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주의의 산물로서의 로망]
8. 로망은 헤도니즘(쾌락주의)의 산물이다. 사람들은 즐거운 것을 로망한다. 자신이 고통 받기를 로망하는 자는 없다. (단, 예외들이 몇 있는데, 소설 <멋진 신세계>에서 ‘존’이, ‘레니나’가 육체적 관계를 요구하자 일종의 통과의례로서 스스로에게 고통을 주려 했던 사례가 있다.)
로망의 장면 혹은 영상 속에서 우리는 욕구를 억제하지 않는다. 무엇이든 실컷 충족시키며 포만감을 느낀다. 예를 들어 멋진 선배와의 사랑에 성공하여 낭만적으로 키스하는 장면을 로망하지, 키스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는 금욕적인 로망은 이례적이다.
로망이 추구하는 쾌락은 키치의 그것처럼 현재의 권태로움 및 지겨움과 대비된다. 지금과 다른 것을 로망하는 과정(주로 공상)을 통해서 인간은 정신적인 자기 위로를 행하고, 순간적으로 쾌락을 얻는다. 로망의 시간관은 미래이지만 로망을 떠올리면 현재에도 쾌락이 생기는 것이다.
9. 로망의 길이는 짧다. 로망되는 화면에서는 하나의 시점에 모든 쾌락이 집중된다. 마치 키치가 ‘점’의 시간에 모든 쾌락을 집약시키는 것과도 같다. 설렁 로망되는 것이 어떤 영상의 형태를 띠거나 플롯을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다지 길지 않다.
[환상으로서의 로망]
10. 로망은 환상이고, 공상이며, 상상, 결국 온갖 ‘상(想)’에 불과하다. 현실은 로망과 유사할 수는 있어도 원하던 바 그대로 실현될 수는 없다. 이데아가 현상계에선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y=1/x에서 x가 커질수록 그래프와 y=0의 거리는 가까워지지만 만날 수 없는 것처럼, 로망은 기껏해야 현실과 점근선을 그릴뿐이다. 오히려 점근조차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로망은 대중적이며 강도 약한 과대망상증이다. 로망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사람은 드물지만, 일어나기 힘든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꿈을 다들 하나쯤은 갖고 있다. 비현실성을 알면서도 우리는 로망에 도취된다. <보바리 부인>의 엠마 보바리가 “개인적 욕망을 공상으로 만족”시켰을 때, 그 동경의 대상이 바로 로망이다. 그녀는 상류사회를 로망했고, 자신의 로망과 현실의 괴리를 좁히기 위해서 망상이란 위험한 다리를 이용했다.
다른 한 편 로망은 제멋대로인 rpg게임이다. 자신이 로망하는 배경을 설정하고, 로망하는 주변 인물들을 짜 낸 뒤, 메인 플레이어로서 자기 자신을 투입한다. 이 게임에서 주인공은 언제나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고, 레벨 업에 성공한다. 혹시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예견되어 있으며 그것 자체로서 로망이다. 비련의 여주인공을 로망하는 경우를 예시로 들 수 있다.
11. 다음은 독일 뮤지컬 엘리자벳의 사운드트랙 중 “Kitsch”란 노래의 가사이다.
“Alles innig, lieb und sinnig! So wie es euch gefällt! Kitsch!”
이를 한국어로 번역하면 “모든 것이 친밀하고, 사랑스럽고 재치 있어! 당신에게 마음에 드는 그대로! 정말 키치하군!”이다. Alles innig, lieb und sinnig(=everything is intimate, lovely and fun)는 쾌락주의의 차원에서 키치와 로망이 통함을 알린다. 여기서는 So wie es euch gefällt!(=just as you guys want)라는 부분이 더 중요하다. 자기가 원하는대로 만들어내는 것. 그것은 환상, 곧 로망이다.
12. 로망이 환상이란 점은 그 어원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로망의 어원은 중세 유럽에서 로망스어로 쓰이던 통속 소설 ‘roman’이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허구적이다. 더욱이 당시의 roman은 전기적이거나 비현실적인 사랑의 요소들을 담았다고 한다. 따라서 환상을 다룬 소설로부터 발전한 개념인 로망은 자연스럽게 지금, 여기의 현실에 없는 것을 포섭한다.
13. 로망에 깊게 빠진 이들은 자신의 환상에 어긋나는 일이 발생할 경우, 사건이나 대상의 가치를 평가 절하한다. 대표적인 예시로, 연애에 있어서 상대보다 자신이 ‘아깝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들 수 있다. 그들은 꿈꿔온 이상형, 연인에 대한 로망을 견고하게 규정해 놓은 뒤 그 로망과 다르거나 못 미친다고 여겨지는 연인을 만나면, 상대를 자신보다 결함 있는 존재로 본다.
‘아깝다’라는 판단은 사람들을 여러 급으로 나눈 후, 스스로를 주관적으로 평가했을 때 자신이 속한다고 생각되는 급을 지정한다. 타인 역시 여러 ‘급’들 중 하나로 분류된다. 그리하여 자신과 같은 급, 낮은 급, 높은 급이란 세 부류의 타인이 탄생하는데, 자신보다 낮은 급이라고 평가한 사람과 연애를 할 때 스스로가 아까워진다. 이렇게 자의적이고 제멋대로인 가치 판단은 저속하기 짝이 없으며 환상에 허우적대는 키치이다.
본 글은 2014년 2학기 임혜은 교수님께서 진행하신 예술과 역사 수업에 제출한 리포트를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 당시 새내기였던 필자의 우울한 세계관을 엿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