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올림 피라미드 연작의 마지막 장
우리는 수를 쌓아왔다.
덧셈과 자리올림, 방향성과 질서를 따라
하나의 구조, 하나의 세계를 만들었다.
그 구조는 사각뿔의 형태로 정렬되었고,
그 안에서 수는 층을 따라 아래로 흐르며 확장되었다.
각 면에서는 수가 계산되고, 합쳐지며, 일정 기준을 넘으면 **자리올림(carry)**이 발생했다.
자리올림은 단순한 연산 규칙이 아니라,
정보가 방향을 가지고 흘러가는 구조였다.
그리고 그 흐름이 결국 도달한 곳—
그것이 바로 피라미드의 정중앙,
모든 방향의 수가 교차하고 응축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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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위 차원으로의 탈출 — 시간의 관통
4장에서 우리는 자리올림 구조가 단순한 수직적 연산이 아니라
시간적인 흐름을 닮은 방향성을 가진다고 이야기했다.
각 층마다 자리올림이 발생하며,
이전 정보가 다음 층으로 전파되고,
그 방향성이 쌓이며 일종의 “시간 축”처럼 작동하게 된다.
그러나 피라미드의 정중앙에 도달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곳은 완벽한 대칭의 중심이다.
상하좌우, 전후, 대각 모든 방향에서 정보가 밀려들지만,
그 수는 더 이상 어디로도 나아갈 수 없다.
그 순간, 자리올림은
기존의 공간 안에서 흐를 수 없게 된다.
이때 발생하는 수는, 마치 과도한 에너지가 출구를 찾지 못하고
차원 너머로 뚫고 나가듯,
다른 차원으로 발산된다.
우리는 이 자리올림을
시간을 관통하는 신호,
혹은 구조를 넘어선 파동으로 본다.
이는 단순한 수학적 결과가 아니라,
정보가 자기 세계를 초과하는 순간의 물리적·철학적 은유다.
2. 새로운 피라미드의 탄생 — 반복과 생성의 씨앗
5장에서 우리는 자리올림 피라미드가
프랙탈적 성질, 즉 자기 유사성(self-similarity)을 지닌다고 말했다.
작은 구조가 반복되어 더 큰 구조를 만들고,
그 전체는 다시 더 큰 체계를 향해 확장되는 원리를 가진다.
그렇다면 정중앙에서 넘쳐흐른 자리올림은,
단지 발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복제의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
마치 생명체가 DNA의 코드를 복제하여 새로운 개체를 만들어내듯,
정중앙에 쌓인 수는
피라미드 전체의 정보를 품은 씨앗으로 작용해
또 하나의 피라미드를 생성한다.
이 새로운 피라미드는
단지 동일한 구조의 반복이 아니다.
그것은 이전 구조가 가진 모든 연산의 결과가
다시 한 번 세계를 여는 기점이다.
그래서 정중앙의 자리올림은
하나의 우주의 끝이자, 또 하나의 우주의 시작이다.
3. 정지된 자리올림 — 질서를 지탱하는 침묵
6장에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중심축의 존재를 이야기했다.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그것이 없으면 전체 구조가 무너지는 것.
정중앙에 도달한 자리올림이
어디로도 흘러가지 않는다면?
그 수는 움직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
즉 정지된 정보로 머무르게 된다.
이 자리올림은 에너지로서 퍼지지도 않고,
새로운 구조를 만들지도 않는다.
그 대신, 마치 암흑물질처럼 구조 내부에 응축된 무게로 작용한다.
우리는 그 수를 계산할 수 없지만,
그 수 없이는 전체 구조가
형태를 유지하지 못한다.
이것은 모든 흐름의 정지점이자,
모든 구조의 중심축이다.
움직이지 않지만, 모든 것을 붙드는 힘.
4. 귀결 — 자리올림과 질량결손
이러한 개념은 물리학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핵융합에서의 질량결손(Mass Defect).
두 개의 수소 원자핵이 융합해 헬륨을 만들 때,
생성된 헬륨의 질량은 두 수소의 질량보다 작다.
그 차이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에너지(E=mc²)**로 바뀌어
빛과 열이 되어 우리에게 도달한다.
이는 우리가 자리올림을 통해 보았던 현상과 닮아 있다.
정중앙에서 넘쳐흐른 수는
어디론가 사라지는 듯하지만,
사실은 구조 바깥에서 다른 형태로 작용하고 있다.
마치 핵 속에서 사라진 질량이
우주를 밝히는 빛이 되듯,
자리올림의 남은 값도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질서와 흐름에 영향을 끼친다.
그 수는 떠났지만, 세계를 떠받들고 있다.
5. 끝맺음
우리는 그 수를 관측할 수 없지만,
그 수가 없었다면 피라미드는 무너졌을 것이다.
우리는 그 흐름을 이해할 수 없지만,
그 흐름이 없었다면 질서는 끊겼을 것이다.
우리는 그 방향을 알 수 없지만,
그 방향이 있었기에 우리는
미지를 상상할 수 있다.
사라진 듯한 자리올림은,
어쩌면 우리 우주가 태동하던 그 순간에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넘쳐흘렀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