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는 어디까지 이어져야 하는가
차가 끝나는 순간은 언제일까.
찻상을 물리는 때일까?
아니면 어떤 이의 말처럼, 의식이 이어지는 모든 시간 속에서 차는 끝나지 않는 것일까.
정의하기 쉽지 않다.
다만 확실한 것은, 찻자리를 떠난다고 해서
차가 곧장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차의 시작이 찻상 앞이 아니듯,
차의 끝 또한 행다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렇다고 모든 순간 차를 붙들고 살아갈 수는 없다.
차가 슬그머니 마음 한켠으로 물러나도 괜찮은 때
그 경계를 아는 일 또한 중요하다.
초의선사(草衣禪師)*께서는 중정(中正)*을 말씀하셨다.
부족하지도 과하지도 않은 상태.
차의 시작을 서두르지 않는 것처럼
차의 끝 역시 밀어내지 않아야 한다.
머물만큼 머물고, 물러날 때 물러나는 일.
모두가 차의 일부일 것이다.
차를 다 내고 찻상을 물렸다고 끝난 것은 아니다.
남은 찻잎과 다기,
공간을 구성하던 요소들을 정리하는 과정이 남아 있다.
엽저(葉底)*를 정리하고,
다구를 씻고 닦고,
다시 다음 찻자리를 위해 자리를 비워두는 일.
이 조용한 동작들 속에서
차는 마지막 숨을 고른다.
다구를 씻고 찻자리를 정리하는 동안
우리는 종종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그 과정은 마치
'마음의 때밀기'와 같다.
일상 속에서 켜켜이 쌓인 감정과 피로를
물과 손으로 함께 씻어내는 것이다.
차의 시작을 앞당기는 것만큼,
차의 끝까지 마음을 다하는 일도 중요하다.
차생활은 이때 비로소
취미를 넘어 수양의 영역으로 발을 디딘다.
부담스러운 제안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만큼 마음공부가 절실했던 시대는 없었다.
차는 끝날 때까지 차다.
그리고 그 끝 또한,
우리에게 줄 가르침이 충분하다.
*초의선사:조선 후기, 명맥을 잃어가는 한국 차문화를 부흥시킨 선승. 다산 정약용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도 유명하다.
*중정:극단으로 치우치지 않은 마음. 초의선사의 저서에 나오는 개념으로, 한국 다도의 핵심 중 하나이다.
*엽저:잎차를 우린 후 남은 찌꺼기(의미와는 별개로 '찌꺼기'라는 단어의 뉘앙스가 부적절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