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일
모두에겐 저마다의 황홀과 나락이 있다. 하지만 내 그것들은 정말이지 조촐하기 그지 없다.
7월 24일
해야 하는 일은 규칙도 없이 시간표와 데드라인들 사이로 마구 투하된다. 어느 것에도 몰두하지 못한 채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문도 저 문도 두드리지만 대답이 돌아온 문도 묵묵부답일 뿐인 문도 열지 않는다. 방 안에 무엇이 있을까 끊임없이 생각하지만 나는 상상만으로도 행위의 절반은 대신할 수 있는 류의 인간이다. 선택지와 선택지 사이를 변덕스러이 왔다 갔다 하면서 나에게 남은 것은 책임감이 아니라 미련이었다.
감정들은 저희들끼리 엉켜 움찔대고, 이성과 규범의 사슬을 벗어나려 아우성치는데, 이리도 폭발할 것만 같고 소리를 지르며 난동을 피우는데,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내가 하는 일은 얇은 펜 끝을 조종하는 일이다. 정적 속에서나 성공할 섬세한 작업이다.
생각은 포화되었고 마음은 터질 것 같다. 작은 틈이라도 생기면 나의 비관적 자아가 영혼을 비집고 탈출하려고 안달이 났다. 이 와중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뿐이라니! 이 역동성의 불균형에서 나의 예민하고 나약한 정신은 어디를 안식처로 삼아야 할까? 아무것도 오래 쳐다볼 수 없는데 무엇에 몰입할 수 있을까? 다음을 생각하지 않는 탐닉으로 목덜미를 물어야 하는가? 공허한 궁전을 채우기 위해 혀와 손가락을 놀려야 하는가?
12월 8일
필연적인 작은 잎들이 모여서 불운이라고 하는 거대한 파리지옥을 피웠다. 난 지금 그 안에 갇혀 있는 듯하다. 물론 이는 내가 똥이나 쫓은 파리이기 때문이다. 이미 영양분은 쪽쪽 빨리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똥의 속따위를 온몸으로 뒤지다가 파리지옥에게 먹혀 버렸다. 지금 방의 문은 닫혀 있고, 누군가 문 바로 밖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고, 나는 최대한 들키지 않게 숨죽이면서 울고 있다.
난 대체 무엇 때문에 울고 있는가. 지금 이 순간 너무도 피하고 싶은 것들과 가까이 맞닿아 있다는 것이 숨 막힌다.
5월 14일
나는 무엇을 쥐고, 무엇을 버리고 싶은 걸까? 어떻게 행동하고 싶은 걸까? 감정들이 목표 없이 가슴도 아니고 머릿속에서 휘날리다 휘발된다.
갖지 못했을 때는 성급히 얻기 위해 달려들다가도, 가지고 나서는 아름다움이 예전 같지 않은 그 모순. 소유하기 쉬울수록 소중하지 않아지는 비정한 인과관계엔 예외가 없다.
7월 16일
하늘이 예쁜 연보라색일 수도 있음을 오늘에서야 알았다. 얼음처럼 허연 바다의 끝, 그 위로 보라색 증기가 지평선을 장악하고 푸르스름한 하늘과 만났다. 동쪽에선 눈이 아플 정도로 시뻘건 태양이 서서히 떠올랐다. 바다머리맡의 보랏빛은 위로 갈수록 주황빛으로, 노란빛으로, 잠깐 색깔의 공백이 있은 뒤 얇은 연두 빛으로, 마지막으로 세상의 맨 위에선 파랬다.
더욱 신선했던 건 그 아름다운 일출이 나에게 조금도 의미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눈이 부셨고 오감을 빨아갈 듯이 강렬했지만 진정 무의미했다. 태양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나에게 그러했다. 아무리 멋지고 예뻐도 의미가 없다면, 없어지더라도 나에게 아무런 아픔도 요동도 없다면… 아아, 나의 세상은 무의미한 기적들로 가득하다.
백사장의 어느 구덩이에서 꿈틀대던 통벌레와 나 사이엔 아무런 차이도 없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 꾸역꾸역 몸뚱이를 비틀어대고 아무런 맛도 안 나는 밥을 씹어 삼키며 주체할 수 없이 배설하고 잠을 자왔다. 통벌레의 삶엔 아무런 의미도 부여하지 않으면서 인간에겐 끝없이 뜻과 향기를 퍼부으려는 모든 철학과 응원과 격려의 시가 미웠다. 나는 인정하고야 말았다. 지금의 삶엔 아무것도 없다. 잃어서 눈물 흘릴 것, 얻어서 눈물 날 것이 없다.
7월 17일
기억에 남는 것은 내가 상처 준 이들의 이름과 얼굴뿐이다. 나를 힘들게 한 이들의 행위는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것으로 둔갑되고, 나의 만행은 그 아무리 작을지라도 육중한 죄로 자리 잡는 아픈 모순. 무엇에 관대하고 무엇에 엄격할지조차 모르는 나는 주관도 없다. 타인이 만지는 모든 것은 금으로, 내 손길이 닿는 모든 것은 똥으로 변하며 나의 존재가 얼마나 무의미하고 열등한 지 입증되고 있다.
주위의 사랑은 이미 소유해버린 것으로 치부한 뒤 결핍에만 미치도록 집중하고 있다. 가라앉으려 하고 있다. 하지만 죽고 싶지 않아, 뜨지 않는 몸을 허우적대고 있다.
한 편 유일한 의미였던 것들은 나를 잊고 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중얼거림과 일방적인 통지만이 소통을 지배하고 있다. 보이고 들리고 만져질 뿐 맛을 느낄 수 없고 향을 맡을 수 없다.
소녀는 이 많은 우울을 더 이상 홀로 견디지 못하였다. 글을 쓰는 것만으로는 맘을 추스릴 수 없었다. 상처들은 아물기는커녕 매일 새로이 곪아 터졌다. 그리하여 소녀는 흉진 곳들을 어루만져주는 사람들을 찾아가기로 했다. 그들은 임상심리학자, 친구, 실존철학자, 연인, 죽은 자기 자신, 마지막으로 살아있는 자기 자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