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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날만 Jul 03. 2016

얼어붙은 신세계

정용준 장편소설 『바벨』


 

 말을 하는 순간 언어가 굳어서 결정처럼 변한다면. 그런데 혀를 뚫고 나오는 것이 보석 같이 아름다운 고체가 아니라 악취를 풍기는 단단한 폐기물이라면. 소설 『바벨』은 이 설정을 전제로 하나의 얼어붙은 세계를 창조한다.


 이 책에 대한 나의 느낌을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을 중심으로 적어보려 한다.


1. 세계 창조

 작가는 『바벨』을 통해 하나의 시대를, 세상을 창조했다. 기존의 세계에 편승해서 그 안에서 있음직한 일을 떠올린 것이 아니라 아예 통째로 새 배경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건 정말 엄청난 일이다. 세계라는 것, 그 안의 사회와 인간 군상은 너무나도 복잡해서 단순히 하나의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 이상의 복잡한 사고와 철저한 준비를 요하기 때문이다. 책 곳곳에 새로운 세계의 일관성과 타당성을 유지하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드러나 있다.

 나아가 이 신세계는 고리타분하지 않다. 말이 '펠릿'으로 변화하는 아주 미시적인 신체현상에서부터, 정부를 향한 폭동과 집단적 체념 및 탈(脫)정치라는 거시적인 사회현상까지 흥미롭게 다뤄진다.


2. 노아의 전기

 『바벨』의 주인공은 요나라고 느끼기 쉽다. 그러나 에필로그를 읽으면서 실제 주인공은 노아이며 요나는 노아의 삶을 관찰하기 위한 도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아에 대한 인식은, 모든 재앙에 대한 책임이 있는 악당에서 그저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고자 했을 뿐인 순수한 피해자로 변화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의 변화가 서사의 골자를 이룬다. 노아의 죽음과 함께 사실상 이야기도 중단된다. 이 소설은 외로웠던 노아, 가해자로 오인 받아 질타 당했던 노아의 인생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 차 있다.


3. 불완전한 성찰

 『바벨』은 언어에 대한 성찰을 시도한다. 과연 '말'은 완전한 것일까, 세계를 왜곡하기만 하는 것은 아닐까, 인간에게 말은 꼭 필요한가 등의 철학적인 문제들을 내내 안고 이야기를 진행하며, 성실한 답변을 돌려받은 것 같다. 그러나 말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성찰은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2부 13장에서 마리와 요나가 나누는 대화에서 이를 강하게 느꼈다.

 말을 하면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바벨의 문화 속에서 사람들은 필담으로 구두 언어를 대신한다. 그러나 작가가 제시한, 바벨의 새로운 소통 행태는 자연스럽지 않았다. 필담과 비교했을 때 말의 가장 큰 장점은 속도이다. 만약 필담이, 그리고 필담이 진화된 형태인 '팜패드'를 통한 소통이 불완전하게나마 말을 대체하고자 했다면, 구두언어의 속도를 따라잡기 위한 언어적 노력이 새로운 대화 양상에서 나타났어야 한다. 단어와 단어 사이의 관계를 더 간단하게 보여주는 기호(화살표라든지), 간소화된 문법, 각종 줄임말의 탄생이나 형용사의 최소화 등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언어문화의 변화는 감지되지 않았다. 오히려 『바벨』속 인물들이 나누는 언어적 소통은 바벨이 아니라 다른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대화를 그저 필담으로 겉껍질만 변화시킨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만약 대화를 최소화하여 서사를 전개했다면, 아니면 위에 예시를 든 것처럼 새로운 언어 문화가 나타났다면 바벨사회 속 인물들이 느끼는 그 답답함이 독자에게도 전해지지 않았을까. '아, 이 부분에서 유창한 구두 대화가 나오면 속시원할 텐데, 진짜 답답한 시대네.' 이런 느낌.


4. 초반부의 신선한 편집

 『바벨』의 앞부분엔 노아가 심취되어 있었던 아이라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책을 펼쳐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하늘색 바탕에 점점 파래지는 글씨체로 아름답게 편집되어 있다. 곳곳에 얼음을 연상시키는 그림들도 삽입되어 있다. 단숨에 시선과 마음을 사로잡는 멋진 프롤로그였다.


5. 결말에 대하여

 해피엔딩이 아니라서 좋았다. 끝도 없는 우울함과 함께 이야기가 종결됨으로써 완성도도 개연성도 더욱 강화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마지막 노아의 모놀로그에서라도 펠릿의 발견이 어떻게 전파되었는지, 노아의 연구가 어떻게 모든 사회인의 삶을 지배할 수 있게 되었는지 그 전염 과정에 대한 설명이 나왔으면 좋았을 것 같다. 펠릿의 정체와 확산 경로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아서 계속 궁금했다. 의도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즐거운 독서 경험이었다는 것이다. 『바벨』의 최대 매력은 상상력이다. 우리는 너무 당연하게 말을 한다. 그런데 이것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면? 인간은, 사회는, 국가는 어떻게 될까? 이 상상력 다분한 질문으로부터 바벨의 시대가 막을 연다. 그리고 이 유의미한 공상을 관통하는 다양한 종교학적 알레고리도 인상 깊었다. 고래의 배에 삼켜진 요나와 방주를 만드는 노아의 이야기라니, 유쾌하고 또 유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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