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길 위에서 배운 것들

세상의 주인 되기

by Jay Kang

다음 주, 나는 폴란드를 여행한다. 오랜만에 함께하는 여행자들이 있다. 매번 혼자였지만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젊은 부부와 함께 길을 나선다. 오래도록 혼자 걷던 여행길에서 누군가와 일정을 맞추고, 계획을 나누는 일은 익숙하지 않은 감정이었다. 이전과는 다른 준비의 무게가 있었다. 아니, 사실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십여 년 전 동유럽을 처음 찾았을 때, 나는 투어 상품 하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세상에 있었다. 누군가가 항공편과 숙소, 식사와 이동 수단까지 알아서 챙겨주는 그 여행 안에서, 나는 그저 몸만 맡기면 되는 손님이었다. 그때의 나는 여행자라기보다, 여행을 소비하는 사람에 가까웠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직접 항공권을 찾고, 도착지를 확인하며, 경유 시간과 가격을 비교한다. 낯선 도시의 지명들을 더듬으며, 공항에서 시내까지의 이동 수단을 알아보고, 도심과 가까운 숙소를 고르고, 리뷰를 꼼꼼히 들여다본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나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거리 이름을 파헤치듯 찾아야 한다. 마치 어두운 방 안에서 바늘을 찾는 심정으로, 손끝으로 길을 짚는다.


여행지를 고르고 나면, 이제는 투어 코스를 찾아야 한다. 몇 번의 경험 끝에, 나는 특정 여행 웹사이트가 제공하는 시내 투어 정보가 제법 유용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덕에 여행의 방향이 조금은 선명해졌다.

예전에 프랑스 남부의 해안 도시를 걷던 날이 떠오른다. 나는 트램과 버스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해, 거의 모든 여정을 도보로만 이동했다.

도시마다 꼭 가고 싶은 곳은 넘치는데, 한 번 방문하면 다시 오기 힘든 유럽의 도시 특성상, 나는 욕심을 부렸다. 하루 안에 최대한 많은 곳을 돌아보려 했고, 결국 무리하게 발길을 옮기다가 대중교통에 의지하게 됐다. 하지만 자주, 아니 자주 이상으로 버스와 기차를 잘못 탔고, 정확한 노선을 타더라도 목적지를 착각한 채 엉뚱한 곳에서 내린 적도 많았다.


그럼에도 다행인 것은, 유럽의 대중교통은 시간 내에 재탑승이 가능한 경우가 많아, 금전적 부담은 덜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구글 지도에 의지하기 시작했다. 구글이 없던 시절에는 상상도 못 했을 방식으로, 나는 구글 덕분에 전 세계 어디서든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길을 찾았다. 한국에 있을 땐 뉴스에서나 접했던 구글이라는 존재가, 이곳에서는 내 가장 든든한 동행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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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도 그랬다. 메뉴에 사진 하나 없는 식당에서, 낯선 언어로 적힌 요리를 고르기란 정말 어려웠다. 하지만 이 또한 구글은 도와주었다. 사용자 리뷰와 함께 실제 음식 사진이 있는 화면을 넘기다 보면, 입맛보다는 사진이 마음에 드는 음식을 주문하게 되었다. 그렇게 구글은 내가 타국에서 허기지지 않도록,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하지만 여행 계획이 늘 뜻대로만 되는 건 아니다. 수십 번 지도를 들여다보고, 숙소와 관광지를 연결해 본다 해도, 막상 현지에 가보면 계획의 절반도 이루지 못한 채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낯선 식당에 혼자 들어가 음식을 주문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혼자라는 이유로, 유명한 지역 요리를 포기하고 돌아서는 일도 잦았다. 돌아오는 길에야 아쉬움이 밀려온다.


그렇게 나는 점점 단체 여행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게 되었다. 예전엔 30~40명을 모아 한 명의 가이드가 인도하는 단체 투어가 불편하고 비효율적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 자유여행이라는 무게를 혼자 짊어지고 나서야, 그 패키지여행의 장점도 보이기 시작했다. 만약 한국인 가이드와 함께 짧은 시내 투어라도 곁들였다면, 여행의 밀도와 만족도가 훨씬 달라졌을 것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내가 이곳에서 머물기로 한 시간의 2/3는 지나버렸고, 이 진실은 조금 늦게 찾아온 깨달음으로 남았다.


만약 조금 더 어렸을 때, 이런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더 효율적으로, 더 담대하게 여행할 수 있지 않았을까. 같은 시기에 입국한 몇몇 유학생들은 이미 체류를 6개월에서 1년 연장하며 시간을 벌고 있었다. 그들을 보며 나 역시 연장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한국에 두고 온 현실과 점점 바닥을 드러내는 자금 사정은 내 선택을 가볍게 만들지 않았다.


나는 반세기 가까이 한국에서만 살아왔다. 그 삶의 뿌리를 잠시 뽑아 들고 이곳까지 왔지만, 결국 나의 무게는 아직 한국에 남아 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엔, 과연 한국과 관계없이 살 수 있을까 궁금했는데, 지금에 와 생각해 보니 나는 한국을 잊은 것이 아니라, 잠시 외면하고 있었던 것뿐이다.

나의 삶은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언젠가 돌아가면 다시 한국의 일상에 적응하게 되겠지만, 지금 이 순간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직 남은 이 유럽의 나의 시간이다.

한국으로 돌아가 생활을 이어가는 일보다는, 지금 이곳에서 하루를 더 깊이 살아내는 것이 나에게는 더 큰 과제다. 내가 선택한 이 유학생활의 마지막 계절을 후회 없이 채워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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