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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날만 Nov 26. 2015

만료된 쿠폰



 유효기간이 만료된 쿠폰만큼 쓸모 없는  또 있을까? 열 번 음료를 주문하시면 아메리카노를 무료로 드립니다- 라는 호의 뒤엔, 열 번이 못 되게 마실 경우 쿠폰이 있으나 마나라는 무자비함이 도사렸다. 기간 지난 나의 쿠폰엔 도장이 7개만 찍혔다. 이것은 있어도 그만이고 사라져되었다. 없어도 좋다니, 그런 슬픔이 또 있을까? 존재가 지니는 최후의 긍지 부정된 것이다. 이 쿠폰은 자신이 쓰레기통으로 가지 않았다는 사실에, 철저무가치한데 아 멀쩡하다는 비극에 울고 있을 것이었다.


 작은 종이 쪼가리 하나에도 감정을 이리 이입한 것은 내가 이 쿠폰만큼이나 무가치한 탓이었다. 아니, 적어도 쿠폰은 지금의 존재를 위해 다른 존재에 의존하지 않건만, 이리저리 신세나 지고 다니는 나는 도대체 버려질 종잇조각보다도 못한 것 같았다.


 펑펑 울며, 엄지와 검지로 쿠폰을 세게 쥐고, 연인의 눈앞에다 빳빳한 그것을 내밀었다.

 이것 좀 보.

 의외로 팔랑거렸다.

 난 얘보다도 쓸모 없어. 나는 유효기간이 만료된 인간이야. 다 틀려먹었어, 희망이 없어.

 나는 쿠폰을 계속 그가 보는 앞에서 흔들어댔다.

 이것 좀 보아.


 그는 지그시 보더니 난데없이 펜을 요구했다. 우는 사람한테 필기구를 달라니 의아했지만, 쿠폰을 들지 않은 손으로 주머니에서 볼펜을 꺼냈다. 그는 볼펜도 쥐고 내가 들고 있던 쿠폰도 채갔다. 그러다 등을 돌려서 내게 안 보이도록 쿠폰에 무언가를 적었다.


 뭐하는 거야, 라고 막 물으려던 차에 그가 다시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는 도장이 찍히지 않은 쪽으로 수줍게 쿠폰을 내밀었다. 나는 갑작스레 얼굴을 붉히는 그를 두고 쿠폰을 뒤집었고, 7개의 도장과, 나머지 3개의 빈 동그라미 속 익숙한 글씨체를 보았다. 사랑해. 사랑한다고 적혀 있었다.   쿠폰은 연애편지가 되어주었다.


 뭐가 무가치하다는 거야, 널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그런 말 하지 마. 그는 이 말 한 마디로 나의 존재를 긍정해주었고 나는 쓸 모가 없다느니 미래가 없다느니 하는 말을 아예 관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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