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글을 시작하며
2025.02.25. 태어난 지 667일째
가끔가다 한 번씩 유진이에 관한 일기를 썼다. 처음에는 일기도 아니었다. 짧은 일화를 나만 알아볼 수 있는 단어나 문장 수준으로 핸드폰 메모장에 정리한 수준이었다. 회사와 집 모두 정신없이 굴러가다 보니 수기는 물론 컴퓨터로도 글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한동안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브런치에도 업로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마음먹게 된 계기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육아 휴직. 물론 며칠 안 남았지만 분명하게 휴직 중이다. 아무튼 임신과 출산, 육아로 이어지는 가정의 변화를 겪으며 본업과 학업까지 병행하다 보니 글쓰기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휴직을 말미암아 다시 독서를 하기 시작했고, 아직 더 갈구하고 있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읽었다 싶어 다시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마침 시간적 여유가 있는 시기이니 일단 소소하게라도 시작해 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둘째, 지속가능한 글쓰기에 대한 기대. 예컨대 여행, 등산, 정치 등 특정 주제에 관하여 꽤 괜찮은 글을 쓰면 좋겠다는 욕구가 있었지만, 주제에 걸맞은 활동이나 공부도 지속가능해야 가능했기에 생활 양상이 달라진 후에는 더 이상 비슷한 류의 글을 이어나가기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반면 육아에 관한 글쓰기는 훌륭한 대안을 넘어 거의 유일하게 지속가능성을 갖췄다. 나와 딸이 함께 살아가는 한 소재가 계속 생성될 것이고 나의 여러 생각들도 이어질 것이다. 그렇기에 조금만 반복된다면 꽤나 꾸준히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허영심 내지 사회적 시선이나 기대로부터의 자유로움. 내가 자유롭고 싶어 글을 쓴다고 생각했다. 나름의 취미로서 일상으로부터의 탈출구, 그게 나의 글쓰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떤 굴레가 나를 자꾸 붙잡았다. 남에게 잘 먹히고 잘 읽히는 글이면 좋겠다는 욕심이 들었다. 내가 어떤 면에서 특별하거나 대단해 보이면 좋겠다는 욕심도 들었다. 욕심은 글쓰기를 재미없게 만들었고, 본업과 육아라는 현실적 부담이 커지는 시기와 맞물려 자연스럽게 글쓰기와 나를 멀어지게 했다. 그런데 딸에 관한 이야기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딸에 관하여는 대개 밝고 희망차며 소소하다. 그래서인지 간단한 메모로 남기던 때부터 소재, 분량과 내용의 짜임새 등에 대한 부담이 적었고,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렇다. 그래서 조금은 자유로운 글쓰기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계기는 그렇다 치고, 문제는 나만 볼 일기장은 제목 따위 필요하지 않으나 브런치에서는 제목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날짜를 제목으로 달기엔 곤란하다. 한 콘텐츠의 특징만 잡아서 제목을 붙이기도 애매하다. 일기이기 때문에 분량과 내용이 고정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의 제목은 마땅치 않은 아이디어를 쥐어짠 결과물이다. 2053년, 딸의 나이가 내가 결혼했을 때인 서른이 되는 해이다. 딸도 내 나이즈음에 결혼을 한다는 가정 하에, 딸의 서른 즈음까지 글을 남기고 싶다는 바람으로 지었다. 운이 좋다면 2053년에는 딸에게 이 글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우선 올 한 해부터 꾸준히 해봐야겠다.
참고로 일기 자체를 쓰게 된 것은, 휴직 직전 같은 부서에서 근무한 한 선배의 공헌이 크다. 대학생 된 자녀들을 둔 그 선배는 '나중에 아기 결혼하거나 애 낳았을 때 아빠가 이런 거 썼다~ 하면서 쥐어줘 봐. 얼마나 소중한 선물이 되겠어'라고 말했다. 아마도 직접 하지는 못하고 계신 듯한데, 아무튼 그 선배의 아이디어가 불을 지핀 결과가 지금 이 글이다. 복직 후 만나 뵙고 사담을 나눌 기회가 된다면, 고마운 마음을 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