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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준 Dec 18. 2024

만복이




만복이가 죽었다.


밥을 먹지 않고 계속 구토를 해서 아침 10시에 병원에 입원시켰는데, 밤 아홉시경 병원에서 죽었다는 통보가 왔다. 입원한 지 11시간 만에 명을 달리 한 것이다.


입원을 시키면서 하루 이틀이 지나면 회복이 되겠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강한 전류에 감전이 된 듯 찌릿찌릿 몸 전체로 충격을 느꼈다.


불쌍해, 불쌍해, 불쌍해서 어쩌누……. 내가 아는 말의 전부인양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만복이는 아직 어린 티가 가시지 않은 3 – 4개월로 추정되는 길냥이 었다. 교통사고를 당했는지, 아니면 누군가가 물리적인 힘으로 학대했는지 뒷다리 한쪽의 뼈가 완전히 망가져 질질 끌고 다녔다. 여러 사람의 노력으로 포획하여 병원에서 한쪽 다리를 절단하고 봉합하는 수술을 받았다.  


길냥이로 힘들게 살아왔고, 사고를 당하여 다리 한쪽을 잃었고, 치료를 받느라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고….  불행했던 과거를 모두 잊어버리고 앞으로는 행복한 일만 가득하라는 의미에서 만복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만복이를 집으로 데려오기 전에 비어 있던 방에 난방을 가동하고, 사료와 밥그릇, 물그릇, 고양이가 대소변을 해결할 화장실과 모래, 잠을 잘 수 있는 집에는 포근한 담요도 깔아 놓았고, 장난감도 준비했다.


동물 병원에서 이동장으로 데려와 조심스레 문을 여는 순간, 만복이는 비호처럼 빠른 속도로 달아나 침대 밑으로 숨어버렸다. 뒷다리 한쪽이 없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민첩함이었다. 


마음이 안정되면 스스로 나와서 사료도 먹고, 물도 마시고, 포근한 담요가 깔린 집에서 잠도 자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겠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몇 시간 간격으로 방문을 빼꼼히 열고 확인해 보면 만복이의 모습은 한 번도 보이지 않았다. 사료를 조금 먹고, 화장실에 볼일을 보고 모래를 덮어놓았을 뿐 그 이외의 물건들은 건드린 흔적도 없었다. 간식도 입에 대지 않은 채 그대로였다. 침대 밑을 확인해 보면 한쪽 모서리에 바싹 몸을 숨긴 채 얼굴만 내놓고 불안한 눈을 하고 있거나, 어느 때는 날카로운 이를 내놓고 하악질을 하기도 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몸을 숨기는 고양이는 며칠 만에 밖으로 나오기도 하고, 몇 주 내지는 몇 달 동안을 숨어 지내기도 한다고 했다. 장기전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문제가 생긴 것은 일주일이 지난 후였다. 아침에 만복이가 있는 방에 들어가 보니 사료와 물은 입에 대지도 않은 채 그대로였고,  침대 밑과 화장실 주위 바닥 여기저기에 구토를 해 놓은 흔적이 있었다. 먹은 게 없어서인지 노란 액체뿐이었다.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될 것 같아 만복이를 붙잡아 병원에 데려갔다. 수의사는 탈수가 심해서 입원시켜야 한다고 했다.


만복이가 갑자기 소화기관이 탈이나 짧은 생을 마감한 원인이 무엇일까? 사람에 대한 트라우마가 심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스트레스는 사람에게 만병에 근원이며, 심할 경우에는 위와 창자에 구멍까지 뚫는다고 하는데 만복이도 그랬던 건 아닐까? 병원에서 다리를 치료한 후 곧장 포획했던 장소에 풀어주었으면 어땠을까? 병원에서 집으로 데려오는 동안 이동장 안에서 한 시간 가까이 울음을 그치지 않았는데 자신이 살던 곳에 풀어달라는 간절한 애원은 아니었을까?


3년 전, 집에서 멀지 않은 한산한 도로에서 차에 치인 길냥이를 목격한 적이 있었다. 도로를 횡단하려고 갑자기 뛰어든 길냥이를 운전자가 발견하지 못해 발생했으리라. 사고를 당하는 순간을 직접 보지 못해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몸의 일부분이 다친 것 같았다. 길냥이는 고통을 억제하지 못하고 수직으로 자신의 몸길이 보다 높게 두 번이나 점프했다. 난 고양이가 그렇게 높게 뛰어오르는 것은 그때 처음 보았다. 아마도 마지막 안간힘이었으리라. 그런 후 고양이는 도로 가장자리로 비실거리며 걸어가더니 인도와 맞닿는 부분에서 옆으로 힘없이 쓰러졌다. 그리고는 크게 숨을 몇 번 몰아쉬고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난 그 장면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고, 동시에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이 내 몸을 짓눌러 한참 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며칠 동안을 잠을 설쳤고, 입맛까지 잃었다.  3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상황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나와 아무 상관없는 생면부지의 고양이가 로드킬을 당하는 것을 보고 오랫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만복이와는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인연을 가지고 있어 아픔의 수위는 높다.


오랫동안 만복이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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