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젬마 Dec 06. 2024

묻지 마 연쇄 러닝 사건

러닝에도 낭만은 있다.

나 혼자 산다 출연 중인 기안 84님의 러닝 여파로 한 동안 이 동네 저 동네,  너도 나도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크루를 만들어 전문적으로 무리 지어 달리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나처럼 혼자서 헥헥 거리며 도로나 공원을 뛰어다니는 사람 또한 많아졌다. 그놈의 러닝이 뭐길래.

 

신호등에 초록불빛이 깜빡이는 걸 본 후, 미친 듯 뛰어 보지만 마음처럼 다리가 움직여 주질 않아 당황스러울 때, 부정적인 감정들에 휩싸여 머릿속이 복잡할  내적으로 소리 지르며(?) 전력질주 하고픈 욕망이 치밀어 오를 때,  내 다리 마음이 일심동체가 되어 움직여 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나의 러닝은 시작되었다.










"잠시 후에 준비 걷기를 시작합니다. 가볍게 걸어보세요"

덥디 더운 8월의 어느 날, 런데이 앱을 다운로드하여 무작정 시작한 러닝은 저승의 문 앞까지 가는 경험을 선사했다. 숨이 차 헐 떡 헐 떡 거리며 땀으로 옷이 흥건히 젖었다. 아무런 계획도 준비도 없이 런데이 앱에서 흘러나오는 런데이 아저씨의 말을 들으며 뛰라면 뛰고 걸으라면 걸었다. 런데이 아저씨는 러닝을 하는 법이나 러닝이 주는 영향력, 러닝에 필요한 갖가지 정보를 알려주어 운동도 하고 지식도 습득할 수 있게 해 주었고, 무엇보다 뛰다가 지칠 때쯤 "잘하고 있어요", "수고하셨습니다"와 같은 격려의 말로 가스라이팅을 해주니, 꽤나 큰 성취감이 생겼고 그로 인해 러닝에 흥미를 갖게 도와줬던 고마운 분(?)이었다.


오늘도 5km 완주!


러닝의 장점이라면 단연코 잡념의 사라짐이다. 생각이 많거나 무기력할 때, 또는 불안할 때 밖으로 나간다는 마음먹기가 너무나 힘이 들지만 막상 나가  운동화 끈을 질끈 매고 뛰다 보면 일단 숨이 차니 생각이란 것을 할 수가 없어진다. (몸을 일차적으로 움직여 버리고 귀찮다고 생각하는 건 나가서 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내 몸에 집중을 하게 된다. 무릎이 아프다거나 허리가 아플 수 있으며 옆구리에 통증이 느껴지는 등 뛰면서 나타나는 증상에 포커스가 맞춰진다. 내 몸이 운동할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스트레칭을 꼼꼼히 해 주는 노력이 생겨 난다면 그때부터는 러닝에 진심 이게 된다. 그렇게 준비운동만 잘 되면 더 빠르게 잘 달릴 수 있을 거라 착각하게 된다. 난 준비가 됐는데 왜 아프지? 왜 속도가 안 날까? 그러다 보면 이제 복장과 신발에 집착하게 된다. 좋고 비싸고 남들이 좋다는 유명한 메이커 러닝화를 알아보고 후기를 찾아보며 러닝과 관련된 갖가지 장비들을 접한다. 양말부터, 신발, 모자, 물통, 스마트 워치, 이어폰, 암 밴드등.. 골프나 등산용품에 비하면 많이 비싸지 않으니 투자를 아낌없이 한다.








타고나기를 물살인 내 살들은 남들이 보기에도 탄력이 붙었다 한다. 특히 종아리와 허벅지에 탄력이 생겨 반바지를 입어도 더이상 흐물거리지 않는다. 매일 차고 있는 타이트했던 팔찌가 손등으로 흘러내린다. 배가 조금 홀쭉해져서 타이트한 레깅스를 입어도 밉게 튀어나온 뱃살과 마추치는 그런 일은 없어졌다. 이런 내 모습이 비치는 거울을 보면 운동을 더 열심히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 


엄마와 등산을 종종 가는데, 러닝을 하고 나서부터는 산에 오르는 게 더 이상 숨이 차지 않으며, 평소 후비루 때문에 약하게 가래가 끓었는데  이제는 가래가 덜 끓는걸 보면 폐나 기관지가 좋아졌지 싶다.

 몸이 반응하는 것이 신기하고 그것이 좋은 반응 이어서 굉장히 뿌듯하다. 


모르는 동네를 지나치다 한적한 평지를 발견하면 뛰기 좋은지 아닌지부터 보이는 경지에 이르렀으니 러닝에 꽤 흥미가 있는건 사실인것같다.

 


 러닝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렇게 저렇게 러닝을 즐기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면서 알게 된 몇 가지는 유명 메이커 신발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신발이다. 내가 평발인지 아닌지, 발목에 외회전이나 내회전증상이 있는지, 발등이 낮은지 높은지, 뛰면서 착지를 할 때에 어떤 식으로 하는지 등 나의 발에 맞는 것을 찾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또한 빠르고 오래 달린다고 잘하는 것이 아닌, 내 몸이 뛰는 행위에 대해 익숙해지는 과정, 나에게 맞는 페이스를 찾고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속도가 얼마가 나와야 러닝좀 한다 라는 식의 말은 전혀 의미가 없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 진심이어야 비로소 러닝 올바르게 임할수 있음을 깨닫고 나서야 조금 더  지치지 않고 오래 뛸 수 있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는데 , 바로 하체 근력 운동을 해 줘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나의 엉덩이 근육과 허벅지, 종아리 근육을 단련시키는 데 한 몫했던 "케틀벨 스윙" 덕분에 5km를 쉬지 않고 뛸 수 있었다. 어떤 날은 10km도 뛰는  자신이 신기했다.

또, 피부과에서 점을 뺀 후, 자외선을 받으면 안 됐기에 실내 자전거를 탔었는데 그것 역시 어느 정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됐던 것 같다.


과정 없는 결과는 없다.


 그렇게 참을 뛰다가 힘이 들면, 에미넴의 8 mil이 떠오르고 마치 내가 까만 비니를 에미넴이 것 같은 착각, 바스락거리는 낙엽 위를 지나치면 어느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 힘든 시간을 이겨내기 위해 러닝을 하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며 주인공이 마치 나인 것 같은 착각을 하며 버틴다.

한참을 뛰다가 저 멀리 나와 반대되는 방향에서 뛰어오는 러너를 마주칠 때, 하이파이브하는 상상을 하고,

산책 나온 강아지가 나를 보며 짖지 않고 꼬리를 흔들 때, 그 강아지와 같이 달리는 상상을 하며 저절로 미소가 번지는 일이 다반사다. 정신승리가 아닌 진짜 즐기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무척 두근거리고 기쁘다.

 

  

전국일주도 좋고 해외여행도 좋다지만, 지금 여기 내가 지내는 곳에서 뛰지 않고서는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러닝에도 나만의 낭만이 있고, 철학이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