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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날만 Nov 03. 2015

향수 혐오

사랑에 실패한 여자의 변명



 지하철이 덜컹거린다. 어느새 내 옆에 앉은 여자에게서 문득 향수 냄새가 고약하다. 나의 코를 먹어 삼킬 듯 압도적인, 진한, 싸구려 남자 향수 냄새다. 낯선 아저씨의 옷자락에서나 맡아질 것이 폴폴 내 곁의 젊은 여성에게서 진동하니 찜찜하다. 빈 자리를 두고서 굳이 일어난다. 그 여자에게 당신 냄새나요, 라고 표를 낼 심산으로 일부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가 선다. 괜히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여자를 몇 번 돌아보지만 그녀의 시선은 핸드폰 화면에 이미 꽂혔다. 내리기 전까지는 저 고개를 젖히지 않을 것이다. 냄새에 무감각해 뵈는 어느 머리칼 시꺼먼 아주머니께서 오호라, 기꺼이 빈 자리를 차지하셨다.


 나는 향수 냄새를 싫어한다. 향수는 자신에게 없는 것을 있게 만들려는 조작이다. 갖지 못한 것을 쉬이 얻으려는 심보, 몸 자체를 넘어 그 주변을 통제하려 드는 인위, 체취의 은폐, 후각적인 가면이다. 사탕 향 향수를 뿌리는 사람은 어쩌면 가장 달콤하지 않은 이들이다. 계산대에서 향수 바코드에 리더기를 대는 찰나보다 조금 더 긴 시간과 공을 들여 맘을 가꾸고, 능력을 기르고, 신선한 고민 속에서 산다면 사탕 향으로 얻고자 바랐던 효과를 절로 낼 수 있을 테다.


 향수의 실패는 그것의 본질과 목적 사이의 괴리로 인해 이미 예정되어 있다. 향수는 본디 물질이고, 제조품이고, 분자덩어리인데 그것을 통해 획득하려는 바는 사람의 마음이고, 감정, 혹은 아름다움이라는 가치이다. 따라서 향수의 앞길은 구체와 추상 사이 임계의 장벽이 가로막고 있다. 향수가 이 내재적인 한계를 뛰어넘으려면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에 나오는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 정도 되는 천재에 의해서 제조돼야 한다.


 정말로 그 물리적인 냄새가 좋아서 향수를  산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다만 자기만족을 제하고 오로지 치장만을 위해 향수를 쓰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따로 있다. 성분들의 기술적인 조합인 향기가 아니라 내면을 지배하며 절로 흘러 넘치는 아우라. 아우라는 이성적인 관심은 물론이고 인간적인 동경마저 이끌어내는 고유한 분위기다. 아우라를 지닌 이의 기운의 반경에 들어서면, 그 향기 없는 권력에 누구라도 취해버리는 것이다.


 조향의 미학에 대해서는 조금도 알지 못하고 고작해야 이름 들어본 향수들 몇 개만을 전전한 게 다인 내가 이리도 확고하고 독단적이며 무모하게 향수의 몰락을 단언하는 데엔 이유가 있다. 이 확신은 묘하게도, 내가 처음으로 향수를 사게 만든 남자 때문에 생긴 것이다.


 어린 소녀들마저 붉게 물들이는 입술을 늘 부르튼 채로 쏘다니던 내가, 기어코 눈에 검은 테두리를 지우고, 속눈썹을 집어 직각으로 올리고, 색깔 별로 화장품을 수집하게 만든 나의 첫사랑. 그와의 만남을 기대하게 될수록 아름다움, 아니 엄밀히 말하면 치장을 위해 요구되는 물건은 늘어만 갔다. 꾸밈의 구조란 기이해서, 깊이 빠져들고 노력할수록 빨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도구와 시간과 고려를 요했다. 마치 약을 꾸준히 삼키다 보면 내성이 생겨서 처음의 복용량으론 충분하지 못한 것과 같았다. 나의 치장 역시 바르는 것이 늘어나기는 해도 그 단계가 줄어들지는 않았다. 오롯이 그만을 위해 점증하는 시간과 손놀림들이었다.


 나에게 있어서 치장의 최종적인 단계는 향수 뿌리기였다. 그에게 마음을 고백한 날, 나는 일주일 내내 고심하며 수많은 이들의 조언과 잡지의 추천사를 정독해서 고른, 무지하게 비싼, 그가 좋아하는 과즙의 내음이 나는 자몽 향 향수를 손목과 귀 뒤에 장착하다시피 했다. 그마저도 모자라서, 그에게 가없이 시큼하면서도 부드러운 여자가 되고 싶은 마음에 향수를 허공에 잔뜩 뿌리고는, 냄새가 흩날릴 그 아래에서 첫눈이라도 맞는 양 빙글빙글 돌았다.


