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확행의 진화

의미 상실의 시대에서 소소한 의미 찾기

by Data writer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생각들을 정리한다. 커튼 사이로 비치는 아침 빛에 이제야 아침이 온 줄 알았다. 아침이 온 걸 알고서야 몽롱함이 느껴진다. 몸의 무게를 푹신한 이불에 던져버린다. 중력 그대로에 몸을 맡긴다. 애초에 집중력이란 단어는 집과 중력을 이겨내라는 말에서 나온 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달콤하다. 중력 그대로 몸이 녹아내려 잠에 든다.

몰입(Flow)의 시간을 맹목적으로 좇던 적이 있었다. 태어나 느껴본 삶의 무게라곤 게으름의 원천인 중력의 무게가 전부이던 시기. 희망만을 알던 시기였기에, 나는 매 순간 꿈과 호기심으로 무장했고 많은 것에 겁 없이 몰입할 수 있었다. 꿈꾸몰입(Flow)하는 순간순간엔 행복이 맺혔고. 맺혀진 행복들은 삶의 방향으로 흘러내렸다. 특히 그 행복은 때때로 더 크게 다가왔는데, 바로 내 주변에 숨어 있던 작은 감동의 요소를 문득 발견할 때였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이제 막 떠오르기 시작한 아침 빛이 커튼 사이로 들어오고,
가구들이 아침 빛과 함께 깨어나고,
구깃한 이불을 '바스락 바스락-' 펼치니 뽀송하고 청량한 향이 풍기며
아침이면 풍기는 정체모를 의문의 고소한 빵냄새에, 부지런히 빵을 굽는 푸근한 조리사의 모습을 상상하며 기분좋게 잠에 든다

(여담이지만, 우리 집은 창문을 열면 울창한 나무가 보이는 산 중턱에 위치한 아파트인데, 늦은 새벽이나 이른 새벽엔 종종 의문의 빵 냄새가 난다. 도대체 누가 이 곳에서 이 시간에 빵을 굽는 걸까? 고소한 빵 냄새는 왜인지 모르게 인자한 인상의 조리사가 부지런히 빵을 굽는 모습을 연상시켰고, 내가 하루를 이르게 시작하거나 하루를 늦게 마무리하는 날이면 이러한 상상만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정체 모를냄새의 정체는 식물의 풋내가 만들어낸 곡물 향이었던 것 같다.)




우리가 말하는 소확행


소확행이란 무얼까? 하루키가 제시한 소확행의 본래 개념은 위와 같다. 이는 위에서 묘사한 커튼 사이의 빛, 새벽의 곡물 향과 같은 개념인 듯하다. 하지만 위의 묘사가 나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매일매일을 무사히 마무리하기에도 벅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시기가 될 때 면, 위의 행복감은 때때로 크게 작용되지 못한다. 이처럼 우리가 열광하는 소확행의 개념 또한 하루키의 태초 개념과는 다소 다를 듯하다.


소확행은 17년 이후 '탕진잼, Yolo, 시발비용, 홧김비용'과 같은 단어와 함께 나타난 신조어이다. 이와 같은 단어와 문장에는 "미래 없는 세상아 맘대로 돼라~. 난 오늘이라도 행복하련다." 와 같은 탄식의 뉘앙스가 녹아있다.

하루키가 제시한 태초의 '소확행'은 주변에 머물러 있던 소소한 행복을 발견하는 생산적 의미에 가깝다면, 우리가 열광하는 '소확행'은 희망 없는 삶을 잠시 접어두고자 소비를 행하는 도피적 의미에 보다 가까운 듯하다.


청년세대가 불확실한 미래를 대처하는 자세 소확행. 세대는 '내일의 해는 떠오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기에 더 이상 미래의 보상만을 꿈꾸며 현재를 아등바등 보내지 않는다. 눈앞에 놓인 당장의 사탕을 먹으며 '행복하다'라는 위안과 함께 그저 하루를 잘 마무리할 뿐이다.



2018년 1년간 소확행과 관련나타나는 감성어를 간단한 수준으로 살펴보았다. 관련 감성어는 크게 4가지 주제로 분류된다. '소확행 상에 대한 평가, 소확행을 행하는 동기, 소확행이 주는 기능적 베네핏, 심리적 베네핏'. 이에 대해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어떤 인식을 갖고 있을까?


소확행 대상에 대한 언급의 경우, 소확행을 찾기 위해 어디론가 '떠나'거나 '갓띵작'을 경험하는 활동들이 대표적으로 나타났다. 소확행의 본질이 당장의 작지만 확실한 행복인 만큼, 사람들은 시각적 요소나 맛과 같은 '쉽고 직관적인 즐거움'에 대한 관심이 특히 높았으며, (예쁜[6,200건], 귀여운[3,894건], 맛[1,315건]) 소확행을 통해 지루한 일상을 탈피하고 싶은 만큼, '새로움'에 대한 갈망이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다양한[1,885건], 유행의[719건])


소확행 행동 동기의 경우, 부정적인 심리상태 일 때 충동성에 기반하여 행해지는 경향을 보였다. 몸이 안 좋을 때 약국으로 달려가 약을 찾듯이, 정신적 스트레스[863건] 상황이 찾아올 땐, 소확행을 충동적[2,024건]으로 행하는 것이다. 무언가로부터 해방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충동성이라는 약효는 가장 유혹적이고 때때로 가장 강력하다.

