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인 연극의 끝을 기다려본 적 있는가?
15일 저녁, 대학로의 한 예술공간에서 두 편의 연극을 연달아 상연했다. 나는 첫 번째 연극을 다 본 뒤 인터미션을 틈타 화장실에 가려고 극장을 나섰다. 1칸뿐인 남녀공용 화장실 앞엔 긴 줄이 있었다. 심지어 맨 꼴찌로 기다려야 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관객 입장 시작하겠습니다’라는 말이 건물을 쩌렁쩌렁 울리고도 꽤 오랜 시간 줄에 서 있었다. 마침내 내 순서가 되었고, 화장실에 들렀다가 다시 극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두 번째 연극을 볼 생각이었을뿐더러 짐이 다 안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잠긴 출입문과 이미 시작되어버린 공연의 소리, 그리고 ‘공연 중 절대 출입금지’라는 표지판을 마주했다.
관계자를 애타게 찾았지만 매표소는 캄캄했다. 모든 관계자는 극장 안에 있을 따름이었다. 닫힌 문을 열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나는 공연장을 코앞에 두고 연극이 끝나기를 기다려야 했다. 이 글은 막이 내리기를 홀로 기다렸던 1시간 30분에 대한 회고이다.
1. 감각
건물의 출입구는 1층에, 공연장의 출입구는 지하 1층에 있었다. 나는 그 사이 반지하의 공간에 자리를 잡았다. 난방기구도 없는 어정쩡한 실내라 참 추웠다. 시야의 왼쪽으로는 내려가는 계단이, 오른쪽으로는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똑같은 포스터가 양 벽을 다닥다닥 채웠다. 이 최초의 경관은 1시간 30분 동안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아래쪽에서 배우들이 울부짖고, 웃고, 걸어 다니고, 넘어지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하지만 대사는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다. 지상에서 오토바이가 지나가거나 행인이 깔깔대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의 내게 유의미한 음향은 공연의 끝을 알릴 박수소리뿐이었다.
2. 소지품
대충 주변을 탐색하고 나니 1시간 30분 동안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음을 깨달았다. 스마트폰은 멀리 저 안에 있었고, 빈털터리여서 카페에 앉아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진열대에 놓인 팸플릿들을 읽거나 사색에 잠겨야 했다.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주머니 속의 립스틱뿐이었다. 립스틱이 그 상황에서 얼마나 쓸모없을지 생각해보라! 나는 립스틱의 뚜껑을 가지고 장난을 치다가 곧 질려서 그만두었다.
3. 세계
예상대로였다면 나는 극장에 앉아 연극을 보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극장 밖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완전한 지하 혹은 지상에 있었고 나는 혼자였다. 순간 세계로부터 분리된 느낌을 받았다. 오직 의식의 흐름만이 나의 존재를 증명했다.
4. 공간
내가 앉아 있었던 공간의 용도는 대합실이었다. 공연이 시작하기 전, 잠깐 앉아서 입장을 기다리는 곳. 막이 오르고 나면 막이 내리기 전까지는 아무도 찾지 않는 곳. 실제로 나는 한 시간 반 내내 누구와도 실제로 마주치지 않았다. 아무도 내가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당시에 모른 것이다. 그런 경험은 인생에서 몇 번 없다.
5. 희망
추위를 빼고 논한다면, 공연장 바깥에서의 1시간 30분이 그다지 괴롭지 않았다. (강제로) 이것저것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셈이었다. 가만히 앉아 갖가지 질문을 만들어냈다. 나는 있어야 할 곳에 없고, 내 소유의 물건이라고는 입고 있는 옷뿐인데 나란 존재는 무엇일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평소의 시간이 서사적이고 단선적으로 나아갔다면, 그 1시간 30분 동안은 동일한 시점에 계속 맴도는 기분이었다. 나아가 신이라는 것이 있을까, 신은 지금의 황당한 상황을 보고 있을까도 생각했다. 나의 결론은 ‘알 수 없다’였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무료한 평화를 즐길 수 있었던 것은 고립의 끝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1시간 30분만 지나면 이전과 똑같이 사람들의 무리에 섞여 세계와 합체하고 따뜻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 만약 이 믿음이 없었다면, 예컨대 사막에 혼자 허망하게 떨어져 있었더라면 설령 조건은 비슷하다 해도 마음이 전혀 달랐을 것이다.
6. 꿈
꼼짝 못하고 기다리면서, 지금의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해보았다. 나는 공연이 얼른 끝나는 것도, 공연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그저 주머니 속에 펜과 수첩이 있기만을 바랐다. 그 어처구니없는 순간에도 나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7. 끝
공연은 예상했던 것보다 일찍 끝났다. 시간이 영영 가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사색에 잘 몰입했나 보다. 박수소리와 함께, 내면으로 침잠했던 나의 관심을 다시 세계로 돌렸다. 짐을 챙기고 나와 귀가했다. 오늘 있었던 일을 글로 쓸 생각에 들뜬 채로.
Cover image: Madeleine undressing, John Everett Millais, 18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