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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준 May 22. 2024

무라카미 다카시

해피 바이러스






Murakami Takashi, 꽃의 필드 , 2019 알루미늄 프레임에 장착된 캔버스에 아크릴 및 백금 잎, 41.7 × 33.5cm, 2019, Kaikai Kiki Co.





부모의 손에 이끌려 미술관을 찾은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 벌레 씹은 것 같다.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대가의 작품이라도 아이들에겐 관심 밖이다.

작품 몇 점을 건성으로 보다가 이내 싫증을 내며 입을 내밀고 부모의 뒤를 따르거나, 아예 의자나 벤치가 앉아서 스마트 폰을 꺼내어 게임을 하기 시작한다.

만약 그런 아이들이 무라카미 다카시의 전시를 본다면 어떨까?

와우!

대박!

멋있다!

이런 말을 토해내며 눈빛이 달라질 것이다.


무라카미 다카시의 작품은 아이 같은 감성으로 그려낸 화려한 색깔의 꽃들과 만화에 등장하는 귀여운 캐릭터들이 주를 이룬다.

미키 마우스, 도라에몽(1969년 일본에서 탄생한 캐릭터, 만화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세계적인 사랑을 받았고, 지금까지도 받고 있다), 그리고 일본 전통 신화에 나오는 수호신 등이다.


무라카미 다카시가 창조해 낸 꽃들은 중앙에 둥근 원으로 사람 얼굴을 그리고 입을 크게 벌려 환하게 웃는 모습이다. 입이 얼굴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서양에서는 Happy Flower, Murakami Flower 등으로 불리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해바라기, 무지개 꽃, 스마일 꽃으로 불린다.

그가 표현한 만화의 캐릭터 역시 환하게 웃고 있다. 심지어는 근엄해야 할 수호신마저도 목젖이 보일 정도로 천진스럽게 활짝 웃고 있다.

그가 표현한 꽃이나 만화 캐릭터는 초등학교 학생들이 충분히 그려낼 수 있는 모습들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주제에 아이들 수준의 표현이니 시선과 마음을 작품에 빼앗겨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Murakami Takashi, 미스 코코, 피규어 작품, 1997





그렇다고 무라카미 다카시의 작품이 아이들만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어른들도 아이들 못지않게 열광한다.

2000년대 초에 런던 하이드 파크에 있는 서펜타인 갤러리에서 그의 특별전시가 있었다.

전시장 앞에는 입장하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치고 있었고, 전시장 안에도 동선이 방해받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들어차 있었다.

전시장에 작품들을 둘러보며 관람객들의 입에서는 미소와 함께 끊임없이 와우 하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가 만들어낸 꽃들과 다양한 만화 캐릭터들, 그리고 사람크기의 피규어가 전시된 공간은 숨 막히게 화려한 동화 속이었고,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환상의 세계였다.


일본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현대 문학가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있다면, 현대미술에는 무라카미 다케시가 있다.

일본 팝아트를 대표하는 사람,
아시아의 앤디 워홀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사람,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과 전통회화를 결합하여 슈퍼플랫 (Super flat)이라는 포스트 모더니즘을 주도한 사람.

피규어 (유명인사, 혹은 가상의 인물 즉 만화나 애니메이션, 영화, 게임 등의 캐릭터를 플라스틱이나 금속으로 만든 것)를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킨 사람,

세계적인 유명작가의 반열에 우뚝 선 사람,





 Murakami Takashi, 도라에몽과 나 ,  알루미늄 프레임에 장착된 캔버스에 아크릴 및 백금 잎, 120 × 120cm, 2019  Kaikai Kiki Co.,





무라카미 다카시는 도쿄 예술대학에서 학사, 석사, 박사 과정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일본화를 공부했다.

초기에 그는 일본 전통화를 많이 그렸지만, 오타쿠 문화에 심취하여 그것을 순수예술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스스로를 오타쿠 예술가로 지칭할 정도였다.

