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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준 Dec 21. 2022

암스테르담에서의 따뜻한 기억 하나



여러 나라 여러 도시를 여행하다 보면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는 곳이 있고, 그저 그렇거나 불쾌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곳이 있다.

자연이나, 건축물, 예술품들이 진한 감동을 주고 좋은 추억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사람이 주는 감동은 그런 것들을 훌쩍 뛰어넘는다.

먼 나라 낯선 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베풀어 주는 따뜻한 마음, 배려는 시간이 흘러도 그들이 새록새록 그리워지며 얼굴에 쏟아지는 노란 봄볕만큼이나 따사하게 만들어 준다.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

운하가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사이로 보물 같은 건축물들이 줄줄이 들어서 있는 곳,

안네 프랑크의 집이 있는 곳,

천국을 옮겨놓은 듯한 거대한 꽃 시장이 있는 곳,

500여 개의 낭만적인 다리가 있는 곳,

렘브란트와 빈센트 반 고흐의 향기가 흐르는 곳.


몇 년 전, 이른 봄에 암스테르담을 찾았다. 

수많은 운하와 물길 사이로 자리 잡은 구시가지의 역사적인 건물들에 잠시도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왜 북쪽의 베니스라고 불리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빈센트 반 고흐 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에 흠뻑 취했고, 국립 미술관에서는 빛의 화가라고 불리는 바로크 시대의 렘브란트 작품들과 만남도 가졌다. 그의 대표작인 야경도 감상했다.


누군가가 말했다. 암스테르담에서 멋진 건축물들을 제대로 즐기려면 운하 유람선을 타라고.


유람선을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갔다. 

4월이라 관광객이 많지 않아서인지 매표소 앞은 혼잡하지 않았다.

티켓을 살 요량으로 매표소 앞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데,

 "실례합니다." 

뒤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나는 머리를 돌려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인이 밝은 미소와 함께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 내 주위에 있는 누군가를 부른 게 아닌가 싶어 살펴보았지만 그 여인과 눈을 맞추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여인이 나에게로 다가왔다. 

"유람선 타실 건가요?"

" 네? 아 네.... "

의외의 질문에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여인을 바라보았다.

" 아 잘 됐네요. 이 티켓을 사용하세요."

여인이 티켓을 내밀었다.

"............"

티켓을 샀다가 일정이 바뀌어 되팔거나 누군가에게서 얻은 티켓을 되파는가 보다 생각하고 표를 받아 들었다.

" 티켓값 얼마죠?"

나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며 물었다.

"아 아니에요. 그냥 드리고 싶어요."

여인은 고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 "

나는 의외의 일이라 어떡해야 할지 몰라 티켓과 여인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서두르세요. 지금 유람선 출발시간이에요."

여인이 유람선을 바라보며 황급히 말했다.

저만치 유람선이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나는 그 한마디를 던지고 유람선으로 달려가 승선했다. 내가 타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유람선은 곧장 출발했다.

선착장 쪽을 바라보니 티켓을 준 여인이 환한 미소와 함께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녀의 남편인 듯한 남자가 그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서 역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 주고 있었다.


한 시간 정도 소요되는 유람선 관광 티켓값은 15유로, 우리나라 돈으로 2만 원 남짓이면 충분했다. 그런데 내 마음은 일확천금을 얻은 것만큼이나 벅찬 감동이었다. 감동은 돈의 액수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따뜻한 마음이었다. 


나는 그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힘껏 손을 흔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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