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외곽에 자리 잡은 다산쯔 798 예술구를 찾는 날은 유난히 가슴이 설렌다.
뉴욕과 런던에서 7년 동안 살면서 숱하게 드나들었던 뉴욕 현대미술관(MOMA), 구겐하임 미술관, 휘트니 미술관, 그리고 런던의 테이트 모던이나 테이트 브리튼을 방문할 때와는 다른 설렘이다. 뉴욕과 런던의 미술관들은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들이 망라되어 있지만, 다산쯔 798 예술구에서는 세계적인 위대한 예술가들의 작품은 물론 현재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있는 작가들, 신인 작가들의 작품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세계 많은 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혀 알지 못했던 참신한 작가들의 작품도 볼 수 있다. 중국 현대미술의 4대 천왕이라 불리는 장 샤오강, 팡리쥔, 왕광이, 위에 민준의 작품은 물론 미래 주인공인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다산쯔 798 예술구는 세계에서 권위 있는 미국의 일간지와 주간지에서 가장 전망 있는 미래의 예술 도시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매년 국제 예술제가 열려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이곳에는 수많은 갤러리 이외에 미술 관련 상품을 파는 가게, 화가들의 작업실, 사진 스튜디오, 패션 가게, 기념품 가게, 카페, 음식점들이 자리 잡고 있다.
거리에는 중국인 보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더 많이 눈에 띈다. 베이징을 여행하는 외국인들이 거쳐가는 명소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다산쯔 798 예술구가 들어서기 전 이곳은 공장지대였다. 1957년 첫 가동된 이래 8만 명의 노동자들이 군수품을 만들던 곳이다. 원자폭탄과 첫 인공위성 부품이 생산된 곳이기도 하다.
냉전시대가 막을 내리고, 1980년대 말부터 정부 지원이 중단되면서 대부분의 공장이 가동을 멈추었고 흉물스러운 유령의 도시로 전락되었다.
임대료가 싼 이곳을 찾아 작가들이 속속 입주하기 시작하였으며, 갤러리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중국 정부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지저분한 이 지역을 폐쇄하려고 하였으나, 그동안 몰려든 예술가와 갤러리, 관련 업체들이 상당수 터를 잡고 있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예술의 거리로 정하고 본격적으로 정비 사업을 강행하였다.
면적이 약 60여만 제곱미터나 되는 이곳의 입구에 들어서면 붉은 벽돌의 거대한 건물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잘 조성된 도로를 따라 야외 조각 작품들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데, 그 크기에 압도당한다.
인체 조각상들은 사실적인 작품보다는 해학적으로 표현한 것들이 많다. 익살스러운 미소를 짓는 동자승, 초고도 비만의 남성 누드 전신상들, 천진스럽게 웃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 하늘을 향해 입을 크게 벌려 함성을 지르고 있는 군상, 비너스의 모습을 흉내 낸 거대한 조형물, 철창에 갇혀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려 주먹을 불끈 쥐고 포효하는 근육질의 맨몸의 사내…….
참신한 아이디어와 실험적인 기법으로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예술가들의 능력이 놀랍기만 하다. 어떻게 돌, 금속(철, 동), 합성수지 같은 재료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익살스럽게 표현할 수 있을까?
빨강은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색이며, 중국인들이 액운을 막고 행운을 가져온다고 믿어 선호하는 색이다. 그래서인지 빨간색의 인체 조각 작품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인체 조각상 이외에 거대한 고인돌을 연상시키는 돌을 세워놓은 추상적인 조형물도 눈에 띄고, 토끼나 말, 공룡, 물고기, 괴기 영화에나 나올 듯한 가공의 동물들을 만든 작품들이 시선을 끈다.
거리를 걸으면서 조각작품 감상과 함께 벽에 그려진 다양한 그라피티를 구경하는 것도 쏠쏠한 재미를 더해준다.
이곳엔 갤러리들이 많다. 400여 개라고 한다. 절반은 외국계 화랑들이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를 비롯하여 많은 나라들의 크고 작은 갤러리들이 진출해 있다.