 내가 향수까지 썼다는 사실은 외모에 최대한의 공을 들였다는 뜻이었다. 당장 내가 이보다 더 예쁘게 보일 수는 없다는 묘한 자신감과 좌절감을 의미했다.


 그 날 나는 차였다. 첫사랑은 아리따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예쁘고 참하지만 나의 사람이 될 수  없어, 라고.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오는 동안 어느 락 밴드의 노랫말이 첫사랑의 비극적인 속내를 재연했다. Death Cab for Cuties의 <Tiny Vessels>는 다음과 같이 중얼거렸다. Yes she was beautiful, but she didn’ t mean a thing to me…… 나는 그에게 좋은 향 나는 무의미였던 것이다.


 그 때의 내게 절실했던 것은 그의 취향을 쫓는 향기가 아니었다. 나를 휩싸며 그의 세계에 부드러이 스며드는 아우라였다. 나는 온몸으로 자몽 내음을 풍겼으나, 그 무척이나 시면서도 달콤하여 계속 사랑하게 만드는 아우라가 부족했던 것이다. 나는 차인 그 날 밤 울면서 오래도록 향수 탓을 했다. 너무 많이 뿌렸다, 그가 좋아하는 게 자몽이 아니라 복숭아였나, 감귤이었나, 그런 비본질적인 핑계거리를 찾아 헤맸다.


 향수에 책임을 지울 수는 없다. 투입된 성분 그대로 순종하는 그것에 아무런 잘못이 없음을 알면서도, 나는 그 날의 감정으로부터 비롯된 향수에 대한 혐오를 지워낼 수 없었다. 한 번 마음을 그렇게 먹으니 진열대에 놓인 향수들이 가식 1, 가식 2, 가식 3 으로만 보였고 내 첫사랑이 명백하게 떠나갔음에 더욱 절절히 아렸다.


 아아, 사랑이란, 외면적이기만 한 평가의 결과물도, 완전히 내면적인 작용 혹은 정신의 교류도 아닌 것이, 그 둘 외면과 내면의 알 수 없는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심지어 사람마다 그 조합의 비율도 다를뿐더러 조합된 성분에 대한 정의와 기준이 다르다! 정해진 바 없는 레시피라니, 사랑은 무책임한 요리책 같아서, 어떤 재료들이 필요한지는 대강 알려져 있으나 그것들을 어떻게 얻어 얼만큼 내 안으로 들이부어야 하는지 아니면 작은 티스푼 정도만 털어내야 하는지 누구로부터도 배울 수 없는 것이다! 어느 재료가 나와 어울릴지조차 직접 넣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언제나 실험적인 실전! 사랑 향수의 의도처럼 선택된 물질을 정량대로 우려 섞은 뒤, 짜잔, 하고 분사하면 상대가 넘어오는 쉬운 한 판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페로몬과 호르몬, 후각적이고 시각적인 자극에 의해 영향을 받으면서도 조종당하지는 않는다. 결국 사랑은 아우라의 게임이다. 가식의 대비로서의 아우라. 그것은 유도하지 않아도 주체할 수 없이 넘치는 아름다움, 그렇다고 전적으로 내적인 것만은 아닌, 하여간…… 이 모든 모호함이 사랑의 정답이었다.


 이리도 어렵고 복잡한 것을 다들 어쩜 그렇게 쉬이 획득하고 폐기하고 분석하고 가르치고 표현하고 성공하고 자랑하는지!


 어젯밤, 나는 기이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향수>의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가 나의 목과 어깨와 손목에 입을 맞추었다. 내 머리칼 가운데 파고들며 킁킁대기도 했고 나의 손등과 발목의 건조한 체취도 맡아 갔다. 마지막엔 더 깊고 은밀한 향을 탐하길래 나는 그의 눈빛을 뿌리쳤다. 꿈에서 깨기 직전, 그르누이가 내게 한 말이 참 서글펐다.


 ‘네게서 나는 향기는 꽃과 과일과 사카린으로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어.’


 거부당한 남자의 서운함 서린 불평인지, 아니면 내게 고유한 아우라가 없다는 일침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몹시 괴로웠다. 화장대에 놓아 둔 남은 향수의 내음들이 갈고리가 되어 나의 콧속과 폐를 꽉 움키는 것만 같았다. 자연이 아니라 공장에서 자라난 자몽이 나만의 무언가를 감히 몰아내고 있었다.


 처음으로 사랑하게 된 사람으로부터  거절당한지 이제 어언 일 년, 나는 아직도 나를 찾지 못했다. 아직도 아우라 없는 향기의 바다에서 익사 직전이다. 어푸어푸- 누구도 나에게 헤엄 치는 법을 가르쳐주지 못한다.







커버이미지: Antonio Mancini, <Resting>, circa 1887, oil on canvas

매거진 <유의미한 몽상>에 게재되는 내용은 모두 픽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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