거에의 참여는 어떤 의미일까. 앞서 말한 것처럼 이는 국민이 주권자로서 직접 권력을 행사하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다. 이 절차를 통해 선출된 권력 행사자는, '진짜' 권력으로부터 주권을 행사할 권한을 위임받는다. 선출된 권력은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것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의미는 현대 우리나라가 선택한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선출된 권력이 행사하는 힘의 근원은 모두 국민에게 있음을 의미한다. 한 발 더 나아가 해석하면 그 힘의 행사는 국민의 주권행사를 대신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고, 공화정의 의미와 더 가깝다고 볼 수도 있지만, 국민들이 스스로에게 주권을 행사하고 스스로 나라를 운영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에게서 비롯된 힘은 기본적으로 제약을 가진다. 안정적인 국가 운영을 위해 국민들이 손쉽게 제약을 가할 수는 없다. 지방자치제도에서야 주민소환제도 등이 존재하지만, 중앙정부와 국회 차원에서는 대통령 탄핵심판, 국회의원 제명 등 국민들이 직접 제약을 가할 수도 없는 구조이다. 하지만 선출된 권력은 계약직 CEO와 비슷하게 임기가 끝날 때 평가를 받는다. 지역구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본인이 연임을 원한다고 하여도 유권자가 다시 선출해주지 않는 이상 더 이상 권력 행사의 기회를 가질 수 없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중임이 불가능하지만, 국민들은 현직 대통령에 대한 평가 결과를 동일 정당의 후보에게 반영하여 자신의 투표 행위를 결정하기도 한다. 즉, 가장 기본적인 수준에서 선거는 민주적 책임성을 담보하는 절차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선거야말로 민주주의가 문제없이 작동하고 있음을 눈으로 볼 수 있게끔 해주는, 거의 유일한 민주주의의 그림자라고 말할 수 있다. 민주사회의 다원성과 국민들의 정치참여도, 정치문화와 의식 수준 등은 사실 민주주의라는 형체 없는 관념에 대해 기대하고 생각하는 바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기준을 두고 평가하기는 곤란하다. 그러나 선거는 다르다. 특별한 조건이나 외압 없이 유권자 모두가 동일한 투표권을 가지고 직접 투표할 권리만 주어진다면, 적어도 절차적으로는 민주주의 작동에 흠결이 있다고 함부로 트집 잡을 수 없다.


 다시 이번 선거의 사전투표율 이야기로 돌아와 본다. 1987년 민주주의가 정착된 이래, 2000년대 후반까지 투표율은 하락세였다. 3.15 부정선거에 항거하고, 1987년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 낸 역사 뒤에 선 자로서 민망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2008년 총선은 투표율이 46.1%로 유권자의 절반도 선거에 참여하지 않았다. 대선은 그 정도 수준은 아니었지만, 투표율이 1987년에는 89.2%였던 것에 비해 2007년에는 63.0%로 무려 26.2%p나 낮은 투표율을 보였다. 다행히 2012년을 기점으로 투표율이 다시 상승하고 있다. 참고로, 지난 2017년 대선은 77.2%, 2020년 총선은 66.2%의 투표율을 보였다.(출처: e-나라지표)


 누가 선거에서 승리하는지는 유권자 중 상대다수가 누구를 선출하고자 했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일 뿐이다. 개개인의 생각과 판단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선출된 권력 행사자는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원치 않았던 인물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적법하게 치러진 선거라면 누가 되었든 간에 당선인에게는 민주적 정당성이 부여되는 것이고 주권의 대행자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주권의 대행자가 행사하는 주권은 나에게로 향하며 동시에 내가 행사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이상적으로는 이 땅의 모든 유권자가 선거에 참여함이 타당하다. 잘못된 의사결정은 교정이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의사결정에 참여하여 본인의 책무를 다했다고 볼 수는 있다. 하지만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본인의 책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다. 책무를 다하지 않았을 때 발생한 문제가 본인을 해한다고 할지라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기본 원리원칙에 관한 이야기이다. 현실세계의 시간축은 현재의 선택을 미래의 언젠가는 반드시 과거의 역사로 만들어 평가받게 만든다. 개인에게 있어서도 지금 시점에서의 결정이 스스로에게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는 역사를 평가하게 된다. 그리고 만일 역사를 평가하고 책임을 묻겠다면, 본인의 기대와 좌절 혹은 그 이전 시기에 대한 평가를 내렸어야 명분이 있다. 원리원칙에 관한 이야기임을 밝혔다. 고리타분하고 뜬구름 잡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원리원칙을 이해하고 선거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내재화해야만 행동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말했다. 무효표를 찍고 사표가 되더라도 일단 선거에 참여하라고. 모두에게 권할 수는 없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타당한 행동강령이라고 본다. 집에 앉아 혼자서 침묵을 지키는 것과 투표소에서 침묵을 행동하는 것은 다른 무게감을 지닌다고 믿는다.  무게감에 선출된 권력의 대행자를 비롯한 정치권이 짓눌릴 , 최소한의 자정작용과 반성을 유발한다고 생각한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인 이유는 선거가 민주주의를 아름답게 만들어 주어서가 아니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계속적인 유지를 위한 씨앗을 잉태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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