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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날만 Mar 20. 2016

영화를 기다리며


 영화 시작 20분 전이다. 사람들이 실내 의자에 앉아 입장을 기다린다. 나도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봄을 간과하고 두껍게 입었더니 후덥지근하다. 외투를 벗어서 무릎에 얹어둔다. 아직 개장하지 않은 매점으로 팝콘이 배달되는 모습을 지켜본다. 거대한 비닐봉지 혹은 플라스틱 박스에 종류별로 담겨서 수레 같은 것으로 옮겨진다. 어렸을 때만 해도 팝콘은 고소한 맛(버터)뿐이었는데 이제는 여러 종류가 있다. 위장에 설탕옷을 입히는 듯한 캬라멜, 매콤한 향이 진동하는 갈릭, 샛노란 치즈맛 등등.


 블록버스터 판타지 액션 영화 - 이런 복합장르가 존재한다면 - 였음에도 불구하고 관람객의 나잇대는 다양했다. 다만 무척 젊거나 무척 늙었다. 어린 사람들은 보통 남녀 한 쌍으로, 무채색 옷을 입었다. 반면 노인들은 화려한 색상의 자켓을 걸치고 있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계절감을 드러내는구나.


 매점이 오픈하자마자 사람들이 팝콘을 사러 줄을 선다. 제일 먼저, 양복 입은 남자가 배꼽이 보이는 여자의 팝콘을 사줬다. 누군가는 제로 콜라를 요구하고, 누군가는 멀찍이 서서 메뉴를 고른다. 어딘가에서 티켓을 받아주는 여직원이 등장했다. 짧은 머리를 하고 목에 귀여운 리본을 맨 중년이다. '2관 입장하시겠습니다.' 손님들이 표를 내밀 때마다 여자는 연신 목을 굽힌다. 나는 팝콘 줄에 섞여들었다가, 원기둥 모양의 용기를 안고 극장에 들어설 것이다.




 영화를 기다리는 약 15분여간, 스마트폰 메모장에 적어둔 글이다. 무료한 시간에 몰입할 수 있게 해준 글쓰기에 감사를 표한다. 글의 망막으로 세상을 보면 일상이, 지루한 순간들이 새로이 보인다.


 여담이지만, 영화는 최악이었다. 중간에 팝콘이 동난 후로부턴 엔딩 크레딧만 기다렸다. 하지만 좋은 영화를 본 것만큼이나 중요한 경험이었다. 덕분에 이런 식으로 창작하면 안 되겠다, 라는 부정적인 준거를 형성할 수 있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나의 혹평이 감독에 대한 무례일까 싶었지만, 비판은 예술의 미토콘드리아 같은 것이다. 나 역시도 언젠가 내 글을 향한 혹평과 마주할 것이다.


Cover image: Roy Lichtenstein, Little Big Painting, 1965, oil on canv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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