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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겔 Aug 26. 2022

석계역

월계동 엮어보기 #석계역-1

 남들이 보기엔 평범한 기억이어도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괜히 찡한 추억이 된다. 내게는, 별것 없었기에 더욱 그립게 느껴지는 시절이 서려 있는 공간인 석계역의 면면을 따뜻함을 담아 나눈다.


 역사의 광장을 좋아한다. 크진 않지만 역을 지나는 두 호선의 출입구가 모두 여기로 연결되어 있어 만남의 장의 역할을 한다. 기다리고 헤어지는 사람들의 인사와 걸음이 늦게까지 끊이지 않는다. 발치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문득 소원해진 사이와 여전한 관계들이 교차해 떠오른다. 기다리던 사람을 보고 부르는 목소리와 귀갓길을 걱정하는 말이 들리면 그 모두의 안녕을 바라게 된다. 광장엔 사소하고 진실한 설렘과 안부가 가득하다.


 1번 출구로 나가 횡단보도 한 번 건너면 있는 24시 패스트푸드 가게는 대학생활 초창기에 많이 찾았던 곳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개발이 덜 되어 카페가 거의 없던 지역이었기 때문에, 근처에 사는 대학생들 중 상당수가 거기에 모여 밤새워 과제하고 공부했었다. 또 새벽 되면 갈 곳 없는 중고등학생들의 피난처가 되어주기도 했다. 같은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함께 대학생이 된 학창 시절 친구들과 나는 꿈과 걱정을 공유하고 공감하며 다독이던 기특한 새내기였다.


 이제는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가 몇 개나 들어서 있어 지나가다 급히 밥을 해결해야 할 때가 아니면 들르지 않지만, 앉았던 자리는 의자와 테이블 하나 바뀌지 않은 채 그대로 있다. 메뉴조차 크게 차이가 없으니 나이는 나만 먹은 것 같기도 하다.


 역에서 15분 정도 걸으면 있는 아파트 단지에게도 애정이 있다. 10대 때 시험기간이 되면 근처에 있는 도서관에 자주 모였다. 모인 우리는 공부를 안 했던 것은 아니지만 도중에 나가 놀기 일쑤였다. 또래 아이들이 다 그렇듯 게임도 자주 했지만 놀이터에 가 숨바꼭질이며 술래잡기 비슷한 놀이를 하기도 했다. 시덥잖고 단순한 방식이었는데, 왜 그렇게 웃었고 울었었는지 의아하다. 중요한 것은 웃음과 울음이 있어 외롭지 않을 수 있었던 밤들이 쌓여 오늘의 나를 지탱했다는 것이다.


 석계역에서 광운대로 가는 도로를 가장 아낀다. 주변 야경이 아름답다거나 중간에 공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길이가 긴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내게는 특별한 길이다.


 자주 걸었던 20대의 나는 종종 앞서 말했던 음식점에서 과제를 마치고 혼자 또는 동행과 같이 집이 위치한 광운대역으로 걸어오곤 했다. 집까지 20분 남짓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셀 수 없는 밤들 사이로 무슨 말들과 생각이 오갔었는지 당연히 알 수 없다. 다만 이야기를 하고 상념에 사로 잡혔을 때의 감정과 느낌이 어렴풋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게 슬픔이었는지 기쁨이었는지, 서운함이었는지 외로움이었는지를 밝혀내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 때여서 할 수 있었던 고민으로 고뇌하던 내가 애틋하고, 그때의 나였기에 나타날 수 있었던 무지와 순수가 그리워 남다른 것이다.


글쓴이 :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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