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과의 공통점을 원한다

왜 독일어를 배우는가

by 구날만



“왜 그 언어로 골랐어?”

외국어를 배울 때 많이 듣는 질문이다. 대답들은 보통 ‘재미있어서’나 ‘필요해서’로 수렴한다. 그런데 내가 독일어를 공부하는 것은 마냥 즐거워서도, 요구받았기 때문도 아니다. 더 중요한 이유를 말하기 위해선 내 인생에 개입한 세 명의 독일인을 소개해야 한다. 그들은 나의 고민을 들어줬고 현명한 조언도 마다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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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막스 베버: 무엇을 꿈꿀 것인가?

열일곱 살의 나는 변덕쟁이였다. 여름엔 경제학도가, 겨울엔 철학도가 되고 싶었다. 예상치 못하게 경제 성적이 괜찮았고, 덜컥 읽어버린 철학 책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짧은 방황 끝에 조급했던 꿈들은 모두 부스러졌다. 갈팡질팡하는 가운데 열여덟 살이 되었다.


당시 학교의 제도상, 월요일 7, 8교시에는 여럿이 팀을 짜서 고전을 읽어야 했다. 우리 팀은 난이도에 대해서 무지한 채, 페이지 수가 적다는 이유만으로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선택했다. 그 바람에 기독교의 분파에 대해서 조사해야 했으며, 중간고사가 끝난 직후에도 자습실에서 머리를 싸맸다.


두 달에 걸쳐 책을 읽고, 내용을 요약하고, 토의를 하면서 결과적으로 사회학에 매력을 느꼈다. 그 전까진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학문에 눈 뜨게 해 준 것이 베버였다. 나는 사회학과에 가기로 결심했고, 바람은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때는 베버가 독일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했을 뿐 독일어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2014년 5월, 프리드리히 니체: 시련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마음속으로 니체의 이름을 되뇐 것은 재작년 5월쯤부터였다. 우울한 새내기였던 나는 맹목적인 오락에 지쳐버렸고 대학생활에 대한 허무감에 시달렸다. 모두가 가장 행복하다고 부르짖는 스무 살에, 그토록 괴롭고 피로한 나 자신을 마주해야 했다.


그 무렵 아버지의 서재에서 우연히 <한 권으로 읽는 니체>라는 책을 발견했다. 군주의 도덕과 초인을, 자유와 힘을 울부짖는 그의 사상에 매료되었다. 종종 중앙도서관에 가서 니체의 서적만으로 채워진 책꽂이 앞에 쭈그리고 앉아 종이 냄새를 맡았다. 나는 니체를 통해서 고통에 초연해지는 하나의 방식을 배웠다. 모든 시련이 영원히 되풀이된다 해도 받아들이는 긍정의 수법을, 우울의 최대 적수인 희망을 얻었다.


니체에 대한 동경은 그의 모국어에 대한 막연한 애정으로 흘렀다. 원전을 읽고 싶다는 야망과 첫여름방학의 무료함이 나를 재촉하여, 그렇게 독일어 공부를 시작했다.


2015년 11월, 헤르만 헤세: 나는 왜 사는가?

종강에 가까워 갈수록 스트레스는 극에 달한다. 2학년 2학기가 끝나갈 무렵, 1교시 수업을 듣기 위해 지옥철을 버티고, 만원인 5511 버스 속에서 숨 막히면서, 일상을 뿌리째 뒤흔드는 질문들에 직면했다. 이렇게 힘들면서까지 살아야 하나? 나는 왜 살지?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지?


다채로웠던 세상이 일순 흑백으로 변한 기분이었다. 모든 것이 무가치하게 느껴졌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와 인생의 의미를 찾아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삶의 채도를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것이었다. 그때 빌린 책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었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홀연히, 독일인들은 무슨 소설을 쓸까 싶어 문학 코너를 서성였고, 제목의 마력에 이끌려 <데미안>을 꺼내 들었다.


3일 동안 책을 정독하며 에밀 싱클레어의 독백을 곱씹었다. 주어지기도, 개척되기도 하는 운명을 긍정하는 것이 나의 유일한 의무이자 의미였다. 195쪽(열린 책들, 김인순 역)에서는 에바 부인이 “싱클레어의 운명은 싱클레어를 사랑해요. 싱클레어가 충실하기만 한다면, 그 운명은 언젠가는 꿈꾸는 대로 완전히 싱클레어의 것이 될 거예요.”라는 말을 던진다. 이 문장은 읽는 순간 성스러운 조각도로 내 가슴에 한 글자씩 새겨졌다. 설령 미래의 길이 구불구불할지라도 나의 운명일 테니 그 곡률마저 사랑하리라고 다짐했다.


혼란한 시기를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초연하고 밝은 세계관을 지닌 헤세를 존경하게 되었다. 내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던 그 역시 독일인이었다. 독일어에 대한 애정은 더 각별해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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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출처는 wikipedia.org


그들과의 공통점을 원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왜 독일어를 배우는가’에 대해 간결하게 대답하겠다. 솔직히 말해서 독일어 공부가 항상 재미있지는 않다. 형용사 변화는 복잡하고 각종 격들과 접속법은 너무 어려워서 책을 덮고 싶게 만든다. 내게 독일어가 필요한가 하면, 그렇다고 확언할 수도 없다. 다만 하나의 굳건한 기둥이 나와 독일어 사이의 다리를 지탱한다. 내 미래와, 고통과, 존재의 짐을 다스릴 수 있게 해 준 베버, 니체, 헤세와 무언가를 공유하고 싶다.


나는 그들과 같은 시대를 살지 않는다. 신의 죽음을 확신한 적도 없고 전쟁에 참여한 일도 없다. 대신 이 셋이 사용한 언어를 취하기로 했다. 동경하는 이들과 공동의 사유 형식을 갖고 싶다는 열망, 그것이 나를 독일어로 이끈다.



Cover image: 에른스트 루드비히 키르히너, 베를린, 1913, 캔버스에 유채

※필자가 사회학웹진 '월간 틀'에 투고한 글을 브런치로 옮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