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머물고 싶은 순간의 향

by 젬마


따듯한 물로 샤워를 마치고, 잠자리에 누우니 부드러운 이불의 감촉에 기분이 편안해진다. 괜히 아이처럼 이불을 돌돌 말아 껴안아도 보고 발가락으로 부비적 촉감을 느껴보기도 한다. 그러는 동안 심리적으로 안정이 된다. 왜 인지 그냥 잠들기가 아쉬워 '조금만, 조금만' 하며 잠들기를 거부하고 싶은 그런 날, 문득 어떤 향이 맡고 싶어졌다.

지금 이 시간이 소중하고 흘러가게 두기엔 뭔가 아쉬운 감정이 들어서 일까?



유치원에 다닐 때, 그림인지 낙서인지 모를 것 들을 잔뜩 그리고는 손에 빨갛게 노랗게 묻어있던 크레파스의 향, 그리고 초등학교 때, 학교 앞 문구점에서 친구들과 색깔 별로 샀던 작은 유리병 속 에메랄드 그린색 알갱이 방향제의 향.



옆자리 친구는 자신의 크레파스가 50가지의 색이 넘는다고 자랑을 하며 12색 크레파스를 가진 나에게 금색이 있는지 자신의 금색 크레파스를 흔들며 우쭐댔었다. 그 친구의 금색 크레파스가 부러워 집에 가서 엄마에게 나도 50가지의 색이 들어있는 크레파스를 사달라고 조르던 기억에 미소가 지어진다.


온라인으로 찾아보려고 이리저리 노력했지만 손가락 두 마디 정도 크기의 작은 유리병에 들어있는 알갱이 방향제의 이름은 아직도 제품명을 찾지 못했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 몰래 필통 속에 숨겨두었던 알갱이 방향제의 냄새를 킁킁 맡고 다시 넣어두었을 때, 나쁜 짓을 한 게 아닌데도 짜릿하고 기분이 좋아지던 어린 내가 떠오른다.



크레파스가 손에 뭍을 때면 특유의 질감 때문인지 촛농의 왁스 같아 찝찝하면서도 따듯하게 녹아나는 듯한 향이 퍼진다. 그 순간 나는 삐걱거리는 작은 나무 의자에 앉아 바닷속 물고기와 잠수함을 그려 선생님께 칭찬받았던 순간이 떠오른다. 아마도 친구의 50색 크레파스 자랑에 조금 위축되어 있었는데 선생님의 한마디 칭찬으로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싸구려 인공 향이 깃든 알갱이 방향제에서는 전혀 인공적이지 않은 어린 시절 향으로서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그 작은 병 안에 담긴 향기는 곧 잘 기분이 가라앉는 나를 포근히 깨워주는 것 같은 향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감수성이 예민하고 여렸던 나에게 그것만큼 기분을 전환시켜주는 것도 없었다.



이제는 그 시절의 그 향기들을 온전히 다시 맡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글로써 그 기억들을 붙잡아 두고 싶다.

그 향기들이 사라지지 않고 , 내 안 어딘가에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잊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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