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힘
행색이 초라해 천대받던 비렁뱅이가 어느 날 성공하여 때 빼고 광내어 나타났다.
옥수수수염처럼 헝클어진 머리는 단정히 정리되고, 얼굴을 덮었던 지저분한 수염은 말끔히 제거되었다. 때에 절고 악취를 풍기던 넝마 같던 옷은 세련된 정장으로 교체되고 고급스러운 시계와 구두가 품격을 더 했다.
이런 일은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음침하고 범죄가 득실거리던 빈민가가 환골탈태하여 주목받는 명품 지역으로 변하기도 한다.
고층 빌딩이 숲을 이룬 런던 중심가 뱅크 지역에서 동쪽으로 걸어서 20여 분 거리에 위치한 쇼디치(Shoreditch)가 바로 그런 곳이다.
이곳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20여 년 전부터이다. 싼 집값 때문에 가난한 예술가들이 한 명 두 명 모여들면서이다.
영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알렉산더 매퀸, 파격적인 작품으로 예술계에 큰 충격을 안겨준 데미언 허스트, 설치미술가 트레이시 에민, 길거리 낙서(그라피티)를 예술로 승화시킨 뱅크시, 현대 미술사의 거대 물결을 만들어 낸 많은 영국의 젊은 예술가 (Young British Artists)들이 합류하면서 거센 불길처럼 번지는 변화에 기름을 퍼부었다.
쇼디치는 하루가 다르게 분위기가 달라졌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찾게 되면서 가게들이 속속 문을 열었다. 레스토랑, 카페, 펍, 바아, 다양한 옷 가게들, 액세서리, 공예품, 기념품, 가방, 구두 가게 등이 골목길 깊숙한 곳까지 가득가득 채워졌다.
이곳은 곳곳에 숨어있는 유명 셰프들의 레스토랑이나 맛 집들을 찾아내어 맛을 보는 즐거움이 있고, 빈티지 옷부터 최신 명품까지 쇼윈도를 통하여 유행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갤러리를 순례하듯 건물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질리도록 그라피티를 감상할 수 있다.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환영받지 못하는 낙서 그림을 이 지역 건물주들은 예술가에게 제작을 주문하기 때문이다.
뱅크시, 로아, 스틱, 벤 윌슨 등 유명한 길거리 예술가들이 건물들을 캔버스 삼아 거대한 작품들을 남겨놓은 것도 바로 그런 이유다.
쇼디치
구글의 창업 아카데미인 캠퍼스 런던이 이곳에 둥지를 틀 정도로 지금은 예술과 IT가 결합한 첨단 산업 단지로 변모하고 있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내일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몰려들어 앞다투어 창업을 하고 있다.
예술가들의 힘.
그것은 상상을 초월한 세상을 만들어 놓기도 한다.
쇼디치가 런던은 물론 세계적으로 유행을 선도하는 가장 스타일리시한 지역으로 탈바꿈시킨 것도 바로 예술가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