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이다. 고향에는 지금쯤 갖가지 나무들이 피워낸 꽃과 야생화들이 산과 들을 덮고 있을게다. 과수원에는 복숭아, 사과, 배꽃이 나무를 온통 덮고 있고, 길섶을 따라 민들레, 제비꽃이 앞다투어 피어나고, 뒷산 양지바른 곳엔 진달래가 불을 토하듯이 꽃봉오리를 피우고 있을게다. 보리밭은 따스한 햇살에 푸름이 짖어지고 이삭을 패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겠지.
남쪽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을 맞으며 마을 길을 걸으면 얼마나 상쾌할까? 옹달샘 맑은 물에 얼굴을 뽀드득 씻은 것 같은 청량감을 느낄 것 같다.
참 이상도 하다. 고향 떠난 지가 까마득한 옛날, 채 철들기 전인데 시도 때도 없이 나를 휘어잡고 흔드는 것은 무슨 조화 속일까? 나이가 들면 모든 기억들은 김이 서린 창밖을 바라보는 것처럼 뿌옇게 변하는데 왜 고향 생각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또렷해지는 것일까?
고향은 끝없는 이야기의 원천이다. 풀어도 끝이 없는 실타래 같다. 다양한 고향의 이야기들이 문득문득 머릿속에서 헤집고 나와 아련한 동심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사월, 사월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용천뱅이 (나환자)에 대한 추억이다.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몸은 삼 월이 되면서 풀리기 시작하여 사월이면 최고의 컨디션을 회복하는 시기다. 몸도 마음도 하늘에 닿을 것 같은 기분으로 산으로 들로 마냥 헤매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물결치는 보리밭 고랑을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휘젓고 다니고 싶고, 산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진달래 무더기 속에서 노루처럼 뛰어놀고 싶은 시기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황금 같은 이때가 되면 동네 형들이 모여 나누는 이야기는 한겨울보다 몸을 더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고, 감히 자유로이 밖을 나갈 수 없게 만들었다.
"용천 뱅이들이 나타났단다."
"또? 왜 봄만 되면 어김없이 나타난 다냐."
"병신, 그럼 추운 겨울에 나타나냐 얼어 죽을라고."
"죽었던 것 같던 나무에서 새순이 나고 꽃이 피고 하는 걸 보면 용천뱅이라고 살고 싶은 욕심이 안 생기겠냐?"
"야 꼬맹이들아 조심해라. 용천 뱅이들이 진달래꽃 더미 뒤나 보리밭에 숨어 있으니까."
"왜 숨어있어? "
"왜는…… 너희들만 한 꼬마들 잡아다 새빨간 간을 꺼내 먹으려고 그러지. 그러면 문둥병이 씻은 듯 가신 듯 낫는대."
어린 시절 그 말은 충격이었고 공포 그 자체였다. 밤에 자다가 가위눌리기까지 했고, 혼자 집에 남아있게 되면 대문을 걸어 잠그고, 대청 문도 걸어 잠그고, 방 안에서 벌벌 떨고 있어야 했다. 어쩌다 혼자서 산길을 걷게 된다던지 보리밭 길을 걷게 되면 가슴이 멎을 것처럼 콩닥거리고 맥박이 빨라지곤 했다. 한참 동안 숨 고르기를 한 후에야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면서 정신없이 달렸었다. 특히나 봄비가 추적추적 내린다던지 안개가 산과 마을을 휘휘 감고 있는 날은 극도의 공포심으로 밖에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정말 나환자는 어린아이를 잡아 간을 꺼내 먹었을까?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동네 어르신네들이나 부모님, 심지어 초등학교 선생님들까지도 어린 내 또래의 아이들에게, 산길이나 호젓한 길을 절대로 혼자 다녀선 안 된다고 신신당부한 것을 보면 허황된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다. 아마도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나환자가 병을 고치려고 그런 극단적인 행동을 한 이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건 고사목에서 꽃을 피우는 것만큼이나 일반적인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런 일이 어디에서나 발생하는 것처럼 받아들였다는 것은 그만큼 어리고 순진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고향과 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줄이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마치 내가 줄에 매달린 연이라면 고향은 줄을 조정하는 얼레 같다. 내가 자유롭게 날도록 줄을 맘껏 풀어주었다가도 어느 순간 잡아당겨 고향으로 잡아 끈다
고향이 또 얼레에 실을 감고 있나 보다. 줄에 매달린 나는 또 고향을 향해 조금씩 끌려가고 있다.
이번엔 화사한 햇살을 머리에 이고 바람에 물결 이는 보리밭 길도 걷고 진달래로 뒤덮은 산을 온종일 헤집고 다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