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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준 Oct 31. 2022

핼러윈 데이와 나

핼러윈 데이에 있었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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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선 핼러윈 데이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했다.

미군부대나 원어민 강사 그리고 일부 영어학원에서 핼러윈 파티를 했다고 하지만 그런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영국 생활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맞이한 10월의 마지막 날 밤이었다. 소파에 몸을 깊숙이 묻고 텔레비전에 정신 팔려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벽시계는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늦은 시간은 아니었다. 그러나 4시면 어둠이 내려앉는 데다가 저녁식사를 한지도 두 시간 이상이 흘렀기 때문에 꽤 깊은 밤처럼 느껴졌다.

누굴까? 이 시간에…… 방문하겠다고 약속한 사람도 없었고, 초대한 사람도 없는데…… 나는 머리를 갸웃거리며 현관문을 열었다. 순간 나는 비명을 지르며 몇 발자국 뒷걸음질 쳤다. 현관 앞에 발목까지 내려오는 검은 망토를 걸친 세 사람이 서 있었는데 모두 탈을 쓰고 있었다. 공포감을 극대화하기에 충분한 해괴한 탈이었다. 우리나라의 도깨비 탈이나 귀신으로 분장한 것보다 더 섬뜩한 모습이었다.

외국 공포영화를 보면 괴한이 사람을 죽일 때 저런 망측한 탈을 썼던 모습이 상기되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나를 해코지하려고 온 것인가? 영국에 와서 한 일이라곤 공부밖에 없는데 누가 무슨 원한이 있어 내 목숨을 노리는 걸까? 번지수를 잘못 알고 찾아온 것인가? 아니면 전에 이곳에 살던 사람이 계속 살고 있는 줄 착각한 것인가?

내가 하얗게 질려있는 모습을 보고 재미있기라도 한 듯 탈속에서 키득거리며 자기들끼리 무슨 말인가를 주고받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의 목소리였다. 놀란 나머지 인식을 못했는데  이제 보니 키가 아주 작았다. 어린아이들임에 틀림없었다.

두 딸애가 내 옆으로 다가와 섰다. 아내도 합세했다. 비명이 터져 나와야 할 그들의 입에선 아무런 소리가 없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이 마비되어 버린 것인가? 나는 걱정이 되어 그들의 얼굴을 살폈다. 사색이 되어있어야 할 아이들과 아내의 입이 미소가 머물고 있었다. 너무 충격이 심해 혼이 나가버린 것인가?

“아빠! 오늘이 핼러윈 데이야.”

그때까지도 놀란 표정으로 서있는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이 작은 애가 입을 열었다.

“핼러윈 데이?”

“응. 오늘 저런 복장하고 오는 애들한테 과자나 초콜릿 같은 것 주는 날이야.”

“……………”

딸애들은 학교에서 친구들과 핼러윈 축제 준비를 하면서 정보를 입수했고, 아내와도 공유한 것 같았다.

뭐 이따위 해괴한 풍속이 다 있나 싶었다.

나는 나를 놀라게 만든 아이들을 바라보며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아이들 주전부리로 항상 비축되어 있던 초콜릿과 과자가 동이 나 있었다.

내가 난감해하자,

“먹을 것 없으면 돈으로 줘도 돼. 오히려 더 좋아할걸."

작은 애가 해결사처럼 코치했다.

아내가 1 파운드짜리 동전 몇 닢을 건네주자 그들은 덥석 받았다. 그러고는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겅중겅중 옆집을 향해 걸어갔다.

나는 무너지듯 소파에 몸을 맡겼다.


그 후로 몇 차례 손님들(?)이 우리 집을 찾았는데 의상이 각기 달랐다. 어느 아이들은 마귀 복장, 혹은 해적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횃불을 들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고, 호박 속을 깨끗이 긁어낸 후 도깨비의 얼굴을 새기고 양초를 그 속에 집어넣어 눈이 반짝이는 것처럼 만든 등을 들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10월 31일은 핼러윈데이었다. 성자의 날(11월 1일) 바로 전 날이었다.

옛사람들은 시월 마지막 날부터 겨울이 시작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한다. 죽은자들, 즉 귀신이나 마귀 도깨비들이 긴 겨울밤을 활동하기 위해 되살아나는 것도 바로 그날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집을 나서게 되면 그들과 마주칠 것이 염려되어 자신들이 그들의 동료 유령이나 도깨비로 착각하게끔 해괴한 복장과 마스크를 만들어 썼다고 한다.

그날은 가난한 사람들이 음식을 구걸하러 다니면 이웃들은 그들이 자신의 죽은 가족이나 친척들을 위해 기도해 주겠다는 약속의 답례로 과일이나 돈을 건네주었다 한다.

지금은 다양하게 분장한 꼬마 귀신들(?)이 옆집을 돌면 어른들은 그들의 등에 멘 자루에다 초콜릿, 과자, 사탕 혹은 사과나 오렌지 같은 과일 등을 넣어 주거나 돈을 넣어 주는 풍속으로 변했다 한다.

어떻든 그들의 색다른 풍습 때문에 간이 떨어질 정도로 놀랐던 밤이다.


그 후로 몇 번의 핼러윈 데이를 경험했는데 특별한 것은 없었다. 해괴한 복장을 한 가족, 친구끼리 어울려 파티를 즐길 뿐이었다.

클럽이나 펍에서 시끌시끌한 파티가 있었지만 그건 어디 지나 상업적인 상술이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핼러윈데이란 어린아이들이 이웃집을 돌면서 초콜릿이나 사탕을 받아가는 날로 기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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