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토요일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 하늘을 나는 것처럼 가볍고 상쾌함을 느꼈다. 일어나기 직전에 꾸었던 꿈 때문이었다. 분명히 나는 청와대 안에 있었다. 무슨 연유로 가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TV에서 본 적이 있는 한 회의실이었다. 벽에 걸린 젊은 여류작가의 화려한 추상 작품이 그걸 증명해 주고 있었다. 드디어 전직 대통령이 들어섰고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나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했다. 그는 나를 가볍게 끌어안으며 어깨를 몇 번 다독여 주기까지 했다.
언젠가 로또 1등 당첨된 사람이 대통령과 악수하는 꿈을 꾸고 행운을 잡은 거라 했었다. 그 후로 나도 그런 꿈을 간절히 바라 왔는데 드디어 성사된 것이다. 덤으로 포옹까지 하고 등까지 다독여 주었으니 나에겐 더 큰 행운을 가져다줄게 확실했다.
복권을 샀다. 그것도 두 장을..... 그동안 나는 복권 사는 것에 인색했다. 오천 원짜리 한 장이라도 그 돈으로 커피를 마신다던 지, 아니면 구걸하는 사람의 깡통 속에 넣어주는 게 한결 실속 있다고 생각해 오던 터였다. 그런데 그날은 거금 만 원을 지불하고도 아깝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제 만 원이 엄청난 부를 안겨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일등에 당첨되면 이 어마어마한 돈을 어디에 쓸까? 그래 미리미리 계획을 세우자. 음..... 우선 원 없이 여행을 즐기는 거야,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발바닥이 근질거렸잖아. 가고 싶은 곳이 많지만 7년이나 살았던 뉴욕과 런던부터 시작하자. 그때는 가난한 유학생이라 문화생활도 제대로 못하고 찌질하게 살았지만 이번에 가면 그때를 보상받기 위해서라도 폼 나게 즐겨야지. 우선 숙소부터 최고급으로 잡아야지. 뉴욕에선 센트럴 파크, 카네기 홀, 명품 가게들이 가까이 있는 지리적으로도 완벽한 곳에 있는 호텔을 선택할 거야. 안락한 침대에서 실컷 늦잠을 즐기고 식사는 최고급 메뉴로 룸서비스를 받아야지. 멋진 마천루의 스카이라인과 가까이 보이는 센트럴 파크를 바라보면서 커피도 한잔해야지. 꽃처럼 피어난 화려한 야경을 바라보면서 하루를 마감하며 와인 한잔하는 것도 멋질 거야. 낮에는 미술관과 갤러리를 순례하고. 이동할 때는 리무진을 이용해야지. 밤에는 뮤지컬과 오페라를 질리도록 보는 거야. 그것도 로열석 발코니에 앉아서.
런던에서는 사보이 호텔이 좋겠어. 물론 현대적이고 규모가 큰 럭셔리 호텔들이 많지만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호텔에서 묵는 것 멋있잖아. 고든 램지가 운영하는 멋진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즐기고, 헤롯 백화점에서 쇼핑을 맘껏 해야지. 코크 스트리트에 있는 멋진 갤러리에서 내가 좋아하는 팝 아트 작가들의 작품도 몇 점 사야지.
야 이거 너무 근사한데. 가만, 근데 이건 너무 호사다. 이렇게 흥청망청 쓰다간 얼마 안 가서 쪽박 차게 될 거야. 그럼 어떡한다? 그래 계획을 처음부터 다시 세우자. 내가 좋아하는 이태리로 날아가자. 렌터카로 전역을 훑는 거야. 풍광 좋은 곳에 짐을 풀고 즐기다가 질리면 다른 곳을 향해 떠나는 거야. 3개월이든 6개월이든 아니 그 이상도 괜찮아. 호텔은 특급이 아니어도 좋아. 별 두 개나 세 개짜리도 괜찮아. 비싼 음식 먹을 필요도 없지. 길거리에서 파는 피자도 환상적인 맛인데.
아 벌써 당첨자를 발표하는 시간이 다가왔네. 시간이 어디로 날아간 거야.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이 이렇게 시간이 빨리 흐르고 행복할 줄은 몰랐네. 자 이제 복권을 펼쳐놓고 숫자를 하나하나 체크하는 거야. 발표 5초 전이네. 4초, 3초, 2초, 1초, 드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