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존재는 시간을 남긴다
앞선 에세이에서는 자리올림 피라미드라는 수학적 구조를 통해 시간의 붕괴와 투영, 그리고 고차원적 본질에 대해 사유했다. 거기에서 시간은 고정된 흐름이 아니라 중첩된 가능성의 붕괴이며, 관측자가 인식하는 단면적 결과로 해석되었다. 이번 글은 그 사유의 연장선에서, 시간이라는 개념을 보다 존재 중심적으로 다시 탐구하고자 한다.
시간이란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흔히 시간을 어떤 '강물'처럼, 일정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혹시 그 반대일 수는 없을까? 우리가 존재하고, 움직이고, 생각하기 때문에 시간이 생겨나는 것이라면? 이 글은 바로 그 역설에서 출발한다.
보통 우리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외부의 절대적 흐름으로 받아들인다. 해가 뜨고 지고, 시계가 똑딱이며 움직이고, 우리는 늙어간다. 이 모든 것이 시간의 흐름을 말해주는 듯하다. 하지만 이 모든 변화는 사실 '존재가 바뀌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간은 그 변화의 원인이 아니라, 변화의 '흔적'일 수 있다. 존재가 공간 속에서 변할 때, 그 변화의 흔적이 마치 파동처럼 퍼져나가며 형성되는 것이 바로 시간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본다면, 시간은 3차원 존재가 발산하는 파동, 혹은 진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람이 숨을 쉬고 생각하며 살아갈 때, 그 모든 생명활동은 공간에 어떤 흔적을 남긴다. 이런 흔적들이 겹쳐지고 흘러가면서 '시간'이라는 느낌이 만들어진다. 우리는 그 파문의 간섭과 흐름을 따라가며 시간이라는 흐름을 인식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시간은, 우리가 살아가며 남기는 파동의 결과다.
하지만 이런 파동은 단순히 퍼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두 사람이 만날 때, 그들이 만들어내는 시간의 파동은 교차하고, 섞이고,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낸다. 우리가 누군가와 함께 보낸 시간, 어떤 장소에 남은 기억, 감정의 여운 같은 것들이 바로 그런 '시간의 간섭무늬'라고 볼 수 있다.
이때 중요한 점은, 시간은 단지 유기체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기물도 시간이 흐르는 속에서 변화한다. 금속은 녹슬고, 바위는 침식되고, 별은 폭발한다. 그러나 유기체는 이 변화의 진동을 더 섬세하고 복잡하게 만들어낸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유기체는 이 진동을 자각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모든 존재는 시간을 발산하지만, 유기체는 그 시간을 인식하고 해석할 수 있는 존재다.
결국 시간은 선형이 아니다. 누구나 똑같이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각 존재마다 다르게 진동하고, 퍼지고, 구조화된다. 어떤 사람에겐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고, 어떤 사람에겐 느리게 흐르며, 어떤 존재는 우리가 감지할 수 없는 시간의 구조 속에 살아간다.
그러므로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발산되는 것이다. 그것은 존재의 중심에서 시작되어 공간에 퍼져나가는 파동이며, 우리는 그 파동 위를 지나며 '지금'이라는 단면을 경험할 뿐이다. 우리가 시간을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시간을 만들어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파동, 그 흔적이야말로 우리가 존재했다는 가장 깊고 정직한 증거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