기능적 베네핏 요소의 경우, 소확행이 충동적으로 행해지는 경향이 짙은 만큼, 많은 수고를 들이지 않고도 경험할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관심이 특히 높았다.(편리한[996건], 가까운[809건])

심리적 베네핏의 경우, 전반적으로 만족감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았으나, 이 외 몇 가지 키워드가 눈에 띄었는데 이는 '노력, 고민, 보람'과 같은 단어였다. 충동적 성격이 강하고, 쉬운 즐거움을 지향하는 소확행. 근데 왜 이러한 단어들이 나타난 걸까?




변화하는 소확행,

소확행의 2018년 분기별 감성어 순위를 살펴보면, 특히 '보람'과 '고민'의 단어가 눈에 띄게 상승하는 걸 볼 수 있다. '고민'의 경우 18년 1분기엔 61위(17건)에 위치했지만, 4분기의 경우 7위(219건)까지 높은 순위 상승을 보였다. '보람'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1~2분기 모두 100위 권 밖이였지만, 4분기 무렵 15위(144건)까지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원문을 살펴본 결과, 각자의 근본적 '고민'은 해결하지 못한 채 소확행을 행하는 것에 대한 걱정의 글이 대다수였으며

'보람'된 체험과 관련된 내용이 다수 언급되고 있었다. 무언가 내 힘으로 만들거나, 텃밭/식물을 기르거나, 혹은 봉사를 하며 보람을 느끼는 생산적인 일들을 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노력이 무력한 현실 안에서의 체념적인 생존법이였던 소확행. 노력이 무력하지 않음을 스스로 증명할 수 있는 활동들이 시작된 것이다.

소확행 라이프 스타일은 표면적으론 나를 위한 라이프 스타일 같아 보이지만, 실은 나는 없는 문화 획일화 현상에 불과하다. 생활 방식도 남과 같은 소확행, 대중매체에서의 소확행 범람. 왜인지 나는 없는 느낌. '에이 다들 이러고 사는데 뭐' 라며 허전한 마음을 위안한다. 그 마음 한편에는 '나 자신 스스로에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진 않을까'의 고민이 남아있던 것이다.

누구도 Nobody로 남고 싶진 않다. 자기실현적 욕구가 강한 이들은 이미 소확행의 한계에 부딪혔다. 우리는 애초에 치킨 한조각과 디저트 한 숟갈에 행복해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체적인 Somebody가 되고 싶다. 그래서 소확행의 의미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Somebody가 되기 위해 대단한 게 필요하진 않다. Something의 어원은 Small+Thing이다. 그저 작은 것들부터 시작하면 된다. 대단한 무언가가 되겠다는 무거운 생각은 내려놓고, 그저 나다운 선택을 하면 되는 것이다.




소확행은 왜 변화할까,

왜 우리는 Nobody가 아닌, Somebody로 남고 싶은 걸까?

얼마 전 보게 된 영화 '미스터 노바디'에 답이 있었다. 이 영화의 개략적인 스토리는 118살 노인 주인공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지나온 인생의 중요한 선택을 다르게 선택했다면 어떤 삶이 펼쳐졌을지 경험하며 9개의 인생을 경험하는 이야기이다.

"선택을 하지 않는다면, 모든 건 가능한 채로 남아있어." 어쩌면 이 대사는 희망적으로도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말은 곧 "아무런 선택을 하지 않은 채로 남겨두면, 모든 것은 다 가능한 상태로만 남아있는 뿐이야"라는 말과 같다.

선택은 곧 나라는 사람를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런 선택을 하지 못한 나는 그저 'Nobody'에 불과할 뿐이다.

선택에서 비롯된 후회의 기억은 앞으로의 선택을 망설이게 만들었고, 이상적인 꿈에 도달하기 어려운 환경은 꿈을 꾸기 어렵게 만들었다. 옳은 선택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선택의 용기가 안 선택을 도피하고 싶던 때도 때때로 있었다.

먹고사는 현실의 문제가 높아지면서 청년세대는 '소확행이 최고야'라고 외친다. 꿈을 위한 선택은 멀게만 느껴진다. 어차피 이뤄지지 못할 건 애초에 기대하지 않는다. 현실의 중요한 선택은 미뤄둔다.

하지만, 삶은 짧은 여행일 뿐이다. 선택을 포기한 삶보단,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뛰어들고 몰입(Flow)하여 Nobody가 아닌 Somebody로 진짜 삶을 사는 게 더 행복할 것이라 생각된다. 모두에겐 각자의 Small+Thing이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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