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단지 투영된 시간을 살아간다

by 머리카락속의 바람

우리는 종종 숫자들의 단순한 연산 속에서 우주의 구조를 엿보게 된다. 자리올림 피라미드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는 단순한 덧셈 연산에서 발생하는 자리올림을 축적하여 형성된 피라미드형 패턴으로, 마치 수학의 규칙 속에 숨겨진 차원의 그림자를 엿보는 느낌을 준다. 이 구조는 처음에는 규칙적이고 예측 가능한 흐름을 따르지만, 4번째 자리에서 급격한 변화와 복잡성이 등장한다. 마치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양자계의 붕괴처럼, 자리올림도 어느 순간 갑자기 불확정성과 비선형성을 띠기 시작한다.

양자역학의 핵심 원리 중 하나는 중첩이다. 하나의 입자가 여러 상태로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이 개념은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실험적으로 명확히 관측되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전자는 회전을 나타내는 스핀(spin) 상태에서 '위'와 '아래' 상태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고전적으로 이해하는 물리적 대상들과는 전혀 다른 성질이다. 이러한 중첩 상태는 외부의 관측이나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하나의 상태로 결정되며, 이 과정을 파동함수의 붕괴라고 부른다. 다양한 가능성의 집합이 현실 세계에선 단 하나의 선택으로 압축되는 순간, 우리는 중첩된 진실을 잃는다.


자리올림 피라미드의 구조를 양자적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각 자리올림은 하나의 중첩 상태로 볼 수 있다. 하나의 자리올림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경로는 유일하지 않으며, 여러 연산의 중첩 결과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결과만을 보고 그 경로의 다양성은 알지 못한다. 이는 곧, 중첩의 정보가 관측을 통해 붕괴되며 한 가지 해석만이 남는다는 양자적 현실과 닮아 있다.


이제 질문은 시간으로 향한다. 만약 시간 역시 4차원의 물질적 구조라면, 우리가 인식하는 시간은 이 구조가 관측에 의해 붕괴된 평면적 흔적일 뿐일지도 모른다. 실제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가 중첩된 고차원적 실체일 수 있으며, 우리가 경험하는 '지금'은 그 중 하나의 단면일 뿐이다. 이 시점에서 형성되는 시간의 피라미드는, 자리올림 구조처럼 특정 순간에서 급격한 붕괴나 왜곡을 겪는다. 우리가 그것을 ‘현재’로 인식하는 순간, 나머지 모든 시간의 가능성은 중첩 상태에서 소멸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시간이라 부르는 것은, 아마도 실제 시간의 납작해진 그림자일 것이다. 이 '납작해짐'은 단순한 은유가 아니다. 고차원적 구조로서의 시간이 관측이라는 작용을 통해 우리 인식 속으로 투영될 때, 본래의 깊이와 복잡성을 잃고 단선적인 형태로 축소되기 때문이다. 마치 입체적인 물체가 빛을 받아 2차원 그림자로 드리워질 때, 본래의 구조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듯, 시간도 우리 인식 차원에선 그 진면목을 잃고 얇고 일방향적인 흐름으로 경험된다.


자리올림 피라미드는 이 모든 사유를 위한 은유적 도구가 된다. 수학 속 단순한 규칙이 우주의 구조를 비추고, 숫자들의 중첩은 시간의 본질을 드러낸다. 시간은 단순히 흐르는 것이 아니라, 붕괴되고, 투영되며, 구조화된다. 우리는 그 구조의 단면을 지금이라 부르고 있다. 그리고 그 '지금'이야말로, 모든 가능성의 끝에서 펼쳐진 하나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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