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3년의 딸에게 전하는 오늘(2)

2024년 8월, 9월

by 르겔

2024.08.30. 태어난 지 488일쨰


유진이가 한밤중에 또렷한 목소리로 "아빠, 아빠"하길래 놀란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유진이 침대로 가보았다. 그런데 유진이는 평소처럼 깊게 잠들어있다. 아마도 유진이는 아빠 꿈을 꾸고 있었나 보다.




2024.09.06. 태어난 지 495일쨰


퇴근 후 아내는 좋아하는 빵집에서 사 온 밤 사워도우를 먹으려 했다. 아내가 빵을 먹는 동안 나는 유진이를 씻기고 나왔다. 머리를 말리고 옷을 입히고 식탁에 가보니 아내는 빵을 먹으며 밤은 하나도 먹지 않고 모두 골라놨다. 유진이를 먹이려고 하나도 먹지 않은 것이다. 엄마구나, 싶었다.




2024.09.18. 태어난 지 507일째


요즘 유진이는 잠잘 시간이 다 되어 방에 들어가면 물이나 우유를 찾곤 한다. 더 놀고 싶은 걸까, 아니면 진짜 물이나 우유가 마시고 싶은 걸까. 오늘은 물을 달라길래 물을 줬더니, 갑자기 우유를 달라고 변덕 부린다. 그래서 처음엔 자기 싫어 핑계를 대는 줄로만 생각하고 자야 한다고 설명하고 우유를 주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엄마가 우유를 주자고 하여 우유를 주니 역시나 얼마 먹지 않고 눈이 스르륵 감기며 졸기 시작한다. 우유를 먹다 말고 결국 엄마 품에 안겨 자러 가는 길, 유진이가 우유병에 손을 흔들며 인사한다. 그 모습을 보니 유진이에게 괜히 미안해진다. 내가 가르친 행동이기 때문이다. 유진이는 음식을 다 먹고 나면 인사하며 손을 흔드는데, 졸린 와중에도 아빠가 알려준 것을 잘 따른 것이다. 그런 유진이가 진짜로 우유가 먹고 싶었던 그저 엄마 아빠와 조금 더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우유를 핑계 삼았든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했을까. 우유 조금 주는 일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닌데, 웃으며 조금 더 시간을 보내는 편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일기를 쓰는 지금, 엄마와 방에 들어가 누운 유진이는 잠에 들지 않고 아직도 눈을 뜨고 종알거리고 있음을 알게 됐다. 참 종잡을 수 없는 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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