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를 흔히 심심한 천국이라고 말한다.
숨 막힐 것 같은 복잡한 도시에서 일에 치여 사람에 치여 아등바등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곳은 바로 이런 곳일 게다.
심심한 시간은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시켜 주고 새로운 활력소를 가득 넣어 준다.
바쁘게 사느라 지나쳤던 주위를 천천히 훑어보면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게 되고, 자신을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며 켜켜이 쌓인 오욕을 정화시킬 수 있는 것도 이런 심심한 시간을 가질 때 가능해진다.
처음 뉴질랜드에 발을 들여놓은 곳은 이 나라의 수도 웰링턴이었다. 인구 40만이 안 되는 조그만 도시로 북섬의 최 남단에 자리 잡고 있다.
뒤로는 야트막한 산(언덕)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앞에는 아름다운 바다가 시원스레 펼쳐져 있으며, 저만치 남섬이 손에 잡힐 것 같이 보이는 그림같이 아름다운 곳이다.
이곳에서 일주일 동안 나는 최대한 게으름뱅이로 생활했다. 식물학자처럼 보타닉 가든의 식물들을 하나하나 관찰하고, 국립 박물관 테파파(Te PaPa)에서는 마오리족의 예술품에 반하여 아름다운 문양들을 마음에 담고 스케치북에 담느라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자유와 평화로움이 넘실거리는 국회의사당 앞 너른 잔디밭에 누워 머릿속의 잡다한 생각을 말끔히 씻어버리고 파아란 하늘만 가득 담기도 했다.
오클랜드는 인구가 120만 명 이상이다.
고층건물도 군데군데 줄지어 늘어서 있고, 상가와 레스토랑, 카페들도 심심찮게 얼굴을 내밀고 있다.
도심 한복판에 우뚝 솟은 스카이타워(328m)의 전망대, 갤러리, 박물관, 동물원, 수족관, 빅토리아 공원과 콘월 공원 등 볼거리가 제법 된다.
뉴질랜드에서 좀 덜 심심한 천국이 있다면 바로 오클랜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클랜드를 떠나기 전날이었다.
숙소에서 한참 떨어진 곳까지 운동삼아 산책을 하고, 아침을 해결할 요량으로 어슬렁거리다가, 세련된 현대적 분위기의 카페를 발견했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손님들로 붐비고 었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출입문을 밀치고 들어섰다. 사람이 몰리는 곳은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실내는 음료와 먹을 것을 주문하기 위해 손님들이 줄을 서 있었다.
내 차례가 되어 커피와 크림치즈 베이글을 주문하는데, 40대 초반의 동양계 여자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한국 분이세요?”
라고 물었다.
“녜 그렇습니다. 여행 중입니다.”
“………….”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여자는 머리를 끄덕이며 환하게 웃었다.
“반갑습니다.”
여자의 옆, 커피 머신 앞에서 분주히 손을 움직이던 남자가 밝은 미소를 지었다. 아마도 여자의 남편인 듯했다.
나는 이들을 처음 봤을 때, 한국인으로 생각지 못했다. 현지인을 상대로 고급스러운 카페를 운영하는 교민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손님들로 가득 채워진 홀 안을 두리번거리다가 비어있는 한 테이블을 발견하고는 그 자리에 앉아 천천히 커피와 베이글을 즐기기 시작했다. 커피는 향과 맛이 깊고 여운을 남았다. 흔치 않은 맛이었다. 역시 사람들이 몰려드는 이유가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기계적으로 커피를 마시고 음식을 먹는다. 먹는다기 보다는 입안에 욱여넣는 것 같았다. 일 분 일 초가 아까운 듯싶었다. 불쌍한 직장인들....... 아침 한 끼 때우는 것도 경쟁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그들의 옷차림은 남. 녀 불문하고 말쑥한 정장 차림이었다. 주위에 금융가, 로펌, 대형 회사의 본사들이 즐비한 곳이기 때문이리라.
아침을 해결한 손님들이 자리를 뜨기 시작하더니, 업무가 시작되는 시간이 되자, 카페 안은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여행 중이세요?”
주인이 내 앞에 서 있었다. 아까 여자의 옆에서 커피를 내리던 남자다. 인상이 선하고 친근감 가는 얼굴이다.
“아 예……..”
우리는 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이미 알고 지내온 친구처럼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뉴질랜드에서 성공하신 분을 만나서 기분이 좋은데요.”
나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인사말을 건넸다.
주인은 그동안 말상대가 없어서 외로웠던 탓일까? 아니면 내 얼굴에서 성공스토리를 궁금해한다는 것을 읽은 것일까? 초면인 나에게 자신의 살아온 지난날을 허심탄회하게 풀어놓았다.
그가 이곳에 날아와 둥지를 튼 것은 이십여 년 전이라고 했다. 그 당시에는 교민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여서, 정착하는데 애로가 많았다. 가져온 돈은 금방 바닥이 났고, 일자리는 없고,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자신의 처지가 날개 잃은 새 같았다. 바둥거릴수록 날개는 더욱 상처를 입고, 더 깊은 나락으로 굴러 떨어졌다. 제대로 준비 없이 훌쩍 한국을 떠난 것을 수도 없이 후회했다. 끝없는 수평선을 바라보면 한숨과 눈물이 쏟아져 나왔고, 좌절감은 그의 몸과 마음을 모래성처럼 허물어뜨렸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는 어느 한 주택가에 카페를 열었다. 여기서 살아남지 못하면 끝장이다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온갖 정성을 다 해 커피를 끓이고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내 가족이 먹고 마시는 것 이상으로 진심을 담았다.
신도 그의 마음을 헤아렸을까? 손님이 한 명, 두 명 늘어나기 시작했다. 한번 찾은 손님은 다시 찾았고, 주위 사람들과 동행했다. 얼마 안 가서 커피가 맛있는 집으로 소문이 났고, 손님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끝을 알 수 없는 어두운 터널에 갇혀 방황하던 그에게 저만치 환한 빛이 있는 출구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얼마 안 가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바닥났던 잔고는 순식간에 채워졌고 흘러넘쳤다. 그는 얼마 후에는 커다란 집과, 그리고 지금의 카페를 품에 안을 수 있었다. 맨살을 드러냈던 호수가 물을 가득 채운 거나 같았다. 그러나 그는 만족하지도 자만하지도 않았다. 단 한순간도 초심을 잃지 않았다.
나는 테이블 위에 나란히 올려놓은 그의 손을 보았다. 뭉툭하고 거친 보잘것없는 손이었지만, 두터운 신뢰와 진심을 읽을 수 있었다.
진심,
그것은 어디서나 통한다. 성공의 근원이다. 그러나 이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카페를 나오며 나는 그의 진심이 변치 않기를, 그에게 찾아온 여유와 행복이 계속되기를 마음 속으로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