우리나라 갤러리들은 2008년에는 10여 개나 있었고, 2013년 말에도 몇 곳이 철수하였지만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전혀 눈에 띄지가 않았다. 영세한 갤러리들이 진출했다가 외국의 자금력과 조직력 있는 갤러리들과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철수한 것은 아닐까?.
이곳에는 북한의 만수대 예술 창작단 갤러리가 있다. 초창기에 문을 열었는데 지금도 건재하게 운영되고 있다. 나는 가보지 않았지만 공예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북한의 갤러리가 한 군데 더 있다고 한다.
만수대 예술 창작단 갤러리 규모는 그리 큰 편은 아니지만, 폐쇄된 사회의 예술가들 작품이 궁금하여서인지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작품들은 유화과 한국화로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는데 한결같이 사실적인 작품들이다. 그들의 정교한 묘사력은 인정하지만, 창조성이나 독창성이 부족한 점은 좀 아쉬웠다.
한국의 문화와 예술은 세계인들로부터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K 팝이나, 영화, 드라마에 열광하고 있다. 그런 것에 비하면 미술은 너무 소외되어 있다.
중국은 현대미술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고, 미국, 영국과 함께 세계 3대 미술품 시장으로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다산쯔 798 예술구에는 많은 나라의 갤러리들이 자기 나라 작가들을 알리는데 공을 들이고 있고, 내로라하는 화상들과 컬렉터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러한 곳에 우리나라 작가들의 작품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제대로 된 미술관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곳이 많은 갤러리들은 공장시설을 그대로 활용하고 있다. 각종 배관과 난방 파이프 등이 노출되어 있으며, 거칠게 마무리된 천정을 그대로 둔 곳이 많다.
공간은 4-9m의 높은 천장과 넓은 벽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엄청난 크기의 조각 작품들과, 500호 1000호, 그 이상의 회화 작품들을 전시할 수 있다.
젊은 작가들의 참여가 많은 곳답게 설치, 비디오, 기발한 아이디어와 상상력이 돋보이는 실험적인 작품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아름다운 꽃 길이라도 오래 걷다 보면 몸이 피곤해지듯이 예술작품 감상도 마찬가지다. 눈은 계속 새로운 작품을 요구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고 발바닥도 아프다. 가끔씩 휴식을 취하며 몸을 충전해야 한다.
이럴 때 찾는 곳이 음식점과 카페이다.
뉴욕이나 런던의 미술관 안에도 카페와 음식점이 있지만 항상 사람들로 붐비는 데다 메뉴도 제한적이며 값도 만만치 않아 이용에 불만이 많았다.
이곳은 카페와 음식점들이 곳곳에 있기 때문에 입맛에 맞는 음식을 비싸지 않은 가격에 먹을 수 있으며, 세련된 실내장식의 카페에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날씨가 춥지 않을 때에는 노상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오가는 행인들을 보는 것도 흥미롭다.
다산쯔 798 예술구는 뉴욕의 소호와 같은 역사(형성 과정)를 가지고 있다.
1900년 초부터 1960년까지 소호는 섬유공장과 창고가 들어찬 공업 지역이었다. 그러나 그것들이 외곽으로 이전하면서 소호는 삭막한 우범지역으로 변한다.
가난한 예술가들이 임대료가 저렴한 소호에 철새처럼 날아들어 둥지를 틀기 시작하면서 예술에 관련된 가게들이 속속 들어섰다.
창고나 공장을 개조해 갤러리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예술의 메카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의 소호는 많이 달라졌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임대료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많은 갤러리들이 싼 지역으로 떠났고, 예술혼을 불태우던 작가들도 찾아보기 힘들다.
갤러리였던 곳은 디자이너 부티크와 고급 명품 브랜드 상품(보석, 가방, 구두, 화장품, 선글라스)을 파는 가게들이 차지하고 있고, 주위엔 고급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진을 치고 있다.
이제 소호는 예술의 메카이기보다는 쇼핑의 명소다.
다산쯔 798 예술구도 임대료가 상승하여 가난한 예술가들은 견디지 못하고 떠나고 있다. 문을 닫는 갤러리들도 있다. 반면에 패션 가게, 카페, 음식점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다산쯔 798 예술구도 뉴욕 소호와 같은 길을 걷지는 않을까?
앞으로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