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을 듣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옆에 있는 동생을 쳐다볼 낯짝이 없었다. 병원으로 오는 차 안에서 나는 이미 맹장 수술을 하고도 남았을 만큼 확신에 차있었더랬다ᆢ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나는 과민성 대장 증후군 38년 차이며, 게다가 '설사형'이어서 화장실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 거리는 자타공인 똥쟁이인데.. 이럴 수가.. 나 변비였어? 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에 혼란스러운 나를 보며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그런데, 영상의학과 선생님이.. 자궁 쪽에 6cm가량의 혹이 있는 것 같다고 말씀하시네요. 시간 되시면 산부인과가보세요."
의사 선생님 특유의 그 시니컬한 말 투에 자궁근종은 별 것 아닌 것같이 느껴졌고, (시간이 되면 가고=20%, 시간이 되지 않으면 일부러 가지 않아도 된다=80% 처럼 들렸달까.) 그렇게 아무 소득 없이 진료실을 나왔다.(이때까지도 뱃 속에 가득 찬 便 생각뿐인 나 자신.)
"자궁근종?.. 그게 뭐야?" 혼자 중얼거렸다. 나조차 생소한데 남자인 동생도 알 리가 없었다.
자궁근종이 뭔지는 모르지만 산부인과에 가보면 알겠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잠깐, 혹이6cm면 큰 거야 작은 거야?" 계속해서 혼잣말을 해 가며 돌아오는 차 안에서 폭풍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자궁근종
자궁근종은 자궁을 대부분 이루고 있는 평활근(smooth musle)에 생기는 종양이며 양성질환으로 자궁 내에 발생하는 위치에 따라 장막하, 점막하, 근층내 근종으로 나뉜다. 자궁근종은 여성에게서 매우 흔하게 발생하는 질병이며, 35세 이상의 여성 40~50%에서 나타난다.
(네이버 지식백과 발췌)
산부인과에서 검진을 언제 했었더라?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손가락을 접어봤다. 다섯 손가락이 모자란다. 적어도 10년은 된 것 같았다. 안일하게 스스로 병을 키운 셈이다.그동안 산부인과에 가지 않았던 이유는 과히 독보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것 때문이었다. 여성이라면 예상 가능한 그놈의 "굴욕의자".
치과 다음으로 방문하기 싫은 곳이 산부인과인데, 멀리해도 너무나 멀리했던 게 화근이었던것같다.
집으로 온 나는긴장이 풀려 몸에 힘이 쭉 빠진 채, 물 먹은 곰 인형처럼 바닥에 철퍼덕 널브러져 생각에 잠겼다.
'아니, 그럼 내가 열이 났던 이유는 뭐지?'
생각해 내야만 했다.
병원을 두 군데나 들렀고 멀리 청주까지 갔다 왔으며 일주일 중 가장 높은 매출을 포기해야만 했던 사유가 분명해야했다.1~2주 사이 내가 자주 하지 않았던 행동들을 생각했고 그다음으로는 내가 섭취하지 않았던 음식으로 이어졌다. 그리고는 '그릭 요거트 '라는 결과값이 도출됐다.
또다시 검색에 들어갔다.
"그릭 요거트, 열"
"요거트 먹고 열"
그렇게 폭풍검색이 이어지던 중 생소한 단어를 발견했다.
"불명열"
불명열이란 발열이 3주 이상 지속 되며 여러 가지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원인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
비록 3주는 되지 않았지만 약 2주가 안 되는 시간 동안 미열이 났으니 불명열이라봐도 되는 건가 싶었다.
만약 불명열이라면 원인은 감염성, 비감염성, 악성, 기타 많은 원인이 있었으나 이렇다 할 짚이는 부분은 없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내가 평소와 다른 음식을 먹은 건 유산균이 잔 뜩 들었을 그릭요거트인데, 갑자기 그런 균들이(?) 내 장속에 대량투하 되면 장 내 환경에서는 전쟁이 나겠지? 그럼 그 전쟁 때문에 열이 난 건가? 싶은 꽤 합리적인 의심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그래 , 균을 없애버리는 거야 "
내 병은 내가 고친다 라는 마인드를 장착한 후, 유익균이건 유해균이건 일단 죽이고 보자 라는 심정으로 나 스스로 처방한 것은 다름 아닌 " 구충제 "였다. 꽤 신박하고 일리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천재 일지도?
그렇게 결론에 다다른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구충제를 사러 약국에 갔다. 나 스스로 생체실험을 하는 것 같아 약간의 두려움이 밀려왔지만, 어차피 일 년에 두 번은 먹어야 하는 구충제를 나는 겸사겸사 먹는 것뿐이라고 합리화를 시키며 에라, 모르겠다 입속으로 털어 넣었다.
(생각해 보니 주변 사람들이 나를 왜 조용한 돌+i라고 하는지 이제 알겠다.)
다음날
'어라? , 이게 되네? '
열을 재보니 36.5도였다.
정말 신기방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냥 때가 돼서 미열이 사라진 건지 정말 내 장속에서 일어났던 전쟁을 구충제라는 원자폭탄으로 끝내버린 것 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열을 잡았다. 그것도 나 스스로. 갑자기 어디선가 자존감이 마구마구 솟구치려던 찰 나, 자궁근종 생각이 났다.
'아, 맞다. 자궁근종'
산 넘어 산이다.
주말장사를 포기하고 서둘러 아침 일찍 산부인과로 향했다.
대기를 하고 진료실에 들어가 자궁근종이 있다는 소견을 들어 초음파를 보고 싶다 말했고, 의사 선생님이 초음파를 보시자마자 크기가 크니 수술해야 한다는 말을 하셨다. 그리고는 바로 수술 예약을 잡기 위해 오늘은 피를 먼저 뽑아야 한다며 간호사가 주사기를 다짜고짜 들이밀었다.
"아, 아녜요. 오늘은 그냥 갈게요"
"그러세요? 알겠습니다."
나는 수술하겠다고 말한 적이 없는데.. 무서웠다.
주삿바늘을 보고 놀란 맘을 진정시키며 벗어놓은 바지를 주섬주섬 입었다.
"엄마, 나 자궁에 혹 있대. 수술해야 된대."
"아휴, 시집도 아직 안 갔는데 ..자궁건드리면 안 좋을 텐데.. 그냥 두면 안된대? "
시집도 안 간 딸이 덜컥 자궁을 건든다고 생각하니 혹여나 임신에 문제가 생길 까 걱정이 되셨던 것 같다.
"시집ᆢ그거.. 갈 수나 있는 거야? ㅎㅎ" 엄마에게 시답잖은 농담을 하며 괜찮을 거라고 오히려 위로를 하다 문득 자문을 했다. '자궁에 혹이 생긴 징조 같은 게 있었던가?' 기억을 되짚어봤다.
(그릭요거트와 열에 관한 본 글은 경험에 의한 저의 개인적 견해이며,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님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