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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날만 Aug 31. 2016

뒤르케임&모스, 『분류의 원시적 형태들』

정신현상의 사회적 기원을 찾아서


             뒤르케임의 <자살론>은 개인적 고통의 결과로 여겨져 온 자살을 ‘사회’의 관점에서 조명한다. 자살의 원인은 한 사람의 심리적 비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속한 사회의 구조적 특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구성원들이 서로 긴밀하게 통합되어 있는지, 사회구조가 변화함에 따라 그에 맞는 규제 혹은 가치관이 적절하게 제시되었는지에 따라 해당 사회의 자살률은 달라진다.

             뒤르케임이 마르셀 모스와 함께 저술한 <분류의 원시적 형태들> 역시 유사한 문제 제기로부터 시작된다. 이 책은 ‘분류’라는 논리 작용이 사회적인 기원을 가진다는 주장을 펼친다. 저자들은 그 근거로 오스트레일리아와 아메리카 지역의 부족들의 토테미즘을 제시한다. 연구 대상이 된 부족의 구성원들은 여러 씨족공동체, 즉 다양한 사회집단을 구분 짓고 그들 사이의 관계를 질서 있게 설정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물들과 동식물, 자연현상, 심지어 시간과 공간과 같은 추상적인 개념까지도 동일한 정리 체계 내로 흡수했다. 이는 분류의 가장 원시적인 형태로, 이를 통해 다음을 알 수 있다: 분류는 심리적인 동기 및 요인만으로 환원될 수 없고, 사회적인 영향력, 더 구체적으로는 사회적 ‘감성’의 영향력을 받아 그 필요성을 획득하고 완성된다. 여기에 감성이 개입하는 이유는 원시 부족들이 채택한 분류의 기준이 개인의 이성적, 비판적 검토보다는 집단적 감정에 의해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원시 부족들의 토템을 제재로 하여 ‘집단적’ 정신에 대해 연구하고자 한 이 책의 의도는 단순히 다뤄진 내용을 넘어서 더 넓은 함의를 지닌다. 이 책은 사회와 관련성이 거의 없다고 여겨지는 현상들마저도 사회적인 힘의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주장했다. 이는 사회학 연구의 정당성을 밝혀줄 뿐만 아니라, 다른 학문 분과에서 풀 수 없었던 문제들에 사회학적으로 접근할 경우 해결이 가능하다는 단서를 제공한다. 이 마지막 의의는 저자들도 책의 마지막 문장을 통해 충분히 표현하고 있다.

            또한 이 책은 문화상대주의가 오늘만큼 발달하지 못한 시대에 쓰였음에도 불구하고 원시부족들의 사고를 미개하다거나 하찮은 것으로 보고 있지 않다. 레비-스트로스가 <야생의 사고>에서 토테미즘을 “구체의 과학”이라고 표현했던 것과 유사하게 뒤르케임과 모스 역시 원시부족의 분류를 일종의 특수한 과학으로서, 일반적인 과학적 분류체계와 동일선상에서 분석하는 듯하다. 또한 토테미즘을 비이성적인, 따라서 무가치한 사변으로 치부하지 않고 일종의 자연철학으로서 조명하고자 했다는 점도 당대를 앞선다.

             그러나 이 책은 동시대에 존재하는 부족을 ‘원시’라는 단어로 묘사함으로써 이들이 역사적 시간이 전개되는 단계 상에서 뒤떨어진 위치에 서 있음을 당연시했다. 분석으로부터 멀지 않은 시점에 발생한 부족적 현상을 분화나 변화가 덜 진행된 ‘기원’의 상태로 설정하는 것 또한 모종의 단선적인 문화관을 전제하고 있다. 물론 이들의 토테미즘이 과학이 발달하기 이전에 세계를 지적으로 설명하려는 노력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학자들이 보고자 했던, 과학이 없었던 시절의 순수한 이념형, 즉 “자연의 초기 체계”[1]와 부합하는지에 대해선 철저한 검토가 필요하다. 원시적이라고 불리는 이들의 사회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양한 사회구조적 변동을 겪었을 것이며, 다른 지역에서 이루어졌을 원시적인 분류가 이들에게서 연구 당시 발견되었던 분류 작업과 유사할지는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들의 암묵적인 전제와 달리, 원시 부족들의 사회적 생활이 ‘현대의 삶’이라고 불리는 것의 원형이 아닐 수 있다. 그들도 그들 나름의 변화를 경험해 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1] 에밀 뒤르케임, 마르셀 모스 지음, 김현자 옮김, <분류의 원시적 형태들>, 2013,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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