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특별한 여행을 묻는다면 나는 일본 오사카 여행이라고 머뭇거림 없이 답할 것 같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이 지나고 5년이 더해진 오래전 일인데도 어제일처럼 생생하다.
기분이 물먹은 화선지처럼 쳐져 있다 가도 그때를 생각하면 다시 생기가 돌며 풋풋해진다. 여행이 주는 선물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빛바랜 앨범을 들춰보듯이 머릿속에 차곡차곡 저장된 추억을 꺼내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2008년 년 2월 중순부터 2주 동안 나는 오사카 문화원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교실 크기의 세배쯤 되는 꽤 넓은 공간에 페인팅 작품 15점과, 판화 작품 15점을 내걸었다. 한쪽 벽면의 삼분의 일은 영국에서 대학원 석사과정 졸업작품으로 제작했던 비디오 작품을 프로젝터를 이용하여 보여주었다.
규모가 만만치 않은 전시임에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K. R 두 선생님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내 전시회를 할 때면 두 선생님은 자신의 일처럼 앞장서서 도와주곤 했는데, 일본 오사카 전시회에도 기꺼이 손을 내밀어 주었다. 한국에서부터 일본까지 만만치 않은 무게와 부피의 작품을 운반해 주고, 전시장에 작품을 디스플레이를 해주었다.
전시회 오픈식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교민들, 영사관과 문화원 직원들, 한국문화에 관심 있는 일본인들, 한국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는 관장님과 전시기획을 하는 기획사에서 4명이나 참석해 자리를 빛내 주었다. 지역 일간지 신문사와 주간지 기자와 인터뷰도 가졌다.
초대전이었기 때문에 작가가 전시장에 상주할 필요는 없었다. 가끔 들러 진행상황을 확인만 하면 됐기 때문에 전시기동안은 자유의 몸이었다.
그러나 고등학교 교사인 두 선생님은 새 학기 준비를 위한 일정 때문에 오사카 체류는 5박 6일로 제한적이었다. 도착한 날은 전시실에 작품을 걸고, 그다음 날은 오픈 식 때문에 이틀이 흐른 상태였다. 함께할 시간은 가는 날까지 포함하여 4일이었다.
K선생님은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일본어를 가르치기 때문에 회화에 능통했다. 게다가 학생들을 인솔하여 오사카 수학여행을 몇 차례 경험했고, 방학 때는 개인적으로 방문했던 연유로 오사카는 물론 인근에 위치한 교토, 나라까지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훤히 꿰뚫고 있었다.
K선생님의 주도하에 우리는 여행 계획을 세웠다.
하루는 나라를, 그다음 날은 교토를 다녀오고, 마지막 이틀은 오사카를 둘러보는 큰 그림이었다.
나라와 교토는 오사카에 인접한 도시여서 당일치기 여행이 가능했다.
전철을 이용하면 나라까지 40분, 교토까지는 50분이 소요되었다.
일본의 서쪽 간사이 지방에 위치한 나라는 일본의 수도였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며, 동대사(도다이지), 법륭사(호류지), 나라공원이 있다.
불교사원 단지인 동대사의 대불전은 세계 최대규모 목조 건물인데, 그 안에는 걸맞게 세게 최대의 청동 대불이 있었다. 축소 지향적인 일본인들인 줄 알았는데 이런 규모는 의외였다.
법륭사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백제의 건축양식으로 세워졌고, 법륭사 5층 탑은 백제의 탑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았으며, 백제의 귀화인이 만들었다는 목조 관음상과, 고구려의 담징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금당벽화가 보존되어 있어, 마치 우리나라의 사찰을 여행하는 것 같았다.
나라의 매력은 옛 역사와 숨결을 느끼며 한가한 분위기 속에서 힐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오래된 집을 개조한 가게들이 즐비한 운치 있는 거리는 산책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었고, 광활한 나라공원에서는 사슴들에게 먹이를 주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교토는 한국의 경주라고 불릴 만큼 일본의 전통적 감성이 가득한 곳이다.
좁은 골목을 따라 오래된 목조 상점, 찻집, 옛 전통 가옥을 만나볼 수 있다. 골목에 걷다 보면 과거로 되돌아간 것 같은 착각이 들정도다.
교토는 게이샤의 중심지였던 만큼 지금도 거리를 오가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전통 비단 기모노를 입고, 채 머리를 올리고, 하얀 버선에 나무로 만든 게다를 신은 하얀 분 칠을 한 게이샤들은 신비롭기까지 했다.
교토에는 훌륭한 사찰이 많은데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전통의 향기가 은은히 풍긴다.
금각사(킨카쿠지)는 교토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명소 중 한 곳이다. 황금(도금) 누각의 사찰이라 금각사라 불리는데, 독특한 건축 양식, 주위를 둘러 펼쳐진 호수, 정통 일본 스타일의 정원이 서로 어우러져 있다
잔잔한 호수에 황금빛 누각이 데칼코마니로 비치는 모습은 환상적이어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일본의 예스러움을 그대로 간직한 청수사(기요미즈테라)는 탁 트인 전망이 좋아, 눈을 정화시켜 주었고, 교토 북동쪽에 위치한 은각사(긴카쿠지)는 정원과 연못, 울창한 숲 사이로 조성한 산책로가 인상적이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곳에 머물렀다.
오사카의 최고 번화가는 도톤보리 하천을 중심으로 신사이바시 역과 닛뽄바시 역 부근, 간사이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난카이 전철의 종착지인 난바역 지역이다.