오타쿠란 특정 대상에 집착적 관심을 갖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일본어로 주로 만화나 애니메이션 팬들을 말한다.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라는 영화 기생충 속 명대사처럼, 무라카미 다카시가 오타쿠 문화를 자신의 작품에 도입한 것은 철저한 계산에 따른 것 같다.

순수예술보다 더 큰 시장규모를 자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단 상업성이 보장된다는 것을 확신했을 것이고, 1960년대 팝아트 예술가인 로이 리히텐슈타인이 만화를 활용한 작품들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1980년대부터 네오팝(Neo-pop)의 대표작가인 제프 쿤스가 대중문화를 주제로 한 지극히 평범한 대상을 매끈한 표면의 스테인리스 스텔로 풍선 인형 같은 작품을 제작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무라카미 다카시는 일본의 오타쿠 문화야 말로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일본의 고유한 자산이라고 생각했고, 성공을 확신했을 것이다.

 

그는 사업수완에도 특출나다.  카이카이 키키(Kaikai Kiki Co, Ltd)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자신이 만든 캐릭터를 이용한 가방, 문구류, 인형, 머리핀 등의 다양한 아트 상품을 다량 제작하여 판매하고 있다.  

이 회사는 마치 앤디워홀이 팩토리(Factory)를 설립하여 고용한  테크니션이나 조수들에 의해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처럼 작품을 제작하여 저렴한 값에 판매했던 시스템과 같았고, 키스 해링이 뉴욕 소호에 팝 숍(Pop Shop)을 열고, 자신이 창조한 이미지로 티셔츠, 장난감, 포스터 배지 등을 상품화하여 판매하는 것과 같은 방법이었다.

본인이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앤디 워홀이나 키스 해링을 벤치마킹 한 것은 아니었을까?





 Murakami Takashi,  순백색 복장의 도브 (핑크 & 블루), Acrylic and gold leaf on canvas mounted on aluminium frame, 300 x 300 cm, 2013, Kaikai Kiki, Ltd.,





무라키미 다케시는 샤넬, 에르메스와 3대 럭셔리 명품 브랜드인 프랑스의 루이비통과 협업을 하기도 했다. 그가 선보인 오타쿠 스타일의 밝고 화려한 색감과 귀여운 캐릭터는 보수적이고 무거운 느낌의 루이비통의 명품 이미지를 한결 가볍게 만들었고 많은 고객들로부터 큰 인기를 누렸다.


무라카미 다케시는 키이카이 키키 직원들과 함께 세계를 자기 집 드나들듯이 하며 자신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리움 미술관, 동대문 디지털 플라자 등에서 성황리에 전시되었고, 23년도에는 부산 시립미술관에서 그의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그의 작품을 보기 위해서 전국에서 몰려든 관람객들이 끊이질 않았다. 평일에는 평균 2500명, 주말에는 4000명을 기록할 정도였다. 미술관 측에서는 전시 기간을 1개월이나 연장해야 했다.

 

그의 작품들은 세계의 유명한 옥션을 통하여 활발하게 판매되고 있다. 지금까지 가장 비싸게 팔린 작품은

2008년 소더비 뉴욕 경매에서 마이 론섬 카우보이라는 남성 누드 피규어 가 약 170억 원에 팔렸다. 그 후에 그의 다른 피규어들도 4-50억에 계속 팔리고 있다.

그의 회화작품인 미키 마우스를 닮은 귀여운 캐릭터의 순백색 복장의 도브는 40억 원에 달했으며, 그 외의 많은 작품들이 높은 가격에 낙찰되고 있다.

 

동서양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현란한 컬러의 활짝 웃고 있는 꽃과 귀여운 캐릭터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아무리 언짢은 일이 있어도 해피 바이러스에 감염된 듯이 금방 미소가 지어지고 마음이 밝아지기 때문일 것이다.






   Murakami Takashi, Flower Ball,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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