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남은 시간에 담고 싶은 것들

세상의 주인 되기

by Jay Kang

지난번에 콜롬비아 출신 아벨미의 여자 친구 두 명이 먼 나라에서 몰타의 우리 집에서 일주일 남짓 머물렀다. 평소엔 세 명이 사용하던 집이었는데 다섯 명이 함께 지내다 보니 집 안이 복잡하고 조금은 비좁게 느껴졌다.


그리고 하루의 절반을 보내는 랭귀지스쿨은 여름 방학이 지나면서부터 눈에 띄게 학생 수가 줄었다. 새로운 학생들보다는 교육 기간을 마치고 떠나는 이들이 더 많아졌다. 여름이 다 가기 전에 무언가 해보고 싶은 마음이 남았는지, 중국인 유학생 부부인 양양이 바다 수영을 제안해 왔다. 나 역시 아쉬운 마음에 흔쾌히 함께하기로 했고, 그렇게 바다로 향했다.


한낮의 햇살은 아직 따가웠기에 바다 수영도 괜찮겠거니 했지만, 막상 바다에 몸을 담그니 찬 기운이 스며들며 계절이 이미 가을로 접어들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문득, 나도 바로 이런 찬바람이 불던 시기에 몰타에 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리고 다시 같은 바람이 불기 시작하니 이젠 나도 여기를 정리해야 할 때가 온 듯한 기분이 들어 마음이 더 착잡해졌다.


아직 몇 달이 남아 있긴 하지만, 1년 가까이 이곳에서 생활하다가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다가온다고 생각하면 그때 나도 어떤 감정을 느낄지 스스로도 궁금해진다. 후회가 밀려올까, 아니면 새로운 희망을 품고 떠날 수 있을까. 여기 있는 다른 유학생들도 하나둘씩 돌아갈 때가 되면 마음이 급해지고, 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커진다고들 말한다. 나 역시도 아마 그러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내 지난 유학 생활을 되돌아보면, 처음엔 정신없이 적응하느라 바빴고, 학업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덧 3~4개월이 훌쩍 지나버렸다. 누구든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주변도 눈에 들어오고, 그렇게 바라던 유럽 여행도 갈 수 있는 법인데, 초반엔 너무 소극적이었던 것이 내게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오늘은 일요일, 아벨미와 함께 점심을 준비하다가 계절이 바뀌는 기운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내가 찬바람 불던 시기에 몰타에 왔는데, 다시 같은 바람이 불기 시작하니 이젠 떠날 때가 다가오는 것 같다고 하자, 아벨미가 내 귀국 날짜를 물었다.

정확한 날을 말해 주고 싶지는 않아 피했지만, 대신 내가 만약 떠난 뒤에 다시 몰타로 돌아오고 싶거나 너희들이 보고 싶으면 어떡하냐고 아벨미에게 물었다.

코펜하켄 축구 경기장


그러자 아벨미는 웃으며 말했다. “그럼 영상 전화 걸면 되지. 너의 전화는 언제든 내가 받아 줄 수 있어.” 별것 아닌 대답이었지만 이상하게 가슴 한편이 따뜻해졌다. 콜롬비아에서 온 아벨미는 함께 살아보니 알겠다.

참 마음이 따뜻한 친구다. 어쩌면 한국인이 말하는 ‘정’을 유일하게 이해해 주는 유럽인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이곳에서의 마지막 달, 그 라스트 데이를 떠올려보면 과연 내가 이곳을 쉽게 떠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황금 같은 시간을 마무리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아마도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는 천천히 현실로 들어가는 고속열차처럼 느껴질 것이다.


물론 아직 당장은 아니다. 내게는 아직 몇 달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이 남은 시간만큼은 내가 원하는 것들로, 내가 사랑하는 순간들로만 가득 채워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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