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7,8 세 달 동안 뉴욕과 뉴 헤이븐을 오가며 생활했다.
코로나 때문에 2년 반 동안(2022년 6월 기준)을 감옥에 갇힌 사람처럼 지내다가 실로 오랜만에 집을 박차고 나와 자유로히 나는 새가 되어 뉴욕으로 날아갔다.
코로나가 종식된 것도 아니고 확진자들이 속출하고 있었으며 사망자들도 끊이지 않는데 여행을 감행항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였다. 큰 딸애가 뉴 헤이븐에 있는 Y대학에서 공부를 하게 되어 정착하는 것을 직접 보기 위해서였다. 딸애만 보내고 집에 있다가는 걱정하느라 코로나 보다도 더 무서운 불안감에 휩쓸릴 것 같았다.
뉴욕은 오래전에 3년 동안 미술을 공부했던 곳이고, 그 후로도 자주 드나드는 곳이기 때문에, 내가 태어난 고향처럼 친근감이 있는 곳이다.
맨해튼 구석구석 발도장을 찍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시간만 나면 빨빨거리고 돌아다녔었다. 발길 닿는 곳마다 볼거리와 재밋거리가 얼마나 쏟아지는지 맨해튼은 거대한 마술상자 속 같다고 생각하곤 했었다.
내가 좋아하는 미술관과 숱한 갤러리들은 나만의 파라다이스로 만들어 주고,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게 날개를 달아 주었다.
나는 스위스나 뉴질랜드 같이 자연환경이 아름답고 평화로우며 조용한 나라를 달팽이처럼 느리게 여행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전자기기 회로처럼 복잡하고 사람들이 뿜어내는 열기로 가득한 뉴욕(맨해튼)을 좋아하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내 마음속에 젊음의 피가 식지 않고 돌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 아닐까?
오랜만에 찾아온 뉴욕은 마치 축제를 펼치고 있는 것 같았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상가들은 폐쇄되고, 코로나로 희생된 사람들의 안치소가 들어섰으며, 시신을 짐처럼 실은 냉동 트럭이 줄을 이었던 비극의 현장이었다. 마치 좀비나 유령의 도시 같았었다.
거대한 마술상자 같은 이 도시는 마법사가 마술을 부린 듯 전혀 다른 세상으로 바꾸어 놓았다.
맨해튼의 타임스퀘어 주변은 사방에서 봇물이 터져 한 곳으로 밀려든 것처럼 사람들의 홍수였다. 팔을 마음껏 휘젓고 다닐 수 없을 정도였다. 코로나 이전에도 몰려드는 사람들로 땅이 꺼질 것 같은 곳이었지만, 그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였다.
하늘을 깊숙이 찌른 건물마다 전면을 가득 채운 크고 작은 전광판에서는 이미지들이 정신없이 바뀌고 있었다. 그 현란한 불빛을 조명 삼아 곳곳에서 노래 부르고 춤을 추며 퍼포먼스를 벌이느라 소리 지르는 사람들은 모두가 들떠서 혼이 나간 것 같았다.
주변에 운집해 있는 숱한 극장에는 뮤지컬이나 오페라를 관람하려는 사람들로 긴 줄이 만들어졌다. 그들은 기대와 흥분으로 입장하기 전부터 한껏 들떠있었다.
지붕 없는 2층 관광 안내 버스나, 한쪽 면을 통유리로 만들고 계단식 의자를 옆으로 길게 배열한 특수한 관광버스도 빈좌석 없이 채워져 수시로 출발하고 있었다. 안내원의 목소리는 긴 가뭄으로 바닥난 저수지에서 힘겹게 뻐끔거리며 숨 쉬던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처럼 파닥파닥 생기가 넘쳤다.
현대미술을 전시하고 있는 뉴욕 현대 미술관(MOMA), 구겐하임. 휘트니 미술관(첼시 지역 허드슨 강가로 신축 이전함)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아마도 나처럼 작품감상에 목말랐던 사람이 많았나 보다.
첼시마켓 안에 음식점들은 좌석을 차지하기 힘들고, 맛집으로 소문난 곳은 줄을 서서 긴 시간을 소모해야 했다. 랍스터를 주로 취급하는 음식점에서 랍스터 샌드위치를 먹는데 환상적인 맛에 혀까지 삼킨 줄 알았다.
내가 좋아하는 에싸 베이글 (Ess-a- Bagel : 3rd Ave) 가게엔 택배 기사가 허리 펴지 못하고 물건을 나르기 바쁘고, 건물 밖에 길게 늘어선 손님들은 뜨거운 햇빛을 몰아내느라 애쓰고 있었다.
베이글을 먹을 때면 기다리느라 힘들었던 기억은 까맣게 잊고 언제 또 오지(?)하는 생각뿐이었다.
비극으로 쌓아 올린 세계 무역센터(TWC)에도 추모시설과 메모리얼 박물관을 보기 위해 구름 인파가 몰려있었다. 메모리얼 파크에 설치된 두 개의 초대형 사각형 인공 폭포, 즉 사우스 폴( South pool)과 노스 폴(North Pool)에서는 숱한 희생자의 눈물인 듯 폭포가 되어 흘러내려 하단 중앙에 설치되어 있는 구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오래전 철길이었던 곳을 산책로로 마법처럼 둔갑시킨 스카이라인은 사람들로 거대한 기차를 만들어져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나도 기차의 한 부속품이 되어 힘차게 작동하기 시작했다.
태고의 분위기를 유지하는 뉴욕의 심장부인 센츄럴 파크에는 산책하는 사람 운동하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건강하게 박동하는 그들의 가슴 뛰는 소리가 멀리 떨어진 곳까지 들릴 것 같았다.
2년 반(2022년 6월 기준)을 우리는 코로나라는 예기치 못한 전염병으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환란을 겪었다. 외출도 자유롭게 못하고 친인척이나 친구의 만남도 쉽지 않았으며 가족이 병마와 싸우는 힘든 과정을 지켜봐야 했다. 심지어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한순간에 떠나보내는 어처구니없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잠시 눈 붙일 시간을 주지 않고 불안은 무거운 바위가 되어 몸을 무겁게 짓눌렀다.
자유롭게 친구와 만나고, 거리를 활보하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외식을 하고, 가족과 가고 싶은 나라를 자유롭게 여행을 떠나고...... 이러한 소소한 일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것인가를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인식하게 되었다.
아직까지도 코로나가 종식된 것이 아니다. 계속 낮은 상태에서 진행형이지만 이곳 뉴욕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정도면 이젠 살아남았다고 스스로 안도하며 불안을 떨궈내는 것 같았다.
감옥 같은 우리에 감금되어 2년 반이라는 긴 시간 동안 불안과 공포, 눈물과 한숨으로 보낸 시간이 너무나 아깝고, 더구나 이 엄청난 희생을 누구한테 하소연할 수도 보상받을 수도 없기 때문에 스스로 위로하며 더 많은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