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뭐냐고 영국인에게 물어보면 빼놓지 않는 게 있다. 피시 앤 칩스 (Fish& Chips)다.
전반적으로 생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영국인들에게서 그런 말을 듣는 건 의외다. 음식문화가 발달하지 못한 나라라서 대표할만한 것이 없어 억지로 끼워 놓는다는 인상을 준다.
피시 앤 칩스는 말 그대로 생선과 감자튀김을 말한다. 생선은 주로 대구를 사용하는데 간이나 양념을 하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조리법도 없다. 그저 펄펄 끓는 기름에 튀겨내면 되는 것이다. 세상에 이렇게 간편한 요리법이 어디 있겠는가?
영국을 대표하는 음식이라 많은 음식점에서 취급하고 있는데, 튀겨내는 솜씨에 따라 맛의 차이가 있다. 기름에 절고 눅눅해서 돈을 주며 먹으래도 거절하고픈 집이 있는가 하면, 바삭바삭하게 튀겨 꽤 고소하고 씹히는 맛이 좋아 머리를 끄덕이며 먹을만한 집이 있다. 여러 군데서 그것을 먹어봤는데, 윔블던 역에서 2-3분 거리에 위치한 피시 바 레스토랑이 그중 제일 내 입맛에 맞았다. 그 집은 대구 외에도 가자미나 다른 생선으로도 요리했는데, 신선한 생선과 식용유를 고집해서인지 맛이 그대로 살아있었다. 입맛은 내나 남이나 대동소이한 듯, 그곳은 항상 손님들로 붐볐다. 점심 식사 때는 줄이 길게 늘어서 먹는 시간의 몇 배를 할애해야 했다.
어느 금요일 날 점심시간에 그 집을 찾았는데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쉬는 날이 없었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휴가철이 아니어서 여행을 떠났을 리도 만무했다. 장사가 안되어 간혹 문 닫는 집이 있지만 항상 손님으로 북적이던 곳이기에 그럴 리도 없는 일이었다.
머리를 갸웃거리고 있는데 출입문과 창에 A4 용지 크기의 안내문이 내걸린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다가가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모든 손님과 친구들에게!
격려의 카드와 메시지 감사하게 받았습니다.
우리를 항상 지켜봐 주신 당신들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 이 글을 남깁니다. 현재 우리 아들 조지의 건강이 악화되어 가족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분들에게 우리 아들 조지는 악성 뇌종양에 걸렸음을 알립니다.
손님들과 친구 모두 우리 조지의 건강을 되찾게 기도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저희 가족을 생각해 주시는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바술라, 로라, 아담 올림
내용을 읽으며 내 마음까지 철렁 내려앉았다. 악성 뇌종양이면 무서운 병이지만 상태가 얼마나 심각하길래 가게 문까지 굳게 걸어 잠근 것일까?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고통스러우면 언제 다시 문을 열겠다는 날자도 적어 놓지 않았을까? 별도의 게시문에는 문을 열게 되면 알려드리겠다는 내용만 적혀 있는 것으로 봐 기약할 수 없는 것 같았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가게 앞을 떠나려는 데 실내가 전과는 달라 보였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테이블이 있던 자리가 말끔히 비워져 있고, 바닥에는 온통 카드가 세워져 있었다. 수 백 장의 카드였다. 단골손님들과 친구들이 조지의 쾌유를 빌기 위해 보낸 것임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카드에는 사연이 빽빽이 차 있었다. 간단한 메시지와 이름만 쓰는 것을 선호하는 영국인들에게서 흔치 않은 일이었다. 남의 일에 나 몰라라 하지 않고 가족이나 친척처럼 마음 아파하며 쾌유를 비는 아름다운 마음을 보는 것 같았다.
나는 가게 앞을 떠나며 마음속으로 카드를 썼다. 조지가 어서 빨리 완쾌되어 가족 모두가 밝은 얼굴로 빠른 시일 내 문을 열기 바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