우리 일행이 투숙한 호텔은 닛뽄바시 역 주위에 있었기 때문에 도톤보리는 지척이었다.
거대한 대게(조형물)가 움직이는 거리 입구에서부터 시작하는 도톤보리는 그야말로 먹거리, 쇼핑거리, 즐길거리의 천국이었다.
우리는 매일 저녁마다 이곳에서 음식의 향연을 즐겼다.
금룡라면 가게에서 닭수프 비슷한 라면을 먹고, 집 앞에 버드나무가 서있는 이마이 우동 집에서 우동을 먹기도 했다. 이 집의 명물은 유부 (키쯔네) 우동인데, 유부를 씹었을 때 달콤한 첫맛과 감칠맛 나는 국물의 조화가 입안이 깜짝 놀랄 정도였다. 우동이 나왔을 때 그 흔한 노란 단무지 한쪽도 없어서 인색하다고 머리를 좌우로 저었는데 이유가 있었다. 우동의 순수한 맛만 즐기라는 의도였다.
겐로쿠 회전스시 집에서는 70여 가지가 제공되는데 이것저것 먹다 보면 올챙이 배가 되었다. 일본식 불고기 전문집을 찾기도 했고, 돈카스로 이름난 집을 찾기도 했다.
또 한 곳 잊지 못할 음식점이 있다. 도톤보리에서 난바 쪽으로 연결되는 도로에 대한민국 영사관과 문화원(지금은 이전했음)이 있고, 뒷골목으로 들어서면 단아한 일본 전통 가옥인 오므라이스로 유명한 북극성(홋쿄쿠세이)이 있다. 1922년 개업한 이 집은 오므라이스를 처음으로 개발한 원조집이다. 치킨, 버섯, 소고기, 돼지고기, 햄, 게, 새우의 단품 오므라이스가 있고, 새우튀김과 미소 수프(된장국)가 함께 나오는 세트 메뉴가 있다.
제일 저렴한 버섯, 닭고기 오므라이스도 입에서 살살 녹는다. 집안 중앙에 아담하게 조성된 정원이 운치를 더해주었다.
밤이 되면 도톤보리 거리는 갖가지 길거리 음식 노점상들이 불야성을 이룬다. 저녁을 목이 차도록 먹었어도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돌아다니다 보면 길거리 음식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다. 어느날 밤에는 타코야끼를 샀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볼 수 있지만, 그때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모양은 우리나라의 호두과자와 똑같이 생겼는데 그 안에 문어고기가 들어있다고 했다.
하나를 통째로 입에 넣고 덥석 깨물었다. 순간 나는 발작을 일으킨 사람처럼 몸을 비비 꼬며 그 자리에서 펄쩍펄쩍 뛰었다. 얼마나 뜨거운지 입 몸이 익어서 이가 쏟아질 것 같았다.
두 선생님이 5박 6일의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전시가 끝나고 작품을 철거하려면 나는 열흘을 혼자서 보내야 했다. 많은 나라들을 홀로 여행한 경험이 여러차례 있었지만, 두 선생님과는 죽이 척척 맞는 사이라 서운함과 허전함을 떨쳐 버리기가 쉽지 않았다.
기대어 섰던 버팀목이 폭삭 주저앉은 것 같았다.
K 선생님의 뒤만 쫓아다니면 모든 게 해결됐는데 이젠 자력으로 꾸려 나가야 했다.
나 혼자서 오사카의 대표하는 오사카성 전망대에 오르기도 했고, 본관 내부에 있는 박물관에서 검, 갑옷, 초상화, 칠기, 다색 목판화 등 많은 유물을 감상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수족관 중 하나인 가이유칸에서 고래, 상어, 바다사자와 펭귄, 해파리, 해달, 거북이 등과 말없는 대화를 나누기도 했고,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인 사천왕사 (시텐노지)에서 잘 다듬어진 나무와 구불구불한 길이 있는 일본식 정원을 거닐기도 했다.
우메다 빌딩 쌍둥이 타워 사이에 자리해 초현대적인 디자인을 자랑하는 공중정원 전망대에서는 도시 전경을 넋 놓고 바라보기도 했다.
해가 저물고 화려한 불빛이 낮보다 더 밝게 되살아나고, 구름인파가 거리를 흐르는 시간이면, 예외 없이 도톤보리 겐로쿠 회전 스시 집을 찾았다. 원래 좋아하는 음식인데 이 집은 특별했으며 종류가 많아 갈 때마다 새로운 맛을 경험할 수 있었다. 더욱이나 값이 저렴했다. 당시에 엔화의 가치가 낮아 환율이 800원이어서, 생맥주 한잔에 스시로 과식을 해도 만원 안팎이었다.
오사카 여행이 나에게 특별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우선 오사카 문화원에서 개인전을 가졌다는 것,
실과 바늘처럼 지내는 두 선생님과 5박 6일을 꿈같은 여행을 즐겼다는 것,
K선생님이 완벽한 나만의 가이드가 되어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고 관광지를 안내해 주어, 나는 손 안 대고 코를 푸는 편안한 여행이었다는 것,
일본의 고도에서 한국의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보며 감회가 새로웠던 것,
먹거리의 천국에서 개척자처럼 영역을 넓히며 미식을 즐긴 것,
전시한 작품이 적잖이 팔려, 체류, 여행 경비를 충당하고도 몫 돈을 손에 쥔 것.....
전시회가 막을 내리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 나는 아쉬움으로 머리를 길게 빼고 뒤돌아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